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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카이로 국제 반전 회의:
저항의 중심에 국제 반전 운동이 결집하다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국제 반전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중동에서 제국주의와 독재에 맞서 저항이 고조되고 있고, 그러한 저항이 국제 반전 운동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 준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올해 이 회의에는 76명의 ‘다함께’ 참가단과 4명의 민주노동당 참가단이 참가했다. 다음은 ‘다함께’ 참가단이 회의가 마무리된 직후 현지에서 보낸 글이다. 그 밖의 더 자세한 소식과 보고는 다음 호(39호)에 실릴 예정이다.

2003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카이로 국제 반전 회의는 제국주의 전쟁 반대 운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결합을 도모하는 공간이다.

올해는 제3차 이집트 사회포럼과 함께 5개의 컨퍼런스와 40개 가까운 포럼이 빽빽한 일정에 따라 진행됐다.

컨퍼런스는 ‘팔레스타인·이라크·레바논의 저항세력을 지지하기’, ‘이란과 한반도의 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식민주의와 세계화에 맞서 좌파와 이슬람주의 운동 사이에 가교를 놓기’ 등 국제 반전 운동 내의 굵직한 주제들을 놓고 참가자 전체가 모여 토론하고 논의하는 회의다.

반면에, 포럼은 ‘노동자 포럼: 경제 개혁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 ‘농민 포럼: 토지 개혁 반대 시위 ― 강제 퇴거에 맞서는 농민들’, ‘학생 사회주의자들: 사유화와 교육’ 등 더 특정한 구체적 쟁점들을 둘러싸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소규모 워크숍이다.

이번 회의에는 주최국 이집트는 물론 영국·그리스·스페인·노르웨이·덴마크·오스트리아·캐나다·베네수엘라·레바논·팔레스타인·이라크·수단·한국 등 17개국에서 3천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집트를 제외하면, 80여 명이 참가한 한국 참가단이 가장 규모가 컸고, 캐나다·영국 등도 많이 참가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4월 13일 운동’[차베스를 지지하는 단체]에서 한 명이 참가했으나, 개막식을 비롯해 주요 회의에서 인상적인 주장과 발언을 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뒤 열린 카이로회의에서는 하마스가 크게 부각된 반면, 지난해 여름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가을 미국 중간선거에서 부시 정부가 패배한 뒤 열린 회의여서인지 올해는 헤즈볼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회의가 열린 이집트에서는 올해 초 노동자 파업 물결(30년 만에 최대 규모)에 이어 농민들의 토지 점거 투쟁이 벌어졌는데, 최근 무바라크 독재 정부가 헌법을 개악하면서 자행한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운동은 자신감과 투지를 다지며 일전불사의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카이로회의였기에, 나흘 내내 급진적이고 전투적이며 열정적인 분위기와 활력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받고 있는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 형제단’의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민간인임에도 군사 재판에 회부된 무슬림 형제단 지도부 40여 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명 활동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29일 저녁 3시간 넘게 지속된 개막식부터 뜨거운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무슬림 형제단 의장, 키파야 운동 중앙위원,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지도자들, 영국 리스펙트 사무총장 존 리즈, 이라크에서 사망한 영국군 병사의 어머니 로즈 젠틀,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이 연단에 올라 제국주의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다함께’ 참가자들을 대표해 최일붕 운영위원도 연단에 올라 박수를 많이 받았다.

헤즈볼라

30일 오전에 열린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의 저항세력을 지지하기’ 컨퍼런스에서는 이 세 곳의 저항세력을 지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고, 아랍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고 그 정권이 미군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이 부추기는 종파간 이간질에 말려들지 말고 분열을 극복하고자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 레바논에서 친이스라엘 정부 관료를 축출해야 한다는 것, 제국주의 본국에서 대중적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피점령국의 저항세력을 지원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주장들이 지지를 많이 받았다.

31일 오전의 ‘이란과 한반도의 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컨퍼런스에서는 이란 출신 영국 대학 교수, 한국의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 레바논 출신 베네수엘라 활동가가 연단에 올라 핵과 관련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중잣대를 비난하고 이란 공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청중들은 뜨겁게 호응했다(평화적 핵 에너지 사용권을 둘러싼 이견은 있었지만). [이 컨퍼런스에서 김하영 운영위원이 발표한 연설문은 관련기사 ‘핵을 빌미로 한 전쟁 위에 대처하기’를 보시오.]

‘식민주의와 세계화에 맞서 좌파와 이슬람주의 운동 사이에 다리 놓기’ 컨퍼런스에서는 헤즈볼라 연사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부 좌파들이 이슬람주의 저항세력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협력을 거부한 것처럼 이슬람주의 운동 내 보수적 세력들이 좌파들과의 협력을 거부한 것이 광범한 반제국주의 세력의 단결을 가로막아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는 오랫동안 좌파와 협력해 왔고 지난 여름 이스라엘의 침공을 격퇴함으로써 그 단결의 가능성과 효과를 모두 보여 줬다.

존 리즈는 1989년 동유럽 정권들이 붕괴한 뒤 제국주의 질서가 재편되면서 좌파와 이슬람 조직들이 단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좌파’라는 말은 이제 어느 한 쪽의 국가들을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저항세력을 지지하는 것을 뜻하게 됐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전쟁·무슬림 혐오로 이어지는 새로운 패권 정책의 결과로 이슬람 조직들의 대중 운동이 부활했다는 것이다. “이제 좌파가 여기에 연대할 기회가 열렸다. 그러나 카이로회의에 무슬림 형제단이 참가하게 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과정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플로어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한 발언자는 “우리가 차이를 먼저 말하기 전에 공통점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이슬람 성직자의 말을 인용하며 좌파와 이슬람주의자들이 제국주의에 맞서 단결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4월 1일 마지막 컨퍼런스 ‘아랍 민중의 민주화 투쟁을 지원하기’에서는 이집트 키파야 운동 지도자가 무바라크 일가를 축출하지 않고는 아랍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집트의 해방은 단지 키파야 운동같은 정치적 민주화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며, 마할라 노동자 투쟁 같은 경제적 민주화 운동과 결합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청중 토론에서는 아랍 친미 정부들의 행태를 성토하며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싸움과 이들 보수적 친미 아랍 정권들에 맞선 투쟁이 결합돼 있음을 지적하는 주장이 많았다. 또, 아랍 사회운동과 세계 운동의 국제적 연대 강화 필요성이 강조됐다.

폐막식에서는 각각의 컨퍼런스에서 나온 주장과 제안들이 취합돼 선언문 형태로 정리됐고 다양한 요구와 행동 계획을 권고 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시온주의, 제국주의 전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년 3월 27∼30일에 열리는 제6차 카이로회의에 초대한다고 선언했다.

제5차 카이로회의에 대거 참가한 76명의 ‘다함께’ 참가단과 4명의 민주노동당 참가단은 아랍인들을 포함해 많은 국제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많은 이집트인들은 ‘다함께’와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2005년과 2006년에 주한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 주최한 이집트 민주화 운동 방어 시위의 사진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부탁했다.

개막식에서 연설한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 나기브는 대규모 한국인 참가단의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현재 투쟁의 구도를 ‘이슬람 대 서구’, 또는 ‘문명의 충돌’로 말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대규모 한국 참가단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을 것이고,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결

이번 카이로회의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먼저 무바라크 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이집트의 다양한 운동 세력들이 한 곳에 모여서 운동의 다양한 쟁점들을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제공했고 국제 참가자들은 이집트 민주화 운동에 지지를 보냈다.

또 다른 의의는 국제 반전 운동, 저항세력, 아랍, 특히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세력들이 한 곳에 모여 단결을 모색하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제5차 카이로회의의 가장 중요한 성과일 것이다. 이런 연결 끈을 놓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국제 반전 운동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