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 반대는 세계화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한미FTA 협정문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켰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가로막는 정부 정책이 모두 소송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환경·보건·공공서비스 정책 등이 죄다 다국적기업의 표적이 된다.

1999년에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상하수도 운영권을 따낸 다국적기업 벡텔은 수돗물 가격을 급격히 인상한 것도 모자라 정부로 하여금 사람들이 빗물을 받는 것까지 금지하는 법을 만들게 했다! 이에 격분한 코차밤바 민중의 투쟁 때문에 볼리비아에서 쫓겨난 벡텔은 곧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이용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천6백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적 항의에 직면해 소송을 취하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다국적기업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 준 전형적 사례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뒤, 멕시코 과달카사르 지역 주민들은 다국적기업 메탈클래드의 산업 폐기물 때문에 환경 재앙에 시달렸다. 주민들의 거듭된 항의에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매립지 설치 허가 신청을 거부하자 메탈클래드는 멕시코 정부를 제소했고, 중재심판소는 멕시코 정부에 1천6백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문은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 줬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 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숨겨져 있던 것은 새로운 종류의 권리장전(사업가들을 위한)이었으니, 이는 북미 전체에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한국에서 낳을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개혁 입법을 추진하거나, 광우병 쇠고기·유전자조작식품(GMO) 수입을 제한하는 조처를 취한다면 곧바로 다국적기업의 소송 대상이 될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과 조세 정책이 ‘투자자-국가 소송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호도하기 바쁘다.

빗물

그러나 진실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 정책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정부 자신도 “어차피 다른 부동산 정책은 직접수용에 해당한다”며 그것을 인정했다.

조세 정책도 마찬가지다. “예외적인 경우에는 간접수용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에 규정”해 놓아 이마저도 ‘투자자-국가 소송제’ 대상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편, 이 제도는 단지 미국계 다국적기업에만 유리한 것이 아니다. 정부도 “우리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당성을 옹호했고, 삼성경제연구소도 한미FTA 타결 직후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들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국가 소송 심판을 대부분 담당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위원들은 이 제도 덕분에 하루 2천 달러씩 버는데, 이 중 한 명이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대표 장수길이기도 하다.

요컨대, 한미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통해 한 줌도 안 되는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은 이득을 얻겠지만, 한국과 미국의 대다수 민중이 입을 피해는 실로 막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