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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가져다줄지 모를 ‘국익’은 부유층의 이익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협상 타결 직후 산업별 대차대조표를 들이대며 한미FTA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농업과 의약품 등에서는 일부 국내 산업에 피해가 있겠지만 자동차나 섬유 산업에서는 이익이 크므로 결국 국가 전체로는 이익이라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국익’론이 한미FTA에 대한 조건부 반대 여론(시기상조론, 졸속추진론 등) 일부를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한미FTA 찬성 쪽으로 돌려놓은 듯하다.

기업 이윤의 총합이 곧 ‘국익’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손익 계산법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남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FTA 때문에 노동자·민중이 앞으로 겪게 될 불이익과 피해는 그들의 계산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예컨대, 이번 협상에서 대중의 가장 큰 반감을 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남는 장사

평범한 사람들은 값싼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먹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부유층은 안전하게 값비싼 한우를 먹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학교·작업장·군대 등에서 대량 급식되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피할 도리가 없다. 반면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 음식점에서는 ‘쇠고기 원산지 의무 표시제’가 실시된다.

쇠고기 생산과 유통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국내 쇠고기 수입·유통 업체들은 어떨까?

CJ푸드, TGI·아웃백 같은 외식업체들은 원가 절감에 뒤따를 수익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콩·옥수수·토마토 등 유전자변형생물체(LMO)의 수입 검역 절차 완화가 더해지면 피해자와 수혜자의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한 실험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 콩을 사료로 먹은 쥐의 사산률은 56퍼센트나 됐다. 두부·조미료·빵·과자·패스트푸드·음료수뿐 아니라 백신이나 약품에 들어가는 각종 원료들에 유전자변형생물체(LMO)가 사용되면, 우리의 건강은 더 위태로워지는 반면, 국내의 대형 식품·수입·유통·제약 업체들의 이윤은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의 ‘국익’ 논리대로라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또, 미국 축산업 자본가들에게도 이익이 되니 한국 지배자들과 미국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상생’하는 무역협정인 것이다.

의약품 가격 인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수백 개가 넘는 국내 중소 제약회사들이 경쟁에서 퇴출될 수 있지만, “의약품의 양적·질적 성장, 병원 수의 급증으로 세계 시장 증가율을 2배 이상 앞서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상위 대형 제약사들은 오히려 더 큰 성장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또, ‘얻어낸’ 부문에서도 노동자들과 전체 국민에게도 돌아올 이익은 없고 오히려 피해가 클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 부문의 협정문을 보면 “양국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법 적용을 금지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에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상대국의 노동법에 따라 자국 노동자들의 권리와 생활조건을 하향평준화하려 들 것이다.

계급 분단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완화 등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필수적인 부문에서의 규제 완화는 더 많은 기후 재난과 공해를 낳을 것이다. 의약품 가격 인상과 민간보험 규제 철폐는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을 무력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미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제소(ISD) 조항은 무자비한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규제와 공공서비스를 모두 파괴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렇듯 소수의 기업주·부자들에게는 기회와 부를 안겨 주고 다수의 노동자·민중에게는 커다란 불이익을 가져다 줄 한미FTA 협상은 ‘국익’의 잣대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 운동 진영 내 일부에서 이런 ‘국익’ 논리를 수용해 얼마나 내주고 얼마나 얻었는가 하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운동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미FTA 협상 초기에 반대 운동이 쌀과 스크린쿼터 등의 쟁점을 부각시키느라 의도치 않게 노동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 그 예다.

한미FTA 협상 타결로 가장 크게 나뉘는 것은 한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 또는 산업 부문별 이해득실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조건 악화와 기업주·부자들의 이윤 증대라는 계급 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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