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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 운동 - 이제는 “체결 저지!”다

노무현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가지고 [한미FTA] 협상에 임했다”고 말했다. “앞질러가기 위해서뿐 아니라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우파 언론들도 이제 한미FTA에 따른 구조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FTA 협상 타결과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한미FTA가 “기업 구조조정을 다시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며 “FTA를 산업 고도화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자세”를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노조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며 구조조정을 위해 노조가 고분고분해지라고 요구했고, 〈조선일보〉는 “국내 기업들끼리 더 많은 피를 흘리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내부 경쟁 체제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보완 대책이어야 한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고도화”는 한국 지배자들의 핵심 과제다. 그래서 전 대통령 김대중도 “한미FTA에 올인해야 한다”며 노무현을 거들고 있고, 조중동도 한미FTA에 대한 노무현의 ‘진의’를 의심했던 것을 사과하며 ‘위대한 결단’을 찬양하고 있다. 심지어 조갑제조차 노무현이 “저항과 도전 정신의 소유자”라며 칭찬했다.

지배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바닥을 기던 노무현의 지지율도 30퍼센트 정도로 올라갔다. 이것은 개혁 여망 대중을 배신하고 노골적으로 우파와 동맹을 맺은 효과이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벌써부터 개헌 발의를 놓고 노무현과 우파의 동맹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패턴은 노무현 집권 내내 지속됐다. 노무현은 사회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고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지기 확장 이전, 노동법 개악 등을 강행해 왔고 이제 한미FTA까지 타결한 것이다.

0.1 퍼센트

그럴 때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노무현을 확실히 지지했고, 노무현의 우파적 행동의 결과 우파가 강화됐다. 이명박은 벌써부터 “이번 정권은 FTA에 서명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고 … 다음 정권인 우리 한나라당이 맡아서 [한미FTA를 실행]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반면,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찬반이 갈린 여권의 통합은 더 어려워지고 “여권의 재집권 가능성은 1퍼센트에서 0.1퍼센트로 줄었다”(〈한겨레〉성한용 기자). ‘통합신당모임’의 독자적 신당 추진에서 보이듯 이들의 사분오열과 지리멸렬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천정배는 “한미FTA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됐으면” 한다면서도 “한미FTA가 유일한 잣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한편, 타결을 전후해서 정부·언론·방송 등은 그야말로 ‘융단폭격’ 식의 한미FTA 찬성 홍보를 쏟아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팽팽하던 여론이 조금 변화해 찬성이 좀더 우세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천정배의 말처럼 “대통령과 정부, 언론이 융단폭격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도 30퍼센트 가량 반대가 나온 게 신기”한 일이다.

한미FTA로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기(17.5퍼센트)보다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45.8퍼센트) 생각하면서도 60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이 한미FTA를 지지했다.(〈한겨레〉여론조사)

이런 모순을 한미FTA 반대 운동이 잘 파고든다면 얼마든지 여론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국익’ 논리를 수용하는 우리 운동의 약점 때문에 이런 모순을 파고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협상 타결 직후 방송사 등의 한미FTA 토론에서 ‘국익’을 중심으로 각 산업별 이해득실을 따지는 방향으로 토론이 진행되면서 반대 진영 논자들은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방송사에서 토론자 배정을 불공평하게 해 찬반이 불명확한 사람이 반대 진영에 배치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반대 진영 논자들이 한미FTA가 부를 평범한 사람들의 피해를 강조했다면 더 공세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익’을 중심에 둔 찬반 토론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의 협상을 했다”는 정부의 논리를 반박하기 힘들고, 산업별 득실 계산에 치중하다 보면 노동자들이 각 부문별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 운동은 ‘산업별 득실 계산’이 아니라 ‘계급별 득실 계산’을 통해 한미FTA의 문제점을 들춰내야 한다. 행동이 말을 전혀 좇아가지 못하긴 하지만 미국 노총(AFL-CIO)이 주장한 것처럼, 한미FTA는 “양국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 더 많은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며] … 미국과 한국 다국적기업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갈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 노동자들은 하나가 돼 한미FTA를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퇴진

한국과 미국의 기업주들이 더 많은 이윤을 거두며 부자들이 고급 승용차를 더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될 때, 평범한 노동자 대중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와 유전자 조작 식품과 자동차 매연 가스를 더 많이 먹고 마셔야 되는 게 한미FTA이다.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한미FTA 타결은 무효이며 체결은 저지돼야 하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부는 퇴진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한미FTA 반대 운동은 더 강력하고 대중적인 운동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국민투표 실시 요구는 현 시점에서는 부적절하다. 오히려 지금은 국민투표 찬반으로 쟁점을 흐리지 말고 한미FTA 체결 반대를 분명히 하면서 무엇보다 대중 운동 건설에 매진할 때다.

국민투표 부의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헌법 제72조), 한미FTA를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에게 국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도 않고, 또 노무현 퇴진을 요구하면서 그에게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범국본은 한미FTA 반대 운동 참가자들의 분노와 정서를 반영해 ‘노무현 퇴진’을 요구했다. 참여연대까지 ‘노무현 탄핵’을 말하는 상황에서 ‘노무현 퇴진’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추진할 운동의 과제가 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주장처럼 “구호에 걸맞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그것을 가능케 할 세력 결집과 수단 건설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투쟁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한미FTA가 대중을 희생해 자본의 이윤을 확대하는 것인 만큼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특히 필요하다.

따라서 올해 메이데이는 한미FTA 저지와 노무현 퇴진을 위한 위력적인 투쟁의 장이 돼야 한다. 한미FTA 체결 즈음에 벌이겠다고 약속한 민주노총의 “총력 투쟁”에는 진정한 대중 파업이 꼭 포함돼야 한다.

노동자 파업과 거리의 대중적 반대 시위가 결합해 상승 효과를 낸다면 한미FTA를 저지하고 노무현을 퇴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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