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회의 둘째 날 오후 3시 반쯤 행사장 4층 메인홀에서 농민 포럼이 열렸다. 카이로회의 기간에 40개의 포럼이 동시에 진행됐다. 원래 이 포럼들은 이집트 사회포럼의 행사였는데, 카이로회의와 함께 기획되고 진행돼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농민 포럼 사회자는 IMF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이집트 농민들이 토지에서 내몰리고 있고, 대량의 농약 때문에 농민들의 건강이 악화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계속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자의 소개로 연사들이 발표를 했는데, 그 중에는 한국의 민주노동당 김은진 최고위원도 포함돼 있었다.

첫 연사는 이집트 농민 단체 관계자(?)였다. 그의 발표 요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농민 대출 은행과 신용 은행들이 문제다. 신용조합은 농업 기술을 발전시켜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60년대에는 사회주의 농업 정책이 있었다. 농민 대출은 무이자였고, 비료나 살충제를 구입할 때 정부 보조금이 지급됐다. 그래서 1960년대 농민들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았다. 그 뒤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운 미국의 간섭과 강요 때문에 농업 신용이 삭감되는 등 농민들의 상황이 악화했다. 1970년대에 이집트 정부는 농민 운동을 원치 않았다. 농민 단체의 부패를 구실로 농민 단체들을 해산시켰다. 과거 자급자족하던 면화나 콩 등의 곡물이 수입됐다. 금리가 사실상 17퍼센트까지 치솟아 농민들은 원금을 갚아나가도 빚이 더욱 늘어 농가 부채가 증대했다. 수확을 담보로 대출받던 관행이 토지 담보 대출로 바뀌자 토지 주인이 농민에서 은행으로 변했다. 정부 보조금이 삭감됐다. 비료 등 투입요소를 모두 자유 시장에 내맡겨, 암시장이 형성되고 투입요소 가격이 폭등했다. 농민들이 경제사범이 되고 있다. 농촌 신용 은행을 이용해서 기업들이 농업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정부 농업 정책의 목표가 됐다. 신용 은행 문제를 해결하려면 독자적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때까지 농민 대출 금리는 4퍼센트를 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상환 기간은 적어도 10년 이상 돼야 한다."

두 번째 연사는 이집트 농민운동가였는데, 그의 발표 요지는 이렇다.

"농민들은 50년 걸려 얻은 땅을 다시 폭력적으로 빼앗기고 있다. 1997년 통과된 악법 때문에 농민들은 토지뿐 아니라 가축과 가금류도 빼앗기고 있다. 당연히 농가의 생활수준이 하락했다. 조류독감도 상황 악화에 한몫했다. 농민들의 대규모 실업 사태가 우려된다."

무슬림형제단 소속 수의사라는 세 번째 연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공공 영역이 썩고 있다. 농민들이 최대 피해자다. 그러나 정치 의식 발전 수준이 낮아 법 개악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발암 물질이 포함된 비료 때문에 농민의 태반이 위암 등 각종 암질환에 노출돼 있다. 지금의 봉건주의는 헌법과 법제도의 뒷받침을 받기 때문에 과거의 봉건주의보다 더 악랄하다. 고통의 근원인 사유화 등이 지금의 개헌과 관련 있다. 이번 개헌은 농민의 삶을 파괴하고 권리를 짓밟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개헌에 반대해야 한다. 농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문맹을 퇴치해야 한다. 농민 혁명만이 농민의 빈곤을 없앨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농민과 함께할 것이다."

네 번째 연사인 농민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토지가 농사가 아니라 주택 건설에 사용되고 있다. 농촌의 기능이 농업이 아니라 국내외 자본의 재산으로 바뀌었다. 농업 위기다. 농업법 개악으로, 토지를 다시 옛 지주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봉건주의 회귀가 세계화의 확산이라는 자본주의화와 맞물리고 있다. 야만적 탄압에 맞서는 농민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재앙일 것이다. 자주적 조합과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회의가 논의로 끝나서는 안 되고 당장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 단체 회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주에 농민 26명이 민간인임에도 군사법정에 재판을 받았다. 17명이 풀려났지만, 9명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이들의 죄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뿐이다. 1992년 이후 농민 1백만 명이 토지에서 쫓겨나 실업자, 날품팔이 일용 노동자, 도시빈민이 되면서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농민들은 소액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감옥에 갇히고 그들의 토지는 헐값에 기업들에 매각된다. 발암 물질 포함 비료나 농약, 방사선 물질에 노출되는 것 등 때문에 농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 수익은 모두 정부 관료들과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현 정부는 농민 편이 아니라 기업, 자본가들의 편이다. 이집트의 야당과 저항 운동은 농민 편에 서야 한다."

한국 민주노동당 김은진 최고위원의 발표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은 농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다. 이집트 농민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농가 부채 등 때문에 농약 먹고 자살하는 한국 농민들의 처지도 이집트 농민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고, 주식인 쌀 등이 개방되면서 농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져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 농민의 평균연령이 60세 이상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2004년 칸쿤 투쟁, 2005년 홍콩 WTO 회담 반대 투쟁이 있었고, 2006년 쌀 수입 개방 반대 투쟁하다 농민 두 명이 사망했다. 지금은 한미FTA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라마당 소속 국회의원이 발표했다.

"이집트 국민의 다수가 농민이다. 현재 투쟁에서 두 철학이 충돌하고 있다. 노동자·농민 다수에게 부의 결정권을 줄 것인가 아니면 소수의 기생적 자본가에게 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한때 빈민에게 유리하게 사회구조가 개혁된 적이 있었다. 나세르 치하에서였다. 그러나 그 뒤 퇴보했다. 한때 노동자·농민의 정부였던, 시온주의의 적이었던, 자유·정의를 위한 투사들의 정부였던 이집트 정부가 이제는 그 반대로 바뀌었다. 이집트는 사다트와 무바라크 통치기를 거치며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1백 헥타르 이상 토지 소유가 금지됐고 1960년대에는 이런 규제가 더 강화했지만, 오늘날은 땅을 경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땅을 준다는 원칙에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1997년 이른바 '지대 정상화'반대 투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이집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농민] 반란이었다. 농민들이 경찰과 충돌하며 카이로 시내까지 진출해 투쟁을 벌였다. 이집트 농민들은 결코 겁먹지 않았다.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투쟁을 조율할 이집트 자유 농민 연합 건설 제안을 적극 지지한다. 자유 노동조합 연맹 건설도 필요하다. 무슬림형제단 탄압에 전적으로 반대하며,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다. 그러나 가장 큰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 무슬림형제단은 봉건 지주가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들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 발언자들은 이집트 농민들의 열악한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을 강요하는 제국주의 세력과 무바라크 정권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농민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특히,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지배자들을 비난하고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투쟁을 촉구한 농민들의 열정적이고 급진적인 발언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한 한 농민은 열변을 토했다.

"지금 이 행사장에 농민은 다섯 명뿐이다. 농민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다. 지금 농민을 상대로 농약과 비료를 이용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존권, 삶의 방식, 교육을 빼앗는 것이 곧 전쟁이다. 미국 농기업들이 보내 준 비료 등 때문에 우리가 암에 걸렸다. 우리가 먹는 것은 독약이다. 이렇게 우울한 상황은 모스크의 부패한 지도자들, 정치인들 때문이다."

또 다른 농민의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이 전쟁은 농민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그 땅을 지주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우리를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다. 내가 마을에서 쫓겨날 때 어떤 정당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세 번째 농민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정부를 비난했다.

"지금 정부는 농민들더러 자신의 집에 대해 집세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를 거부하자 투옥하겠다고 위협하고 실제로 두 차례나 자신을 투옥했다."

무슬림형제단 소속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 국민의 다수가 농민이지만, 농민 문제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인터넷과 온라인 상의 단결만 원하지 않는다. 농민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하며 단결해야 한다. 1950년대 토지 분배 성과를 유지하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생산보조금 철폐 문제도 중요하다. 세계 농민들과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발암 물질 포함 비료와 살충제 때문에 이집트에서 암이 감기처럼 만연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소속 국회의원도 발언했다.

"이번 개헌은 부와 권력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 되면 이집트 빈민의 고통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가 개헌에 반대한다. 나는 국회에서 농민들의 질병에 대한 국회 조사를 요구했다. 전 농무부 장관이 1만 3천 건의 암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그는 친이스라엘 인사이다. 아마 10만 건이 현실적인 수치일 것이다."

농민 포럼에 참가하며 느낀 것은, 다국적기업과 각국 부자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에 고통받는 농민들의 현실은 한국이든 이집트든 라틴아메리카든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것과 이에 맞선 저항과 투쟁도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농촌의 현실을 좌우할 정책들이 도시의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농민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도시의 지배계급과 그들의 권력을 타도하는 것뿐임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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