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제대로 보기

 

김인식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인가? 김대중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대중에게 국민적 축제는 노동자들이 기업주들의 공격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은 월드컵을 빌미로 ‘노사정 공동 평화’를 노동자들에 강요하려 하고 있다. 월드컵 관련 8개 업종 노사 대표와 노동부 장관이 함께 파업 중단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8개 업종에는 웬만한 작업장이 모두 포함돼 있다 ― 지하철, 호텔·숙박, 제조업, 정보·통신, 버스·택시, 항공, 금융, 병원 등. 국회는 항공 파업을 막기 위해 항공 산업을 아예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려고까지 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사태는 김대중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김대중은 “국익과 기업 이미지를 위해 노사 분규는 중단돼야 한다”고 협박했다. 김대중은 “국가적 대사”를 내세워 노동자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그는 석탄일에 구속 노동자들을 석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대부분이 석방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라기보다는 기업들의 돈 잔치다. 월드컵 입장권은 16강전이 최저 11만 원에서 24만 7천 원이다. 개막전은 최저 16만 5천에서 최고 55만 원이다. 이것은 공식 가격이다. 암표 가격은 벌써부터 1백만 원을 웃돈다. 우리 나라에서 월 평균 급여가 1백만 원 이하인 노동자 수는 7백만 명이다. 50만 원 미만인 노동자 수는 1백72만 명이다. 40만 원 미만인 노동자만 하더라도 1백만 명이 넘는다. 이러니 대다수 노동자들이 월드컵 경기장에 갈 수 있을까.

게다가 노점상들은 국익과 다국적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월드컵 상암 경기장은 그 곳에서 살던 9백 세대의 도시 빈민을 쫓아낸 뒤에 지어졌다. 반면, 국내 대기업들은 월드컵 입장권 국내 판매분의 5분의 1인 9만 5천 장(1백억 원어치)을 구입했다. 또, VIP 관람석인 스카이박스 27개를 확보했다. 스카이박스는 보통 1억~3억 원이다. 월드컵의 창시자 줄 리메는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들어 세계를 행복한 한 가족으로 단결시켜 줄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평화와 거리가 멀다. 지금 미국은 테러 반대를 이유로 국제적 군사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김대중은 이미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지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김대중은 테러로부터 월드컵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끝내 관철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5월 초에 미국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는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방문 동안에 대테러 전쟁 협력과 월드컵의 안전을 위한 미군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미국이나 한일 양국 정부는 월드컵을 미국의 군사적 패권 강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지배하는 다국적 스포츠용품 업체들은 제3세계의 빈곤을 이용해 이윤 벌이를 한다. 전 세계 축구공의 70퍼센트가 파키스탄에서 생산된다. 가난 때문에 수십만 명의 파키스탄과 인도 어린이들이 축구공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2002년 월드컵 공인 축구공 ‘피버노바’도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만들었다.

월드컵에서 사용되는 축구공은 모두 수제품이다. 파키스탄 어린이들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3~10개 정도의 축구공을 만든다. 공 하나 만들고 받는 돈은 대략 100~150원이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도 일당이 2천 원도 되지 않는다.

두 종류의 민족주의

월드컵은 철저하게 민족주의에 기반한 스포츠 경기다. 그래서 국가 간 경쟁과 적대를 부추긴다. 또한 다국적 기업들의 거대한 돈벌이 무대다. 월드컵은 경쟁 같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 팀의 16강 진출이 국민적 염원인 양 몰아간다. 이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짓밟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경쟁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형태다. 이 때문에 월드컵은 흔히 승부 조작, 판정 시비, 뇌물, 경기장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데도 월드컵을 지지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적 대립과 분열을 조장해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약화시키려는 지배자들의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월드컵에 기권하거나 대중 정서를 무시하는 과도 좌익적 태도를 취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대다수 노동자들이 월드컵을 보고 즐긴다. 따라서 월드컵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자들의 정서에 구체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월드컵을 어떻게 관전할 것인가?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각국 지배자들은 월드컵을 이용해 민족주의를 부추기곤 한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국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그러다 보니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표출될 때가 많다. 그러나 모든 민족주의를 똑같이 봐서는 안 된다.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억압하는 민족주의다. 반면,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억압당하는 민족주의다. 전자가 반동적이라면 후자는 진보적이다. 억압당하거나 억압당한 경험이 있는 민족들은 종종 스포츠를 통해 제국주의적 억압자들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곤 한다. 예컨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들은 축구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적 울분을 표현하곤 했다. 40년 동안의 일제 식민지 억압 경험과 기억 때문에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은 한일 경기에서 한국 팀이 이기기를 바란다. 미국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 한국인들이 미국의 오만한 패권주의에 분개해 거센 반미 정서를 드러낸 것도 그런 경우다.

이번 월드컵 때 대다수 한국인들은 한국 팀이 미국 팀에 이기기를 바랄 것이다. 거만한 미국을 축구 경기에서라도 꺾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대중 정서를 깊이 공감할 필요가 있다. 6월 10일 한미전 때 동료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면서 한국 팀을 응원하자. 한국에서 반미는 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란드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조차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다. 한국인이 폴란드인이나 포르투갈인한테 억압당한 경험도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두 유럽 나라가 제국주의 열강도 아니다.(그렇다고 한국이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는 나라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나라들과의 경기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월드컵을 보면서 올바른 월드컵 관전법을 얘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