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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좌파 진영 분열의 아쉬움

4월 22일의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는 모두 12명이지만, 그동안 주류 언론들은 우파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사회당의 중도좌파 후보 세골렌 루아얄, 중도우파 자유주의자 프랑수아 베이루 등 주류 정당 후보 3명과 극우 파시스트 후보 장­마리 르펜의 움직임을 주로 보도해 왔다.

주류 정당 후보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그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개혁’을 지지하고, 제국주의적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해 유럽헌법(2005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된)을 다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의 체제에 불만이 많은 도시 청년들, 특히 대도시 근교 이민 가정의 청년들을 길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강력한 이민 규제와 치안 정책을 주장하며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루아얄은 이른바 ‘문제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신병 훈련소로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프랑스가 미국 제국주의의 단순한 꼭두각시 구실을 해서는 안 되고, 유럽연합에서 프랑스의 독자적 발언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직전 유엔 안보리 논쟁 같은 미국 제국주의와의 노골적 갈등을 피하고 이란 문제에서 친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우파 후보인 사르코지를 당연히 선호한다. 이는 루아얄의 정책이 사르코지보다 좌파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루아얄이 자신의 지지 기반 때문에 신자유주의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하고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흔들릴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중도우파 일간지 〈더 타임스〉는 “사르코지가 프랑스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이끌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우세로 2차 투표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FN)의 후보 르펜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상당 부분 주류 후보들 덕분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민 규제 공약을 내세우자 르펜의 입지가 강화됐다. 현재 르펜은 12∼15퍼센트의 지지율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6명의 좌파 후보들(트로츠키주의자 2명, 공산당 후보 1명, 반세계화 운동가 후보 1명, 녹색당 후보 1명, 기타 좌파 후보 1명)은 상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프랑스 노동자·청년·학생·농민의 정서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후보는 바로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대중의 가장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후보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이다.

브장스노는 “우리 삶이 기업주들의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구호 아래 월 최저임금 50퍼센트 인상, 공공주택 공급증대, 대중교통 무료화, 주 32시간 노동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런 공약들은 1995년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 2003년 교사 파업과 라르작 반WTO 시위, 2005년 유럽헌법 부결과 대도시 근교 이민 청년 항쟁, 2006년 CPE(최초고용계약법) 저지 투쟁 등으로 급진화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 때문에 브장스노의 선거 유세 분위기는 마치 전투적 시위처럼 뜨겁다. 브장스노가 루앙 유세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한 번 쓰고 버리는 클리넥스 티슈나 즙을 짠 뒤 버리는 레몬쯤으로 생각한다”며 자본가들을 비난했을 때 1천여 명의 지지자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브장스노의 지지율은 공산당 후보인 마리­조르주 뷔페나 ‘반세계화 운동’ 후보인 조제 보베보다 높다. 현재 유권자의 40퍼센트에 달하는 부동층의 다수를 이루는 급진화한 청년 노동자와 대학생들 중 적잖은 수가 브장스노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대중적 호응이 2005년 유럽헌법 부결이나 2006년 CPE 저지 투쟁처럼 프랑스 정치 지형을 뒤흔들 성과로 연결되기는 힘들 듯하다.

상상력

급진화한 대중조차 르펜과 사르코지 같은 우파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는 견제 심리 때문에 브장스노나 다른 좌파 후보에게 선뜻 표를 던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대중은 울며 겨자 먹기로 루아얄을 찍거나, 과거 사회당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에서 ‘중도파’ 베이루에게 표를 던지거나, 아니면 기권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좌파 진영의 책임도 크다. 만약 이들이 유럽헌법 부결과 CPE 저지 투쟁 후의 분위기를 이용해 좌파 단일 후보 마련에 성공했다면 사르코지나 루아얄과 함께 주목받을 후보는 극우파 르펜이 아니라 좌파 단일 후보일 것이다.

좌파 후보 5명의 현재 지지율만 단순 합산해도 르펜의 지지율보다 높고, 좌파 단일 후보 마련 실패 후 울며 겨자 먹기로 루아얄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20퍼센트의 지지율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프랑스 대선 지형을 크게 왼쪽으로 이동시켰을 것이고, 1995년 공공부문 파업 이후 급진화해 온 대중이 유력한 정치적 대표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이는 좌파들이 오랫동안 제기해 온 각종 반전·반신자유주의 대안들이 전국적 이슈가 되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프랑스 좌파들이 선거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연말 대선을 앞둔 한국의 진보 진영은 프랑스 좌파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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