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지 한 달 만에 노무현 정부는 유럽연합(EU)과 포괄적 FTA 추진을 시작했다. 한미FTA로도 모자라 계속 ‘외부 쇼크’를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쉴 틈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진보적’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한미FTA와 다르겠지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한-EU FTA도 신자유주의 협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U의 통상장관 피터 맨덜슨은 지난 4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EU와 한국은 비슷한 분야를 다룰 것이기 때문에 한미FTA 타결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며,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인 FTA를 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EU FTA 협상 EU측 수석대표로 내정된 가르시아 베르세로는 의약품 분야에서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한미FTA와 동등한 수준의 의약품 시장 개방과 지적재산권 강화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유럽헌법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이른바 ‘환경 강국’이라는 EU의 명성이 무색하게 배기가스 자가진단 장치 설치 의무화의 유예를 요구할 것이다.

결국 한미FTA 협상과 마찬가지로 공공 서비스와 대중의 보건과 환경 보호 문제가 다시 한 번 FTA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EU 지배자들의 진정한 실체를 안다면 이건 뜻밖의 일이 아니다. 지금 EU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세계에 퍼뜨리는 주요 행위자 중 하나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회원국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퍼센트를 넘지 않도록 강제해 복지예산 축소를 압박했다. 2005년 부결된 유럽헌법에는 “무제한적인 자유 시장 경쟁”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있다. 최근에는 “노동법 현대화”라는 미사여구 아래 노동조건 악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유럽헌법 부결 운동 등 대중적 반대에 부딪히자 이제는 똑같은 내용을 비민주적 국제 통상협정을 통해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EU가 FTA를 추진하는 중요한 이유는 지지부진한 WTO 협상을 대신해 FTA를 시장개방용 무기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FTA는 공공 서비스 사유화를 포함해 유럽헌법이 담으려 한 각종 정책들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무현은 “한-EU FTA는 국내 반대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한-EU FTA의 의제인 공공 서비스, 건강권, 환경 문제 등은 유럽과 한국의 노동자·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한미FTA에 반대한 광범한 단체들은 똑같이 신자유주의 협정인 한-EU FTA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는 유럽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고무할 것이다. 한국 진보진영은 노무현의 기대를 헛되게 만들 구체적 반대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