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개방만이 살 길”이라며 한미FTA 체결 추진을 정당화한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고 곧 “쇄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고립된다는 말은 황당한 주장이다.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세계시장에 충분히 개방돼 있다. 미국 케이토(CATO) 연구소는 2003년에 한국의 경제개방도가 1백23국 가운데 일본·노르웨이와 같은 26위라고 밝혔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도 40퍼센트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론스타가 ‘먹튀’로 무려 4조 5천억 원의 차익을 얻기 직전이고,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 매각으로 1조 1천5백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떠나는 등 자본시장도 개방돼 있다.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70퍼센트로 OECD 평균 대외의존도(GDP(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수입량) 50퍼센트보다 높은 편이다. 반면 일본은 22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미FTA 반대 운동이 쇄국론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흑색선전이다. 물론 한미FTA 반대 운동의 일부가 ‘자립경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고립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

반대 운동 진영의 일부가 한미FTA 자체가 아니라 졸속성이나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것이나, 또 다른 일부가 동아시아 경제 블록 등을 구상하며 한중FTA 우선 체결을 주장하는 것만 봐도 반대 운동 진영이 쇄국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다함께’를 비롯한 급진 좌파들도 세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적 기업 세계화에 반대한다.

대안세계화 운동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이라고 불릴 만큼 이미 세계적 차원의 국제적 운동이다.

그런데도 노무현과 우파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쇄국”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세계 경제에서 뒤쳐지고 그나마 계속되는 경제 성장마저 멈추면 삶이 더욱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무현과 한국 지배계급 대다수가 절대선으로 믿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만이 경제를 성장시킬 방법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1980년대 이래 점차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도입됐지만, 1990년대 내내 유럽연합의 성장은 정체했고 미국에서는 클린턴의 ‘신경제’ 호황 이후 주식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지금은 부동산 거품에 의존해 근근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제3세계도 총 연간성장률은 1961∼80년에 5.5퍼센트에서 1981∼99년에 2.6퍼센트로 하락했다. 중국만이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은 1990년대 말까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설사 한미FTA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대중이 그 혜택을 볼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지배자들이 한미FTA에서 노리는 핵심은 바로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다.

IMF 이후 수출 증대로 기업들의 이윤은 크게 늘었지만 일자리 감소와 비정규직화로 양극화가 심화한 것이 한미FTA의 미래를 잘 보여 준다.

노무현 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경쟁력 향상”을 얘기하며 ‘선진 경영기법 도입’ 운운한다. 그러나 론스타가 선보인 선진 경영기법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정리해고 통보하기’였다.

이마트

또, 다국적기업 월마트를 물리친 ‘토종’ 이마트가 ‘선진’ 경영의 예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마트가 월마트를 물리친 ‘경영 노하우’는 비정규직 양산과 삼성에서 이어져 온 노조 말살 정책이다. 대형 할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70∼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한 달 임금은 대부분 60만∼1백만 원 수준으로 노동자 평균임금 2백40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따라서 FTA 논쟁의 핵심은 대중의 삶을 자본의 이윤 추구에 개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세계적 생산 체계를 이용하면서도,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 추구만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빈세’ 등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핵심 경제부문을 국유화하고, 부유세와 같은 누진세를 도입해 사회복지 제도를 확장하는 조처 등은 그 출발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시장 경쟁의 무계획성에 내맡기지 않고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면 대중이 참여해 생산과 분배를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경제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