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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은커녕 재앙만 키운 이라크 ‘증파’

오는 5월 1일이면 부시가 이라크 전쟁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한 지 4년이 된다. 4년 전 이 날 부시는 전투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내려 의기양양하게 “임무 완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 지금 이라크는 부시에게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돼 버렸다.

이라크 위기는 미국의 평범한 대중 속에서 광범한 환멸 ―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잘 드러났다 ― 을 자아냈을 뿐 아니라,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도 점령 상황에 대한 커다란 우려 ― 이라크스터디그룹(ISG)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잘 드러났다 ― 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2월 중순에 시작된 미군 ‘증파’는 이러한 위기에 대한 부시 나름의 대책이었다. 그는 이러한 ‘증파’, 특히 바그다드에서의 병력 증강과 미군 활동 강화를 통해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막고 ‘종파 간 폭력’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파’ 뒤 두 달이 지났지만 이라크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지표들은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점을 보여 준다.

부시의 주장과 달리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수는 줄지 않았다. 병력 증강이 집중된 바그다드에서는 민간인 사망자 수가 다소 줄었지만 바그다드 밖에서는 사망자 수가 되레 더 늘었다.

새로운 작전 수칙에 따라 민간인 주거지에 배치된 탓에 미군은 저항세력과 훨씬 더 자주 근거리 전투를 치러야 했고, 그 결과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AP〉가 수집한 통계를 보면 지난 2월 14일 미군 ‘증파’가 시작된 이래 바그다드에서는 그 전 두 달보다 21퍼센트나 많은 미군이 죽었다.

‘증파’가 안정은커녕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이라크와 미국 국내에서 모두 불만이 고조됐다.

미군 ‘증파’ 뒤 한동안 몸을 사리며 잠시 사태를 관망하는 듯했던 사드르 운동(강경파 반미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운동)은 지난 4월 9일 거의 1백만 명을 동원한 점령 반대 시위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시위에서 알 사드르는 이라크 보안군 병사들에게 마흐디군과 싸우지 말고 점령군에 맞서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또, 얼마 전 사드르 운동 소속 장관 6명과 30여 명의 의원들은 말리키 정부가 미군 철수 시간표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정부와 의회에서 철수했다.

근거리 전투

만약 미군이 사드르 운동과의 정면 대결을 택한다면 사드르가 득세하고 있는 이라크 남부 지역 전체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리 되면 사태는 통제 불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라크 상황 악화에 대한 미국 국내의 불만 고조는 최근 민주당이 주도한 이른바 ‘철군법’의 상·하원 통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이 법안의 통과를 두고 “민주당이 [중간선거 이후] 부시에게 가장 심각한 도전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법안이 미군 철수를 못박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법안은 각종 명목으로 상당 규모의 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나마 철군 시한은 구속력이 없다. 부시가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구멍’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법안의 통과는 대중의 광범한 환멸이 가하는 압력과 함께 이라크 상황 악화와 ‘증파’의 성공 전망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 내의 고조되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법안에는 ‘증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목표’와 ‘기준들’(대체로 부시 자신이 밝힌 ‘기준들’을 다시 못 박고 있는 것이다)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그러한 기준들의 충족 여부에 따라 점령 정책의 향방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시] 정부의 실수와 무능으로 점철된 이라크 전쟁 4년이 지난 지금”(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더는 부시에게 “백지수표”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도 부시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이라크에서 치욕스럽게 물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대안이 없고, 아마도 모종의 타협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후퇴를 막고 부시 일당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록 강제하는 일은 여전히 독립적 반전 운동의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