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한-EU FTA 협상이 시작됐다.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과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인 맨덜슨은 회담 개시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비관세 장벽 철폐”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개방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EU FTA도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선진화”나 “제도 개선”을 명분으로 공공 서비스를 다국적기업들에게 넘기는 등 “초국적 자본의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임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한-EU FTA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나서기로 했다.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편집자인 크리스 뱀버리는 EU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차기 총리 내정자인 고든 브라운과 보수당 지도자 데이빗 캐머런은 둘 다 심각한 EU 회의론자들이다. 브라운은 EU가 철저한 규제 완화와 시장 자유화 확대에 실패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이 우파적 EU 회의론에 질린 일부 노동조합원들과 좌파들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옹호하는 자유시장[신자유주의] 정책들의 대안으로 EU를 내세우려 한다.

그러나 연금, 퇴직 연령, 노동권, 부자들을 위한 빈민들의 조세 부담 증대 등을 우려한다면 EU에 대해서도 우려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려해야 한다.

영국은 유로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럽 화폐 통합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어느 나라가 연금은 가장 적고, 퇴직 연령은 가장 높고, 법인세율은 가장 낮을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른 EU 회원국들과 경제적 경쟁을 하는 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EU는 영국의 최대 무역 시장이다.

한편, EU는 미국이나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유럽의 평균소득은 미국보다 30퍼센트 낮지만, 유럽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미국보다 훨씬 더 짧고 생산성이 더 높다.

유럽 전역에서 노동시간 증대, 생산성 제고, 임금 억제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노동법 현대화”에 대한 토론문을 제출했다. 그 핵심은 기존의 고용 보호 조항들을 점차 폐지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노동조합이 획득한 합법적 고용 보호 조항들을 회피하는 개별적·비정규직 계약들이 급증했다.

이것은 흔히 청년 노동자들의 “불안정” 고용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그들에게는 상시 고용이나 연금 혜택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소득도 더 낮고 휴가도 거의 또는 전혀 누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 집을 사기도 힘들다.

불안정

체코 공화국이 제정한 새 노동법은 잔업 증대를 허용하고 고용주들의 채용·해고 권한을 강화했다. EU의 어느 한 국가가 그런 조처들을 도입하면, 다른 국가들도 다 잽싸게 따라한다.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쟁”이다.

EU의 각 회원국은 대기업들에게 최상의 이윤 창출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영국에서 진행중인 연금 삭감은 우리의 노후 보장 제도를 점차 무너뜨리려는 EU 각국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의 일부다.

영국은 사유화의 길로 훨씬 더 멀리 나아갔지만, 영국과 경쟁하는 EU 각국도 보건의료·교육 등의 서비스에 시장을 도입하고 있다. EU는 시장을 위해 창설된 연합이다.

EU가 세계화와 앵글로-색슨 형 자유시장[영미식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최악의 폐해에서 유럽의 시민들을 어떻게든 보호한다고 묘사하는 것은 EU가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창출하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유럽 시장 창설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다국적기업들이다. 그들은 EU 회원국들이 가장 낮은 비용과 가장 높은 이윤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그 대가는 사회 기층민들이 치른다.

유럽 전역에서 빈부격차가 더 커졌다.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 노동조건 악화, 제2차세계대전 뒤 획득한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의 해체를 감수하라는 말을 듣고 있다.

EU의 공동농업정책 덕분에 일부 프랑스 농민들이나 그리스의 올리브 재배농이 거액을 벌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농촌의 소규모 생산자들은 점차 그들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들에 밀려 쫓겨나고 있다.

그리고 EU 평균 남녀간 소득 격차는 여전히 15퍼센트다. 심지어 33퍼센트나 되는 나라들도 있다.

EU의 또 다른 피해자는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유럽 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점점 더 엄격해지는 이민법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3월 24일 EU 회원국 정부 수반들은 로마조약 50주년을 기념하려고 베를린에 모일 것이다. 현재 EU 의장국인 독일의 우파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새 조약의 기초가 될 [EU의] “사명과 가치”를 승인하는 선언을 발표할 것이다. 메르켈은 이 선언이 2년 전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유럽헌법을 대체하기를 바란다.

유럽헌법을 새 조약으로 대체하면 굳이 국민투표라는 골치 아픈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 결과를 단지 유럽에 대한 거부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는 유럽헌법이 옹호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대중에게 거부당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다.

부결

유럽헌법은 “경쟁이 자유롭고 규제되지 않는 국내 시장”을 약속했다. 유럽헌법이 부결됐지만, EU의 새 회원국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EU 가입[올해 1월 1일] 전에 자국에서 “시장 경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그리고 유럽헌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유시장 유럽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더한층 빨라지고 있다.

또한, EU는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을 위해 남반구를 희생시켜 세계 시장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도 주도했다.

지난주에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 피터 맨덜슨은 대부분 옛 유럽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 연안의 78개국에게 그들이 유럽 시장에 주요 농산물을 수출할 때 유리한 조건을 허용하던 협정을 올해 말까지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라들은 EU산 수입품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고 서비스를 사유화해서 유럽 기업들이 그런 서비스를 인수하도록 허용해야만 유럽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 되면 현지의 공업과 농업은 파괴될 것이고, 일부 최빈국들의 교육·보건의료 서비스는 더한층 악화할 것이다.

식민주의

한편, “유럽의 요새화” 때문에 남반구와 유럽 접경 지대가 점차 군사화해서, 유럽의 해군 함정들이 지중해를 순찰하고 리비아에는 감금 수용 시설이 설치됐다.

그 목표는 유럽의 대기업들이 의존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입국을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더욱 축소해서 사실상 시민권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EU 집행위원장은 아프리카 출신 고급 두뇌 학생들에게 즉시 유럽 시민권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남아공의 국회의원 카다르 아스말은 이 계획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두뇌 유출이 아니라 남반구의 지적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고 “교활한 식민주의”이다.

EU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동력이다. 또한, EU는 매우 비민주적이다. 주요 결정들은 27개 회원국 정부 지도자들의 회의인 유럽이사회에서 비밀리에 내려진다.

우리가 선출한 유럽의회는 유럽이사회의 결정들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거부권만을 갖고 있다. 브뤼셀에서 약 1만 5천 명의 “로비스트들”을 고용하고 있는 재계·금융계의 소수 특권층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

유럽 중앙은행은 민주적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유럽 중앙은행의 임무는 오직 금리를 올리거나 내려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유럽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으로 유로화 사용 지역의 [공식] 실업률은 무려 10퍼센트나 되게 됐다.

유로화 사용 지역 안에는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공동 한계가 설정돼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하는 국가는 유럽 화폐 통합에서 축출될 수 있다.

비교적 저항이 약할수록 유럽 자본은 더 쉽게 신자유주의 유럽을 건설할 수 있다. [현재의] 약한 저항은 부분적으로 1980년대에 유럽 노동운동이 겪은 패배를 반영한다.

영국에서 사태가 훨씬 심각했지만, 마거릿 대처가 광부 등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덕분에 다른 나라 정부들이 쉽게 그 본보기를 따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게 노동조합원들과 사회운동들이 여전히 충성을 바쳤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제 무덤 파기는 영국에서 절정에 달했지만, 그것은 더 광범한 패턴의 일부였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저항의 수준은 영국보다 유럽 대륙에서 더 높았다. 그러나 그런 저항은 대체로 하루 파업과 시위로 제한됐고, 저항운동의 지도자들은 양보안이 제시되자마자 이를 얼른 받아들였다.

사회주의자들인 우리는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저항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반신자유주의, 국제주의, 반인종차별주의, 반제국주의를 비타협적으로 고수하는 새로운 급진 좌파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영국의 EU 가입에 반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EU가 부자들의 클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닥을 향한 경쟁”도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EU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사회복지 수준을 모든 EU 회원국 시민들에게 확대 적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최상의 연금, 가장 많은 최저임금, 가장 짧은 노동시간, 무상교육, 가장 엄격한 환경 규제가 모든 EU 회원국에 적용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브라운·캐머런·메르켈이나 자크 시라크의 뒤를 이어 프랑스 대통령이 될 후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유럽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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