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태국 방콕에서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4차 기후 변화 보고서 중 3편 “기후 변화 완화대책”을 발표했다. 각각 지난 2월과 4월에 발표된 4차 보고서 1편과 2편은 기후 변화의 원인과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3편은 기후 변화를 멈추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노력의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한 구체적 기술들과 정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IPCC는 8년 뒤인 2015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계획을 제시하며 이를 위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6퍼센트를 차지하는 선진국들의 배출 감소 노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석유 가격 상승 같은 시장의 힘만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없을 것”이라며 이들 선진국 정부들의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또, 1970년부터 2004년까지 70퍼센트나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에너지 공급 부문(1백45퍼센트 증가)과 수송 부문(1백20퍼센트 증가)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여러 대안들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2030년 기준으로 세계 총생산의 3퍼센트에 해당하는 재원을 온실가스 배출 감소 노력에 투입한다면 이번 세기 말까지 온도 상승폭을 2도 안팎으로 붙들어둘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그러나 IPCC가 최상의 목표로 제시한 계획이 모두 실현되더라도 2050년에는 20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해수면이 18∼38센티미터나 상승해 방글라데시 등 저지대에 사는 수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다.(〈맞불〉39호 ‘기후 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를 보시오)

시장

따라서 이런 난민들을 수용하고 집과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 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IPCC가 자신들이 지난 2월과 4월에 지적한 바 있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마도 선진국 정부들의 입김이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특히, 교토협약조차 가입하지 않은 미국 정부는 이번에도 보고서 작성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핵 발전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핵 발전은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전혀 아니다. 핵 발전은 풍력·조력·태양광 발전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와 달리 우라늄 채취·수송·농축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환경단체인 영국 ‘지구의 벗’은 2004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핵 발전은 “풍력 발전보다 온실가스를 50퍼센트나 더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또,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고가 보여 준 끔찍한 위험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다.

무엇보다 핵 발전을 기후 변화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과 지역 패권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야욕에 청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기후 변화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세계를 끔찍한 위험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미국을 교토협약에 참여시키려면 이런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다른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변명은 군색해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뿐 아니라 영국·러시아·중국·일본·호주·한국 등 다른 선진국 정부들도 최근 핵 발전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선진국 정부들은 교토협약이 시행되기 전부터 끊임없이 미국의 요구에 타협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배출권 거래제’인데, 이산화탄소 1톤당 배출권에 가격을 매겨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이를 거래할 수 있게 하면 결국 가격 압력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미 배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양만큼 배출권을 할당해 준다면 최상의 상황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현재대로 유지될 뿐이다.

예컨대 영국 최대 규모의 석탄 발전소인 드랙스 발전소는 현재 매년 5백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데, 영국 정부는 이 발전소에 연간 1천5백만 5천 톤을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줬다. 덴마크·아일랜드·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배출권을 구입하려는 동기는 적은 반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 대한 ‘친환경’ 투자로 새로운 배출권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다. 따라서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느낄 만한 가격 ‘압력’은 아직까지는 전혀 없는 듯하다.

그 결과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이산화탄소 1톤당 가격은 2004년 1월 12유로에서 2006년에는 1유로로 떨어졌다.

2050년까지 최소한 지금보다 50∼80퍼센트를 줄여야 온도 상승을 2도 안팎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조언에 비춰보면 배출권 거래제는 사실상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해결책’인 것이다.

결국 이런 배출권 거래제를 바탕으로 한 IPCC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도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다. IPCC는 이산화탄소 1톤당 가격이 1백 달러인 경우 매년 16∼31기가톤씩 배출을 줄일 수 있고 그리 되면 수십 년 내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가격이 2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면 매년 5∼7기가톤밖에 줄일 수 없다고 한다. 현재 가격을 고려하면 IPCC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에 의존하는 식의 대안은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되레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바이오 에너지(바이오 디젤, 바이오 에탄올 등)처럼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에너지를 도입하는 일조차 시장에서 조절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지금처럼 카길 같은 대기업들이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방대한 산림을 파괴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 농민들을 토지에서 몰아내는 일들을 막지 못한다. 심지어 미국에서 멕시코로 수출하던 옥수수로 바이오 에탄올을 만드는 바람에 멕시코에서는 주식인 또르띠야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따라서 IPCC가 전 세계 GDP의 3퍼센트만 투자하면 최악의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이는 시장에 대한 약간 불확실한 기대를 바탕으로 추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제에 미치는 효과’보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우선 순위로 삼는다면, 다시 말해 기후 변화를 멈추기 위해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과 수송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급속히 이루려면 분명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군비를 축소하고 화석연료 기업과 핵 발전에 투자되는 보조금을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과 수송 체계 개편에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또, 화석연료 기업들에 환경세를 부과하고 선진국 정부와 기업들이 가진 기술들을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에 무상으로 전해 준다면 그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무엇보다 IPCC가 앞선 보고서에서 지적한 어마어마한 미래의 위험을 고려한다면 이런 투자는 핵 개발이나 석유 기업들과 자동차 기업들의 이익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

모순과 소심함으로 가득 찬 유엔의 기후 변화 대책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미국 정부와 이를 핑계 삼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주요 선진국 정부들, 그리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각오가 돼 있는 석유·자동차 산업복합체들의 저항을 고려하면, 기후 변화를 멈추기 위한 진정한 대안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힘이 필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기후 변화 행동이 더 강력해져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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