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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과: 좌파의 분열이 극우파의 성장을 낳았는가?

지난 4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나찌인 국민전선(NF)의 장-마리 르펜이 집권 사회당 총리 리오넬 조스팽을 물리치는 정치적 ‘지진’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기존 집권 좌파에 대한 소수 극좌파의 노선 투쟁이 극우파 돌풍의 일등 공신”이라며 극좌파를 비난했다. ‘노동자 투쟁’(LO)의 아를렛트 라기예르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 같은 극좌파 후보들이 같은 ‘좌파’인 사회당의 지지 기반을 잠식해 결국 르펜을 도와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 몽드〉도 지적했듯이 4월 21일 1차 투표에서 “좌파 지지율이 44퍼센트로 전보다 높아진 점을 보면, 좌파의 분열이 패배 원인은 아니”다. 조스팽 스스로 자신의 선거 정책이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좌파와의 분열’을 꾀했다. 그래서 유권자의 75퍼센트가 시라크와 조스팽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오히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 극좌파 후보들이 시라크와 조스팽에게 환멸을 느껴 아예 기권하거나 아니면 르펜을 지지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의 표를 끌어당겼다. 라기예르와 브장스노가 얻은 표를 합치면 거의 3백만 표(11퍼센트)나 된다. 사실, 시라크야말로 르펜과 국민전선의 부상을 결정적으로 도와 준 자다. 1980년대 시라크의 공화국연합(RPR)을 비롯한 보수 정당들은 지방 선거에서 국민전선 후보들을 연합 공천했다. 국민전선은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도 보수 정당들은 국민전선과 선거 협정을 맺었다. 1995년 대선에서 시라크는 표를 흥정하기 위해 르펜과 몰래 만나기까지 했다. 이번 선거에 시라크는 범죄에 대한 우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력을 강화하고 경범죄도 더욱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르 몽드〉는 “시라크가 르펜을 도와 준 셈”이라고 지적했고, 르펜 자신도 시라크가 “선거 운동의 르펜화”를 도와 주고 있다고 비꼬았다.

1995년 11월에 시라크는 사회 복지 제도를 ‘개혁’한다며 공공 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이에 맞선 공공 부문 노동자 대투쟁(“뜨거운 겨울”)은 프랑스 사회를 좌경화시켰다. 사회당은 그런 좌경화 물결을 타고 1997년 총선에서 공산당, 녹색당과 함께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조스팽의 사회당 연립 정부는 대중의 기대를 배신했다. 조스팽 정부는 전임 우파 정부들보다 더 많은 공기업을 사유화했다. 주 35시간 노동제가 도입됐지만,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임시직·계약직이었다. 1999∼2000년에 파견 노동자 수는 70퍼센트나 증가했다. 실업률은 아직도 9퍼센트대다. 작년에 다농·월풀 등 다국적 기업들이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했지만, 조스팽 정부는 수수방관했다. 노숙자 문제나 열악한 주거 환경도 개선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공식 빈곤층은 6백만 명을 넘는다. 조스팽은 의료·사회보장·연금 제도도 공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수 좌파’ 연립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야말로 르펜이 부상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결국, 르펜의 부상은 시라크와 조스팽의 의도치 않은 합작품인 셈이다. 5월 5일 결선 투표에서 수백만 명이 르펜을 물리치기 위해 시라크에게 표를 던졌다. 사회당과 공산당도 “더 작은 악”인 시라크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단지 시라크에게 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결코 파시즘을 저지할 수 없다. 지금 시라크는 6월 총선에서 르펜 지지표를 끌어오기 위해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그는 TV 연설에서 강력한 준법 질서를 확립해 르펜 지지자들을 만족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가 권위에 대한 존중”을 제일 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또, 자유 시장을 신봉하고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친기업 성향의 장-피에르 라파랭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보수 정당들에 의존해서는 결코 파시즘을 패퇴시킬 수 없다. 파시스트의 집권 뒤에는 언제나 보수 정당들의 지원과 지지가 있었다. 1920년대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자유당의 지원을 받아 집권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독일의 주요 보수 정당들이 그의 총리 취임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보수 정당들은 프랑코 장군을 지지했다.

오직 대중적인 거리 시위만이 파시스트들의 준동을 막고 잠재적인 파시스트 지지자들에게 진정한 대안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

1백50만 명이 반르펜 시위를 벌이다

5월 1일 메이 데이에 프랑스에서는 1백50만 명 이상이 르펜 반대 시위를 벌였다. 파리 거리를 가득 메운 1백만 명의 시위대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 서로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흑인 노동자들은 “파시즘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 노예의 후손”이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국민전선(FN)의 머리글자를 비꼰 “F는 파시스트, N은 나찌”라는 구호와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후예”라는 구호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실업자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르펜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자기 생활에 넌더리가 나서 그런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어요. 저는 거리에서 싸우는 청년들, 노동조합, 투쟁 정신을 보면서 제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저는 르펜을 반대합니다.”많은 시위대는 시라크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수많은 추문에 휩싸인 시라크를 사기꾼에 빗대어 “나찌가 아니라 사기꾼에게 투표하라”는 구호도 유행했다.

그러나 기권하거나 백지 투표하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사무직 노동자 레미는 생전 처음으로 백지 투표를 할 거라고 말했다. 자신을 좌파라고 소개한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의 마리안느는 “시라크도 노동자의 적”이고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번 메이 데이 시위는 르펜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