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변화와 계급투쟁의 발전에 계속 조응해야 하는, 살아 움직이며 발전하는 이론이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마르크스 사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다. 연속혁명론은 20세기를 통틀어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로서 그 함의는 아주 광범하다.

불행히도, 연속혁명론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애물은 바로 그 이름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연속(permanent) 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들을 때 드는 생각은 혁명이 끝없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혁명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흥미진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끝없이 영원히 계속되는 혁명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도 어긋난다. 왜냐하면 인간사에서 폭력과 충돌을 없애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사실, ‘연속’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른 용어들, 예컨대 볼셰비즘이나 멘셰비즘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붙은 별명일 뿐이다. 그리고 연속혁명론의 기본 사상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기 전까지는 그 별명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 역사적 맥락은 무엇보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였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에서 경제적·사회적·정치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사회였다. 인구의 대다수는 17세기 서유럽에 비길 만한 조건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농민들이었다. 영국에서 농노제가 사라진 지 4백 년도 더 지난 1861년에야 비로소 러시아에서 농노제가 폐지됐다. 러시아의 지배계급은 여전히 귀족 지주들이었다. 근대적 공업과 근대 공업의 산물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도시들, 특히 상트페체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이제 갓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농업이 여전히 우세했다.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도 없었다. 정치 권력은 황제인 짜르의 손에 집중돼 있었고 짜르의 지배는 절대적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전의 프랑스와 견줄 만했다.

러시아의 신흥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직면한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점에서 그들은 모두 일치했다. 러시아가 짜르 왕정을 전복할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혁명이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차이는 다가오는 이 혁명의 정확한 성격과 동역학, 따라서 혁명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해야 할 전략적 구실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1905년 혁명의 여파로 전면에 부각됐고, 여기서 세 가지 태도가 분명해졌다.

트로츠키

첫째는 플레하노프와 멘셰비키의 태도였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지가 지도하는 부르주아 혁명일 것이고 그 결과는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제는 이 과정을 지원하면서 그 속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그 뒤의 일이다.

둘째는 레닌과 볼셰비키의 태도였다. 그들은 혁명의 근본 성격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점, 즉 혁명의 결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이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너무 보수적이고 소심해서 자신을 위한 혁명을 스스로 이끌 수 없다. 노동계급이 농민과 동맹해서 민주주의 혁명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레온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연속혁명론이었다.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노동계급이 혁명을 지도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레닌과 견해가 같았다. 그러나 혁명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로의 전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다.(‘연속 혁명’이라는 말은 1850년에 마르크스가 독일 혁명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표명하며 사용한 구호에서 따왔다.)

러시아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인 데다 경제의 저발전으로 인한 후진성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중대한 반론이 제기되자 트로츠키는 러시아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혁명을 국제 혁명의 첫 단계로 이해해야 하고 국제적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반박했다.

1917년의 실제 러시아 혁명은 트로츠키의 전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혁명은 짜르를 타도한 2월 반란으로 시작됐다. 2월 반란은 노동자들 자신의 자생적 행동이었다.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에 집착한 멘셰비키는 처음에는 노동계급을 억제하려고 애쓰는 보수적 세력이 되더니 나중에는 10월 혁명에 반대하는 노골적인 반(反)혁명 세력으로 전락했다. 볼셰비키의 어중간한 태도는 사태 전개, 특히 노동자 권력의 맹아로서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가 등장하고 망명지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레닌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요구를 바탕으로 한 노동자 혁명의 전망으로 볼셰비키당을 급속히 설복하자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써 레닌은 사실상 트로츠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편으로 트로츠키는 볼셰비키당에 가입하고 레닌과 함께 10월 혁명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었다.

소비에트

연속혁명론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부정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이 국제적으로 혁명의 물결을 고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혁명이 패배하자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게 됐고 스탈린주의 반동이 득세할 수 있었다.

스탈린주의는 연속혁명론을 트로츠키주의 이단으로 비난하고 멘셰비키 단계론으로 되돌아가, 처음에는 1920년대의 중국 혁명에서 나중에는 민주주의 투쟁이나 민족 독립 투쟁이 벌어지는 나라 모두에서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추구했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을 일반화해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적용했다.

이 점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엄청나게 중요했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이 사회주의의 주체라고 주장(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명제)한 것 때문에 많은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이 인구의 다수인 선진 공업국들, 특히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트로츠키는 노동계급이 인구의 소수인 나라에서도 노동계급은 농민과 동맹해서 그리고 국제 혁명의 첫 단계로서 권력을 장악할 수 있고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 프로그램을 정말로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봉건제가 사라지고 부르주아지가 거의 모든 곳을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기본적 민주주의나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곳은 어디나 연속혁명론이 여전히 현실 관련성이 있고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개량주의자들·민족주의자들·스탈린주의자들 등은) 항상 당면 투쟁의 ‘단결’을 위해 사회주의를 제쳐 두라고, 심지어 노동계급의 기본적 권리조차 제쳐 두라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연속혁명론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노동자 운동이 민주적·민족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지도함으로써 그런 당면 투쟁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런 투쟁을 노동자 권력과 국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