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당국은 제 창작 과정의 일부인 저술뿐 아니라 사진 작품에 대해서까지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씌우고 있습니다. 성경의 잠언에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속엔 하나님은 없다’란 구절에서 ‘하나님은 없다’만 떼어내면 정반대의 의미로 왜곡되는 것과 같이 저들은 예술 작품을 칼질해 혐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창작 과정에서 사진을 발표한 것은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예술적으로 완성됐다고 생각되는 작품과, 둘째는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위한 알권리를 위해 발표된 것들입니다.

‘국가기밀이기에 촬영해선 안 된다’가 아니라 그것은 ‘창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창작을 통해 기밀 보호보다 더 큰 가치를 국가는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헌법의 취지에 맞습니다. 창작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관점도 문제지만 기밀의 테두리에 씌워 탄압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제가 공개한 두번째 종류의 사진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진들입니다. 핵무기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화학무기 역시 국민에게 치명적인 것이기에 정부가 기밀의 테두리에만 둘 일은 아닙니다. 열화우라늄탄은 우발적 사고로 사람이 피폭했을 때 핵무기에 의한 내폭 증상과 똑같은 질환을 일으키는 무기입니다. 설령 그것이 기밀일지라도 공개돼야 할 것인데, 제 발표는 합법적 경로를 거쳐 획득된 자료들입니다.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사진 작업을 해온 제 사진은 군사기밀보호법의 혐의가 씌워진 채 어쩌면 ‘모내기’ 그림으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되신 신학철 화백의 그림처럼 철창에 갇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운명에 있습니다.

‘사람 몸의 중심이 어디일까요?’라는 질문에 데모크리토스는 ‘심장’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아픈 곳’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는 온통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후자의 입장에 서고 싶습니다.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입니다. 세계의 중심 또한 전쟁과 기아와 빈곤 때문에 ‘아픈 곳’ 입니다. ‘아픈 곳’에 사회의 모순과 세계의 모순이 집중돼 있습니다.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예술가에게 그것은 숙명의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제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가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결’, 평화와 통일의 ‘결’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의 요구에 국가보안법이 더는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