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푸르의 고통과 비극은 석유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주요 자원 쟁탈전과 패권 다툼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행위와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1978년 미국계 석유 다국적기업 셰브런이 수단 남부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고 개발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내전 와중에 직원들이 반군에게 살해당하자 셰브런은 수단에서 철수했다. 당시 미국은 억압적인 수단 군사 정부를 지지했다. 냉전의 경쟁자였던 옛 소련이 남부의 반군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난 1991년 수단의 이슬람주의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자 미국은 수단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제재를 가하고, 과거의 적(敵)인 남부 반군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지원했다.

수단의 이슬람주의 정부는 1996년 오사마 빈-라덴을 축출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지만 클린턴 정부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파에 대한 보복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수단의 제약공장을 미사일로 폭격하는 등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들었다. 중국은 수단과 원유 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채굴권의 지분 40퍼센트를 확보했다. 또, 파이프라인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 수단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미국도 조심스레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수단 정부도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고 있었다. 1999년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는 수단 정부의 제2인자이자 이슬람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그인 하산 알-투라비를 축출했다. 그리고 9·11 사건이 터지자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그 대가로 부시 정부는 수단에 대한 국제 금융 규제를 해제했다.(테러지원국 지정 자체는 해제하지 않았으므로 미국의 직접투자는 여전히 금지됐다.) 또, 남부 반군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2005년 1월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평화협정은 오히려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가 양보하는 것을 본 다르푸르 반군들이 요구 수준을 더 높였기 때문이다.

수단의 유전 사업에 복귀하려는 미국의 계획은 다르푸르 분쟁으로 계속 차질을 빚었다.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전보다 약해졌음을 감지한 수단 정부가 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미국의 잠재적 경쟁국인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미국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래서 부시는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구실로 수단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만약 수단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다면 사우디아라비아 맞은편에 또 하나의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고, 그리 되면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케냐·우간다 등 수단 접경국들과 함께 친미 정권 블록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미 미국 국무부는 바시르 정권 몰락 이후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작성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