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합의 이행의 발목을 잡아 왔던 이른바 BDA 문제가 해결되는 듯하다. 지난 1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BDA에 동결된 우리 자금 해제 과정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것이 확인됐으므로 IAEA 실무단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이번 BDA 문제 해결 과정은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고 영향력도 약화하는 미국의 처지를 잘 보여 준다.

원래 미국은 BDA의 북한 계좌를 증거도 없이 불법으로 낙인찍어 놓고는 ‘찾아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수는 계속 늘어났다.

이란은 유엔 안보리가 정한 우라늄 농축 중단 시한을 무시했고, 5월 2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농축 활동을 오히려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대이란 추가 제재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5월 25일과 6월 7일에 북한은 대함 미사일 발사 시험에 나섰다. 시험 발사는 매우 자제된 방식이었지만,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전 미사일 발사를 상기시켰다.

북한은 BDA 문제 해결을 국제 금융 체제에 합법적으로 편입되는 신호로 봤기 때문에 ‘현금만 빼가라’는 미국의 해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더러 자신이 싼 똥을 치워달라고 했지만 중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다급해진 부시는 러시아의 푸틴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행태는 한편의 코미디가 됐다. 부시는 BDA의 북한 자금이 불법이라는 낙인을 끝내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독재 국가”의 “불법 자금”을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거쳐 러시아로 송금하는 것을 허용해야만 했다. 존 볼턴의 불평대로 미국 정부가 나서서 “불법 자금을 세탁해 준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의 꾀죄죄함은 한술 더 뜬다. 노무현 정부는 BDA 문제가 난항을 겪을 때 대북 식량 지원을 유보하며 부시의 눈치를 봤다. 미국과 공조해 북한핵을 해결한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는 소위 “평화개혁 세력”에게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찾는 격’이다.

그러나 BDA 문제가 해결됐다 해서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은 결코 아니다.

첩첩산중

사실, BDA 북한 계좌 동결 해제는 2·13 합의 이후 30일 내에 해결했어야 하는데, 무려 4개월이 걸린 것이다. 이는 2·13 합의가 과거의 합의들과 달리 ‘각 단계마다 걸리는 이행 시한을 축소하고 구체화했다’는 낙관적 평가를 무색케 한다.

BDA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은 IAEA 사찰관을 복귀시키고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해야 한다. 아마 여기까지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언론이 예측하듯이 이후 과정은 첩첩산중이다. 2·13 합의에서 미국이 당장의 위기를 봉합하려고 어려운 문제들을 다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당장 핵포기 대상 프로그램 목록을 둘러싸고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한은 이를 부인한다. 또, 2·13 합의에서 핵 ‘불능화’ 이행 시한과 수준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도 없다. 그래서 북한은 합의 당일 ‘불능화’를 “임시 가동 중지”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4년 핵위기 때보다 북한 핵프로그램을 검증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당시는 북한 핵프로그램이 비교적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 정도만 검증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이미 핵실험까지 한 마당이다. 검증이 까다로워진 만큼 미국이 바라는 수준까지 검증하려면 이라크에서 했듯이 주석궁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압박의 목소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실, 미국은 북한핵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 질서를 관리하려 하기 때문에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 한다. 최근 중국을 겨냥한 미일동맹이 강화됐다. BDA 문제 해결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은 민간 기업들간 군사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고 이전할 수 있도록 방위기술 개발 협약을 개정키로 했다. 이 협약은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우선 적용될 것이다.

2·13 합의의 한 발짝 진전은 미국이 힘의 한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는 결정적 파국도 전향적 해결도 없는 채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동북아시아에서 장기적 불안정이 심화하는 가운데 그럴 것이다. 일각에서의 낙관적 판단과 달리, 2·13 합의 이후에도 동북아시아 군비 경쟁은 오히려 격화했고 불안정은 심해졌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저항과 함께 제국주의 패권 질서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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