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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연합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가자

민주노동당이 진보대연합 결성을 위한 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지난 3월 중앙위원회에서 이 결정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그랬다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있게 협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제 대선까지 겨우 반 년 남았다). 이런 시간의 제약이 진보대연합을 불충분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결정이 정치적 효력을 낼 수 없을 만큼 늦은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정치권은 여전히 혼전중이다. 범여권은 대통합파, 소통합파, 열우당 사수파 등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두 후보는 서로 ‘죽어야 사는’ 관계가 됐다. 누가 살아남든지 간에 생존자의 이마에는 부패와 타락의 주홍글씨가 박혀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NGO의 정치세력화를 천명한 쪽도 쉽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미래구상’의 일부 주요 인사들(최열 등)은 범여권과의 통합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지만, 단체로서는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죽어야 사는’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 진보대연합을 결성하기 위한 정치적 장(場)은 여전히 존재한다. 30퍼센트 가량 되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 중 민주노동당이 흡수한 10퍼센트 바깥에 존재하는 “20퍼세트 가량의 부동층”은 아직 정치적 거처를 정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범여권, 제3세력 등이 이들을 붙잡기 위해 경쟁하지만 어느 세력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혼미한 상황이다.

범여권이 대통합을 이룰 가능성은 크지 않은 데다(범여권 내부에는 노무현의 실정을 뒤집어 썼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믿는 분파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대통합을 한다 해도 “진보 성향의 부동층”이 ‘잡탕 정당’에 지지를 보낼 리 만무하다.

‘미래구상’으로 대표되는 ‘제3세력’에 대한 정치적 관심도 이전만 못 하다. ‘미래구상’이 뜨지 않는 이유는 “범여권 대통합의 한 부분으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으며 신당[‘미래구상’] 추진 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어서 “이 신당[이] ‘도로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때문이다.]”(지금종)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진보 성향 부동층”의 지지를 확실하게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대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취할 태도를 묻는 질문에 6.3퍼센트만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답변했다(〈한겨레〉6월 13일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가망성이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진보대연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민중참여경선제가 현 정치 상황을 타개할 충분한 해결책이 못 됐던 것이다. 민중참여경선제가 당원직선제보다 개방적인 것은 사실이나, 당원직선제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규칙이다. 이것으로는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하는 “20퍼센트의 진보적 부동층”을 견인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만으로는 2퍼센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이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결성 제안에 주목했던 까닭이다.

새 진보정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지금종 씨 등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최근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진보대연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김민웅 교수도 민주노동당이 “진보세력 전체의 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결성 내지는 진보세력의 정치적 연대로 연합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진보정치〉326호).

가능성 없는 정치적 미사여구?

진보대연합은 가능성이 없는 정치적 미사여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 진보대연합의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 막 협상 논의를 위한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것만도 아니다. 당장 임종인·지금종·김민웅 씨 등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얼마 전 한미FTA 반대 행사를 의논하기 위해 만난 한 진보적 목사는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제안을 무척 반색했다).

무엇보다, 진보대연합의 정치적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김대중마저 범여권이 대통합하지 않으면 필패(必敗)라고 주장하는 판에, 진보진영이 단결하지 않는다면 대선 승리 전망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정치적 필요성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연합의 대상이자 실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대연합이 실체 없는 대상의 그림자 밟기를 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과도하다. 일이 되게끔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안 될 거야, 안 될 거야’ 하며 수수방관하다 ‘거봐, 안 되잖아’ 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만의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이 가능성을 현실화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능동적 태도이다.

‘민주노동당 후보가 진보대연합의 후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하는 물음도 파투(破鬪)를 놓는 것처럼 들린다. 민주노동당원이라면 마땅히 자기 당 후보가 진보대연합의 후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어떻게 그것을 진보대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다른 단체와 합의에 도달하려면 일부 요구조건을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치의 ABC이다. 이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이 당명과 후보 등의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타협의 내용물이 될 것이다.

협상하는 쌍방이 타협을 통해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타협을 논의할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타협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우리가 희망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고 그 타협을 통해 쌍방이 이득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다소 어깃장을 놓는 듯한 이런 물음 이면에는 민주노동당 중심성 강화론이 짙게 깔려 있다. 흥미롭게도, 일부 PD계열만이 아니라 자민통 계열 일부도 이런 생각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다. 적지 않은 자민통 인사들이 과거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 ― ‘비판적 지지’는 적어도 1992년까지는 옳았지만 1997년부터는 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 전술이었다 ― 라는 역사적 원죄 의식이 있어 이번에는 민주노동당 중심성 강화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름에 겨울 옷 입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20퍼센트의 진보적 부동층”을 향해 개방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협상은 상대가 있으니만큼, 민주노동당이 진보대연합의 형태를 확정지어 제안하기 어렵다. 성사 가능성을 더 높이고 참가 부담감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진보 선거연합(선거 공동전선)을 더 선호하지만, 임종인·지금종 씨 등은 통합 진보신당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진보대연합의 형태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어렵사리 오늘날의 민주노동당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과거의 전통을 놓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 전통이 새로운 현실에 맞지 않아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면 오히려 커다란 정치적 실책이 될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 국민의 80퍼센트 가량이 고정적인 지지 정당이 없다. 바꿔 말해, 국민의 대다수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보대연합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정치 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