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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어디로?

5월 27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가 민영 방송 라디오카라카스TV(RCTV)의 공중파 면허 갱신을 허가하지 않자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둘러싼 논쟁, RCTV를 지지하는 학생 시위가 잇따랐다.

그러나 RCTV는 2002년 반(反)차베스 군사 쿠데타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지지했을 뿐 아니라 직접 참여했고, 차베스를 지지하는 대중이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실은 일절 보도하지 않는 등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부정했다. 사실, 차베스 정부가 RCTV의 면허 갱신을 불허한 이유는 정부 비판 때문이 아니라 벌금 미납 등 6백여 건에 이르는 방송법 위반 행위 때문이다. 그 중의 압권이 군사 쿠데타 가담이었을 뿐이다.

또, RCTV는 차베스 정부에 적대적인 방송들 가운데 비교적 소규모 방송일 뿐이고 대규모 족벌 방송들과 신문들은 여전히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며 차베스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정책 도구 노릇을 해 온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조차 베네수엘라 정부의 RCTV 면허 갱신 불허 조처가 민주주의나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한편, RCTV를 지지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은 우익 단체들이 동원한 중간계급 우익 학생들이고, 시위 지도자들 중에는 반정부 야당 정치인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RCTV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고 긴장 분위기를 조성해서 이를 바탕으로 장차 차베스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에 차베스가 실시한 미션 수크레 등 무상교육의 혜택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은 RCTV 지지 시위가 아니라 오히려 RCTV 면허 박탈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해 차베스를 지지했다. 전자보다 후자의 시위가 더 대규모이지만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으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주류 언론들의 위선을 보면, 베네수엘라에 언론의 자유가 확실히 보장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렇듯 지금의 베네수엘라 정치·사회 상황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차베스 정부가 등장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이른바 “볼리바르 식 혁명”은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가 승리하면서 시작됐다. 차베스의 당선은 1989년 ‘카라카소’(수도 카라카스의 민중 항쟁)에서 시작된 구체제 붕괴 과정의 정점이었다. 이 점에서, 베네수엘라의 정치·사회 격변은 이미 1989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카라카소는 1980년대 내내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1989년 2월 베네수엘라 정부가 IMF와의 협약에 따라 기름값과 교통요금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하룻밤 사이에 기름값과 교통요금이 갑절로 뛰었다. 이에 항의하는 대중의 약탈·방화가 잇따랐고, 군대와 경찰이 이 자생적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을 살해했다. 이런 무자비한 폭력 탄압으로 민중 항쟁은 결국 진압됐지만, 이 사건은 베네수엘라의 기성 정치 체제를 뿌리째 흔든 계기가 됐다. 대중은 기성 정치권에 대해 엄청난 불신과 불만, 환멸을 갖게 됐다. 1992년 2월 우고 차베스가 군사 쿠데타를 기도한 것은 이런 대중적 불신과 분노를 반영한 것이었다. 비록 쿠데타 자체는 실패했지만 차베스는 전국에 생방송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중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새로운 정치 대안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에 또 다른 군사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이 또한 실패했지만, 이제 주류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대 주류 정당의 하나였던 기독교사회당(COPEI)의 거물 정치인 라파엘 칼데라가 자신이 창립 멤버였던 당에서 분열해 나와 대선에서 당선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변화 염원이 광범했기 때문이다. 특히 칼데라는 의회에서 차베스의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투로 발언해 대중의 호감을 산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1994년 대통령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차베스는 점차 정치 노선을 바꿔, 평화적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기성 주류 정치권에 대항하는 광범한 선거연합 ‘애국의 기둥’을 결성해 선풍적 인기를 끌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물론 여기에는 기성 정치 세력들의 사분오열과 지리멸렬도 한몫했다.

그러나 1998년 대선 당시 차베스의 정치는 결코 사회주의 정치가 아니었다. 최근 차베스는 자신이 1998년 대선 이후 한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지향했다고,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모종의 ‘제3의 길’을 추구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집권 초기에 차베스는 제헌의회 소집과 새 헌법 제정 등 주로 정치 개혁에 치중했다. 그러나 제헌의회 소집은 사회주의의 법률적 기초를 마련하지도, 정치적 세력 관계를 결정적으로 바꿔 놓지도 못했다. 1999년 제정된 새 헌법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 공공성뿐 아니라 사유재산과 자유시장도 옹호하는 등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의 정치·사회 세력 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새 헌법에 따라 2000년에 국회가 다시 구성되고 차베스 지지 세력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차베스는 사회 개혁 입법들을 뜻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01년 말 이른바 49개 개혁 입법도 대통령령으로 포고할 수밖에 없었다. 선출되지 않은 진정한 권력이 국회 밖에서 강력하게 버티며 압박했기 때문이다.

차베스의 정치가 사회주의 정치로 발전하기까지는 차베스 자신이 트로츠키의 말을 빌어 표현했듯이 “반혁명이라는 채찍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채찍들을 꺾는 데서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대중 행동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2002년 4월 우익 군사 쿠데타를 패퇴시킬 때도 그랬고, 2002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된 자본가들의 직장폐쇄를 극복할 때도 그랬다. 특히, 직장폐쇄에 맞선 영웅적 투쟁을 벌이며 의식이 고양된 노동자들은 부패한 어용 노총 CTV를 대체해 새로운 민주노총 전국노동자연합(UNT)을 건설했다.

또, 2004년 8월의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에서 차베스가 승리하는 데도 기층 대중 동원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차베스는 처음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정당들과 그 지도부를 결집시켜 우익 세력들의 서명 운동에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차베스 지지 정당들과 그 지도부는 대중 동원 방식으로 대항 운동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효과가 없었다. 결국 우익 세력들의 서명 운동과 청원을 막지 못한 그들은 서명 용지가 가짜라고 주장하며 국민투표를 거부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정치 감각이 뛰어난 차베스는 오히려 국민투표 요구를 받아들인 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이용했다. 국민투표 대응 기구 지도부를 기존 정당들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의 기층 운동 단체 출신 인사들로 구성한 뒤, 직접 지역사회와 거리에서 대중을 만나고 동원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건설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렇게 대중의 참여와 동원을 바탕으로 세 차례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자신감이 높아진 차베스는 무상의료·무상교육·토지개혁 등 각종 사회 개혁 조처들, 이른바 “미션”을 과감하게 추진하며 2005년 1월부터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소수 자본가·특권층에게만 이로운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을 폐기하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 추구를 통해 다수 대중의 이익을 추구하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식 대안’(ALBA)을 주도해 왔다.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자유 시장과 기업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시대에 차베스와 볼리바르 식 혁명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몽상이 아님을 웅변한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과정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분명하게 결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사태 전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베네수엘라의 운동은 단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것을 넘어 대안을 건설하려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또, 차베스는 촘스키부터 트로츠키까지 다양한 급진적 사상가들을 인용하면서 단지 자본주의의 폐해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리바르 식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는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베네수엘라의 기존 자본주의 국가가 아직 분쇄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 아니라 볼리바르 식 혁명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완결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차베스가 비록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의 의미는 분명치 않다. 차베스는 예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19세기 라틴아메리카 해방 운동의 지도자였지만 일종의 군사 독재자였고 말년에는 계몽군주제를 지지한 시몬 볼리바르의 열렬한 추종자이기도 하다. 올해 초 차베스는 트로츠키주의자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하며 자신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말했고, 지난 4월 22일 방송에서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이행기 강령을 지지한다며 국민들에게 트로츠키의 저작들을 읽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 혁명이라고 말했다. 이 점에서는 지금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대중이 “정치 무대에 자신들의 접근을 막아 온 장벽들을 부”수고 “이것들을 뛰어넘어 기존의 대표 기구들을 쓸어버”리고 “직접 개입하여 새로운 체제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 혁명이다. 이 점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아직 혁명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최상의 빈곤 퇴치 방법은 권력을 민중에게 주는 것이라는 차베스의 말에 자극받고 투쟁 경험을 통해 의식이 고양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인수해 자주관리·공동경영에 나서고, 농민들이 토지개혁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점거하고, 빈민들이 주택과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사회 조직화에 나서는 등 “대중의 직접 개입”이 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기존의 대표 기구”, 즉 차베스가 집권 전부터 물려받은 기존의 국가 기구도 여전히 건재하다. 반차베스 진영의 소수 특권층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근본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 관료 집단은 차베스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개혁을 마지못해 실행하거나 심지어 좌절시킨다. 그래서 차베스 자신도 볼리바르 식 혁명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내부에 있다”고 한탄하고 “국가 기구 내부의 이 관료적 반혁명 때문에 [개혁 정책들이] 일탈”할까 봐 우려했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차베스는 통합사회주의정당(PSUV)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PSUV가 아래로부터 건설될 것이라는 전망과 견해도 있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베네수엘라의 기층 활동가들 일부는 상명하복 식으로 다양한 좌파 인자들에게 PSUV 가입 압력이 가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처음에 이런 압력에 저항하던 UNT 지도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조직을 PSUV에 가입시키기로 방침을 바꿨는데, 차베스의 구상에 원칙적으로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전술적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PSUV 건설이 올바른 조처냐 아니냐는 당연히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이고, 진정으로 통일된 좌파 대중 정당은 유기적인 논쟁 과정에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준(準)강제적 통합은 PSUV가 정부의 관료적 전달 장치로 전락할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다.

또, PSUV는 지금의 차베스 진영 내의 모순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차베스 진영 안에는 근본적 정치 지향이 다른 세 경향이 있다. 첫째, 이제는 개혁의 “굳히기”에 들어가야 하고 자본가들과 상층 계급의 특권을 더는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 둘째, 쿠바 식 권위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경향(그런데 지금 쿠바의 권력자들은 권위주의와 시장을 결합한 중국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셋째, 철저한 사회 변혁과 자본주의의 파괴와 대중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경향. 이 사뭇 다른 세 경향을 하나의 조직으로 뭉뚱그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정치 권력의 궁극적 토대인 경제 권력도 여전히 옛 소수 특권층의 수중에 남아 있다. 차베스의 개혁 조처들은 베네수엘라 자본가 계급의 부와 재산에 타격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부격차가 확대됐다고 차베스 자신이 인정했다. 고유가 덕분에 석유 판매 수입(收入)이 증대하자 빈민들의 소득보다 부자들의 재산이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생산관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생산물의 분배 결과가 조금씩 바뀌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주요 생산수단을 소유·통제하는 세력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석유공사의 통제권도 2002~2003년 직장폐쇄 이후 차베스 정부에 넘어오기는 했으나, 기간산업에서의 노동자 통제 배제 논란 때문에 아직 노동자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논란은 석유 산업뿐 아니라 전력이나 철강 같은 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볼리바르 식 혁명의 상황은 모순적이고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동안 제공된 무상의료·무상교육 등의 실질적 개혁들도 석유 판매 수입을 재원으로 추진해 온 것들이다. 따라서 유가 하락 등 경제 사정이 변화하면 개혁 프로그램들을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특권층의 이윤과 재산을 침해해서라도 계속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직면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차베스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이런 개혁의 성과들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룩한 개혁의 성과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혁명을 통해 그 성과를 확실히 굳히고 영속화하는 것이다.

요컨대, 베네수엘라 변혁의 성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차베스의 실험이 직면한 장애물들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미국이 비록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이른바 “차베스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지배계급들의 노력은 페루와 멕시코 대선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또, 차베스는 자본주의를 넘어 21세기의 사회주의로 나아가자고 주창하지만 그 자신은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기구의 수반이라는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들은 대중운동이 낡은 국가 기구를 대체할 수 있는 민중 권력 기구들을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을 때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혁명적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기 시작한 베네수엘라의 조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취약하고 내부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이 조직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로 제 구실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심각한 약점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베네수엘라의 사회운동과 변혁이 승리로 끝나기 바라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은 무엇보다 미국 제국주의와 베네수엘라의 소수 특권층 모두에 맞서 싸우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대중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노동조합 등 기층 대중 조직들과 베네수엘라의 대중 조직들 사이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고 긴밀하게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의 다양한 급진적·혁명적 좌파들과 대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운동들을 옹호하면서도 볼리바르 식 혁명의 불균등성·모순·한계도 직시하며 베네수엘라 운동들과 진지한 정치적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사회운동이 베네수엘라의 변혁 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간과하는 점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한편,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최전선은 단연 이라크다. 이라크 민중의 저항에 부딪혀 미국 제국주의는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패배를 겪고 있다.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미국의 군사력을 이라크에 묶어 둠으로써 라틴아메리카에서 저항이 발전하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더 분명한 반자본주의 동역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따라서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에 맞선 국제적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사회변혁 운동가들의 가장 중요한 국제주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투쟁을 비롯한 세계적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의 성공을 위해서는 부시 정부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물리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차베스 정부 관리가 말했듯이, 베네수엘라 민중은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빚지고 있다. 사실, 중동에 발이 묶인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대북 압박과 개입에 부담과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민중 운동을 방어하고 지지하기 위해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지금 여기 한국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투쟁과 운동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사활적이다. 이런 세계적 시야와 국제주의적 관점,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운동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한국사회포럼2007 중 ‘베네수엘라의 개혁과 혁명: 우리에게 주는 교훈’ 토론회 발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