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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이주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정진우(외국인 노동자 인권문화센터 실장)

지난 3월 25일부터 5월 25일까지 외국인 이주 노동자 자진 등록 기간에 총 92개 국가 25만 5천9백78명(전체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96.2퍼센트)이 신고했다. 그 동안 외국인 이주 노동자 제도의 중요한 해결 과제인 ‘불법 체류’(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법무부의 기막힌 선처(?)로 1년 동안 출국 준비 기간을 얻었다. 그 동안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해 왔던 연수 제도와 미등록 이주 노동자 문제를 근본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정부가 또 하나의 편법을 자행한 것이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등록을 받으면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주목할 것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5월 15일 발표한 〈단순기능 외국인력정책의 문제점과 정책방향〉이라는 정책 제안서(이하 제안서)다. 이 정책 제안서는 단순 기능 외국 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독소조항이 있는 정부의 ‘고용허가제’안

연수 제도가 낳은 폐해를 지적하며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노동연구원 제안서의 기본 취지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제안서의 구체적 내용이 지나치게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맞춰진 데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정부가 ‘연수 제도와 고용 허가제를 병존하면서 사업주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커다란 문제다. 그 동안 현대판 노예 제도인 산업기술제도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얼마나 침해했는지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고 폐지 여론이 높은데도 연수 제도 온존을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이다. 둘째, 제안서에는 ‘원칙적으로 직장 이동을 금지’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을 금지하면 인권 침해·폭행·부당 해고·차별 대우, 사용자측 계약 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강제 노동이 이뤄질 수 있다. 사업장 이동 금지는 고용허가제의 내용 중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셋째, 제안서의 귀국 보증금 등의 조항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귀국을 전제로 한다. 귀국 보증금은 강제 적립금과 마찬가지로 이주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막기 위한 감시 대책일 뿐이다. 기존 산업 연수 제도에서 강제 적립금이 연수생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 독소 조항이었으므로 새로 도입하는 제도에 결코 포함돼서는 안 된다.

이처럼 제안서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볼 때, 그 동안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에서 제시한 ‘노동허가제’에 턱없이 모자라는 내용일 뿐 아니라 노동부가 지난 2000년에 발표한 ‘고용허가제’보다도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다.

연수제도 확대·추가 도입 움직임

노동부는 고용 허가제가 중심인 외국 인력 제도를 모색하는 한편, 현행 연수 제도를 확대·강화하려 한다. 중소기업청과 산업자원부는 ‘산업 연수생 4만 명 조기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는 고용 허가제를 도입하면 기업체 인건비 부담이 1인당 월 37만 원 가량 증가한다는 이유로 연수 제도의 온존을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자진등록을 강요하고 월드컵이 끝나면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정부 부처 내에서도 외국 인력 정책 방향이 제각각이다.

외국 인력 정책을 일방적으로 ‘노동자 관리와 통제의 용이’, ‘수요자의 처지만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다뤄서는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현시기 집중해야 할 투쟁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수제 확대 저지, 이주 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도입

우선 지금까지 줄기차게 전개해 온 산업 기술 연수 제도 철폐 투쟁과 연계해 연수생 확대·추가 도입을 저지해야 한다. 연수생 확대·추가 도입은 정부 정책의 혼란을 틈타 연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음모이므로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둘째, 법무부에 자진 등록해 1년 간 출국 유예를 받은 이주 노동자와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사면·합법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자진 신고’는 정부가 미등록 노동자를 무조건 강제로 출국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새로운 외국 인력 제도 도입의 전제 조건으로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합법화를 전면에 부각해야 한다.

셋째, 노동부가 추진하는 고용 허가제의 독소 조항을 폐지하는 데 운동을 집중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한 제도 개선은 분명 이주 노동자에게 또다른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궁극으로 노동 허가제를 축으로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동부를 강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외국 인력이 국내 노동 시장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송출입 비리 문제, 송출국과의 관계도 역시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에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선언, 요구 혹은 반대만으로는 현실화할 수 없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인권이 바로 서고, 한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노동할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올곧게 세우고, 구체적인 대안을 계속 마련해 나가야 한다. 외노협에서는 노동 허가를 기본으로 하는 ‘외국인노동자 고용 및 인권보장에 관한 법률’을 입법 청원했고, 민주노총과 여러 단체에서도 같은 취지로 제도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노력 속에서 분명 올바른 외국 인력 정책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