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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한 탈출

환영받지 못한 탈출

정진희

얼마 전 중국 당국이 망명 신청을 하러 주중 한국 총영사관에 뛰어든 탈북자를 강제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중국 공안(경찰)이 주중 일본 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야만적으로 끌고 간 지 한 달여 만에 일어났다.

중국은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총영사관 진입은 없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중국은 연행한 탈북자 원씨 석방과 대사관 난입 사과 요구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남한 영사관 직원을 폭행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탈북자를 연행한 것은 이대로 두다가는 망명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올해 3월, 25명이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뒤 중국은 계엄을 방불케 하는 탄압을 했다. 그러나 망명 시도를 막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17일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8차례 총 21명이 남한 총영사관과 캐나다 대사관에 진입했다.

잇단 탈북자 망명 사건이 국제적 초점을 형성하자 그 동안 북한 난민 문제에 나몰라라 하던 미국이 갑자기 나서고 있다. 미국은 중국 당국의 북한 난민 연행에 “심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6월 11일에는 미국 국회가 만장일치로 중국 당국의 탈북자 단속을 비판하며 강제 송환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것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다. 지난 달 미국은 북한 난민 9명의 망명 신청을 거부한 바 있다. 게다가 결의안 채택 10여 일 전에 미국은 북한 난민의 망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법상 정치적 망명은 이미 미국에 있거나 국경에 있는 사람만이 신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 역시 역겹기 짝이 없다. 지난 달 일본 영사관에 중국 경찰이 난입했을 때 일본 영사관측이 협조한 사실이 드러나 체면을 구기자 일본 정부는 “몰랐다”며 발뺌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일본 시민단체 회원의 폭로로 곧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 회원은 일본 총영사관에 탈북자들이 진입하기 이틀 전에 일본 총리 관저 관계자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렸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일본은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1992∼2001년) 일본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해마다 평균 1백55명뿐이었다. 실제 망명 허용은 더욱 낮아 26명에 그쳤다. 주요 30개 국 가운데 최악이다.

일본은 지난 번 망명 시도 후에는 탈북자가 뛰어드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아예 영사관 문을 닫아 버렸다. 6월 8일 5명 망명 시도 직후 1미터 가량 열려 있던 철문을 완전히 닫도록 지시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모두 북한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남한 정부는 겉으로는 ‘전원 수용’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미온적이다. 중국 경찰이 대사관에 난입해 탈북자를 연행하고서도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 큰소리치는데도 정부 당국자는 “중국측의 입장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탈북자들의 망명이 늘어나면서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탈북자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려 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국무회의에서는 6월부터 탈북자 정착 지원금을 최대 50퍼센트까지 삭감하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전쟁과 기아, 환경 파괴 등 자본주의가 낳는 재앙들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2001년 유엔난민담당관실의 자료만 봐도 전 세계 난민은 2천1백8십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체제의 희생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난민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경 통제 강화와 함께, 국내에 들어온 난민·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미국·일본·남한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북한 난민들을 정치·경제·사회의 불안정을 증대시키는 골칫거리로만 여기고 있다.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자들이 북한 난민들을 구제할 리 만무하다. 그들은 오히려 국경 통제 강화로 노동 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이주와 망명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