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을 통해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사건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한국산업연구원 원장의 성희롱 사건, 대학 교수의 여조교 강간 사건에다 한 대학 부총장이 여직원과 여조교들을 성희롱한 일이 벌어졌다. 또 대원의 여성 노동자 77명이 그 동안 자신들에게 성희롱을 일삼아온 공장장과 과장을 집단 고소했는가 하면, 롯데호텔 여성 노동자들 가운데 70%가 직장 상사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했다며 고소했다.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학교와 관공서, 기업 등에 성폭력 및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경찰은 성폭력 범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역시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온갖 차별과 편견을 부추겨왔다.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며칠 만에 간단히 뒤짚어버렸고 해고와 임금 삭감을 통해 대다수 여성들의 삶을 파탄내고 있다. 틈만 나면 생리휴가 등 여성 보호 조항들을 폐지하려는 정부가 “성폭력 근절”을 외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경찰은 성폭력을 끝장내기는커녕 오히려 힘있는 성폭력범들을 보호하고 있다. 김대중의 측근인 한국산업연구원장은 물론, 대원의 공장장과 과장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경찰은 성희롱을 일삼은 롯데호텔 회사 간부들과 관리자들 또한 보호하고 있다.

경찰은 힘있는 성폭력범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성폭력을 일삼곤 한다. 1986년 권인숙 씨를 성고문한 자가 바로 경찰이었고 1996년 연세대 시위 진압 당시 수십 명의 여대생을 성희롱한 자들도 경찰이었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이 경찰서에서 강간당하는 것 역시 흔한 일이다.

김대중 정부와 경찰은 성폭력을 끝장낼 수 없다. 성폭력은 단지 자제력 잃은 남성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의 결과다. 지배자들은 피해 여성의 고통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아니라 경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성폭력 근절’을 외치고 있다.

왜곡된

지배자들은 성폭력의 사회적 근원을 감추고 경찰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폭력이 발생하는 실제 모습을 왜곡시킨다. 이들은 강간·성희롱 같은 성폭력이 주로 낯선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양 묘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다수 성폭력은 ‘낯선 사람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덮치는’ 방식이 아니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가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는 65%인 반면, 낯선 사람인 경우는 19.1%에 그쳤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여성 억압이 그만큼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 준다.

몇 가지 이유에서 강간, 성희롱 등 성폭력 사건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선,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이 가해자와 잘 아는 관계라 경찰에 신고하길 꺼린다. 우리 나라 성폭력 사건 신고율은 6.1%로 매우 낮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1996년).

여기에는 경찰과 검찰, 법원 등 사법 당국의 태도 또한 한몫 한다. 경찰은 ‘당신이 유혹하지 않았냐’며 피해 여성을 되레 범죄자 취급하기 일쑤고 어렵사리 신고한 사건조차 제대로 수사하지 않곤 한다. 재판 과정 역시 여성을 수치심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재판에서 승소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조교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대 신정휴 교수의 성희롱 사건은 혐의가 인정되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다!

게다가 우리 나라는 강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부부 사이의 강간은 인정조차 되지 않는다. 1970년 대법원은 “실질적인 부부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는 설령 남편이 폭력으로써 강제로 처를 간음했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아내 강간이 합법이라 선언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성폭력은 경찰의 범죄 통계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게 분명하다. 부부·애인·친구·이웃 사이에서 수많은 강간이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은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성희롱은 여성의 과민 반응인가?

강간과 달리 성희롱은 종종 어디까지가 성희롱인지 논란이 된다. 이것은 우리 나라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재판으로 기록된 ‘우조교 사건’ 이후 성희롱 금지 법안 마련을 놓고 정부·기업주들과 여성 단체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점이기도 하다.

성희롱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은 지난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교수의 집요한 성희롱을 거부한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우조교는 신교수, 서울대 총장,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는데, 오랜 소송 끝에야 대법원에서 교수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받았지만 대학 당국과 정부의 책임은 끝내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 1993년 이후 여성 단체들과 노동조합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직장 내 성희롱을 금지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19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과 새로 시행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직장 내 성희롱’은 이렇다.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어나 행동 등으로 또는 이를 조건으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또는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게 하여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것”

이 규정은 비록 여성 단체들로부터 협소하다는 불만을 사고 있긴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의 특성 ― 주로 상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성 노동자들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고용상의 차별 ― 을 잘 보여준다. 그 동안 기업주들은 성희롱을 한낱 ‘여성의 과민 반응’ 따위로 취급하곤 했다.

그러나 성희롱은 결코 ‘예민한 여성의 과민 반응’이 아니다. 여성민우회가 최근 펴낸 책 〈성희롱 당신의 직장은 안전합니까?〉에 나온 성희롱 사례들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 때문에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정씨가 처음 입사할 때부터 40대 초반의 남자 사장은 “애인 있어? 나랑 애인 할래”라는 말을 하여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농담이 짙어지고 잦아지면서 “너 내 애인 하겠다 그랬지?”라고 하며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일을 가르쳐 주는 척하면서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고 등 뒤에서 목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는 등 심한 성희롱을 했다. 또 “나 뽀뽀하고 싶다” “어깨를 주물러 줘”라며 노골적 성적 요구도 했다. … 그 날도 사장과 정씨, 둘만이 사무실에 남게 되었는데, 사장이 정씨의 얼굴 바로 앞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면서 “뽀뽀 좀 하고 싶다”고 하여 밀쳐냈다. 그러자 “Y하고 있을 때는 잘한다며?”라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강제로 키스를 했다. 정씨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뿌리치고 뛰쳐나가 화장실에 도망쳐 있다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후, 곧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정씨는 동생,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퇴근 후 친구가 돌아와 보니 정씨는 ‘TV에서나 보았던 정신병 환자’처럼 심하게 몸부림치면서 헛소리를 하고 발작증세(쇼크증세)를 일으키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 집안의 물건도 다 흐트러지고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너무 놀란 동생과 친구는 진정제를 사 먹이고 가까스로 달래었다.

대다수 성희롱은 이처럼 사장, 이사, 부장 등 직장 상사들에 의해 이뤄진다. 모든 여성 가운데서도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다음은 전형적인 사례다.

어느 날, 40대 후반 기혼인 부장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의논해 보자. 식사나 함께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제의해 왔다. 정규직이 되고 싶었던 김씨는 부장의 거듭되는 제의에 ‘혹시나’하는 기대를 가지고 동행했다. 그런데 부장은 차를 경기도 부근의 ‘러브호텔’로 몰고 갔다. 김씨는 불안했지만 1층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정규직’ 이야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장은 술을 마시면서 김씨에게도 권유했지만 김씨는 마시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마음을 졸이던 김씨에게 식사를 마친 부장은 느닷없이 “2층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김씨가 “2층에는 왜 가느냐? 나는 갈 수 없다.”고 하자 부장은 완력으로 김씨의 팔을 끌면서 강제로 계단을 올라가려 했다. ‘올라가자’, ‘못 간다’는 실랑이를 한참 하다가 김씨는 가까스로 호텔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처럼 가해자가 직장 상사일 경우 여성 노동자들이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여성 노동자들이 항의라도 하면 곧바로 해고 위협이 가해진다.

우리 회사에는 여직원 4명과 사장, 부사장이 있는데 부사장이 계속 성희롱을 해서 너무 괴롭다. … 그는 우리들에게 항상 치마를 입고 다니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면 다가와서 허벅지를 만지고 등을 쓰다듬고 심지어 볼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런다. 나는 몇 번 용기를 내어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을 했는데 그래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 사람은 더 징그럽게 웃으면서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내가 한 다른 업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옆에 와서 나의 몸을 자꾸 만진다. 어쩔 때는 귀에다 대고 “사랑해”라고 지껄이기도 했다. 이럴 때면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벌레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 같다. 꼭 미친 놈 같다. 나는 이 곳에서 일한 지 이제 두 달 됐는데 지금까지 월급은 한푼도 못 받았다. 여직원들 중에서 24살인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이고, 다른 여직원들은 20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이어서 나보다 충격이 훨씬 크다. 하지만 밀린 월급을 한 푼도 못 받고 해고당할까봐 뭐라고 막 항의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요즘 사장은 자기가 채용해 놓고서 월급까지 밀렸으면서, 우리가 능력도 없고 필요도 없다면서 해고를 하겠다고 말한다.

성희롱의 결과, 많은 여성들이 해고되거나 직장을 옮기고 근무 의욕 저하를 비롯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미국의 〈The Working Women〉지가 1992년에 한 연구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여성 가운데 25%가 해고되거나 직장을 떠났고, 27%가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고, 12%가 건강을 해치게 됐고, 13%가 자신의 직업 경력에 큰 손상을 입었다.

성희롱은 남성이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일까?

성희롱은 주로 남성 상사들이 저지르는 것이지만, 일부 노동자도 성희롱 가해자가 되곤 한다. 이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성희롱의 원인을 “남성의 권력”에서 찾는다. 성희롱은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남성이 권력을 공유하고 있다’는 견해는 남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계급적 차이를 볼 때 완전히 터무니없다. 지배계급 남성과 달리 노동계급 남성은 어떤 권력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다.

가난과 소외에 따른 좌절은 여성 차별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분노를 쉽게 여성에게 돌리게 만든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결코 아니다.

성희롱의 원인을 남성의 권력에서 찾으면 필연적으로 모든 남성을 적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 또는 대부분 ― 의 남성들이 강간과 성희롱을 일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에 시달리지만, 이것은 비교적 소수의 남성에 의해 집중적으로 저질러진다(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남성이 성희롱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들은 강요된 성적 행위뿐만 아니라 더 광범한 성차별 의식까지 성희롱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음란한 눈빛, 화장실에 씌여진 성적·모욕적 낙서들, 속옷이나 성관계 기구 등 부적절한 선물하기, 상대방이나 자신의 성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손금 보는 척하면서 손을 만지는 것, 여성 상사 등 여성의 일에 빈정대거나 비협조적으로 임하는 것, 여성에 대해 적대적으로 혹평하는 것” 등이 모두 성희롱이 된다.

최근 여성 단체들은 성희롱 개념을 이처럼 확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성차별 의식, 성희롱, 성폭행, 강간들은 일련의 연장선 위에 있으므로 일부분의 성희롱만을 규제했을 때는 큰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성희롱 당신의 직장은 안전합니까?〉).

페미니스트들의 성희롱 개념 확대 시도는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성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환상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처벌 강화는 성폭력을 없애거나 심지어 줄이지도 못한다. 승진과 고용에서 공공연한 차별이 자행되고 여성이 남편과 아이에게 종속된 존재로 취급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성폭력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처벌 강화는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지배자들의 권력을 증대시켜 여성 억압을 강화시킬 수 있다.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피해 여성이 당한 고통과 다른 여성들이 받는 위협에 따른 최소한의 방어 수단으로써 이용되어야지 주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만약 처벌이 주된 해결책이 된다면 우리는 여성 억압의 진정한 주범이 체제에서 소외된 개인을 희생양삼는 위선에 침묵하게 된다.

성희롱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성희롱을 엄밀히 규정해야 한다. 성희롱은 어디까지나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하거나 자신이 가진 지위를 이용해 성적 요구를 강요하는 것이지 모든 종류의 성차별 언행이나 성적 농담·욕설·포르노 게재 등을 뜻하는 게 아니다.

성희롱을 이처럼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 느슨하게 규정하면, 대다수 남성을 성폭력에 맞선 투쟁에서 배제하기 쉽다. 살아가면서 한두 번쯤 상대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남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대중 매체와 학교 등을 통해 성차별 관념을 만들고 퍼뜨려 실제로 이득을 얻는 자들은 지배계급이지 그런 관념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가난하고 평범한 남성들이 아니다. 법적 규제를 통해 성차별 의식을 없애려는 생각은 성차별 의식을 만들고 퍼뜨리는 대중 매체와 학교 등을 완전히 장악한 자들이 바로 지배자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느슨한 성희롱 규정은 오히려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업주와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 몇 년 전 노동부 주최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경총은 “몇 번을 쳐다 봐야 음란한 것이냐”는 따위의 발언으로 뚜렷한 특징을 가진 성희롱을 희석시키려 했다.

성폭력 근절에 대한 대중적 압력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기업, 대학 당국은 성폭력을 규제하는 법, 사규, 학칙 등을 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주, 학교 당국은 성폭력 근절에 여전히 진지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각종 여성 차별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여성들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게 만든다. 직장 내 빈번한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의 70% 이상이 임시직이고 남성 노동자의 2/3에 지나지 않는 차별 임금을 받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을 깔보는 생각은 육아와 가사를 개별 가정에 떠넘기는 정부와 기업주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성희롱 규제 법안 마련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성폭력 규제 법안이 저절로 작동하는 경우란 가해자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일 때뿐이다. 정부 관료, 사장, 의사 등 사회의 특권층들이 저지르는 성희롱에 대한 처벌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없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진정으로 성폭력을 끝장내려면 여성 억압으로부터 진정한 이득을 얻는 지배자들에 맞서야 한다. 이것은 모든 여성의 단결이 아니라 남녀 노동자 계급이 단결해 싸울 때 가능하다. 이 점에서 대원 노조와 롯데호텔 노조, 사회보험 노조의 성희롱 반대 투쟁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평등주의를 고취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