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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계획은 다르푸르에 도움이 안 된다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은 국제 무대에서 속임수와 공격적 태도를 배격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7월 말 뉴욕을 방문해 수단 다르푸르에 군대 2만 6천 명을 파병하는 유엔 결의안을 지지한 것은 토니 블레어 식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속임수였을 뿐이다.

8월 5일치 〈옵저버〉에서 메리 리델은 [고든 브라운에 대한] 언론의 아첨을 거들었다. “마침내, 드디어, 유엔이 다르푸르에서 힘 좀 쓰게 됐다.”

리델은 브라운이 이라크에서, 어쩌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군해야 하고 미국과의 동맹에서도 한 발 빼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돌팔이 처방 ― 일체의 개입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이라크의 교훈이라는 ― 을 버려야 한다. 서방의 정치·경제·안보 이익이 걸려 있는 분쟁과 인도주의적 개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서는 미국의 ‘다르푸르 살리기 연합’(Save Darfur Coalition)에서 훨씬 더 강력하게 드러난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 철폐 운동 이후 아프리카 관련 쟁점 중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만큼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 낸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르푸르 살리기 연합’은 부시 대통령에게 1백만 장 이상의 엽서를 보냈고, 수만 명씩 참가한 대중 시위를 조직했고, 회원들에게 다르푸르의 종족 학살에 반대하는 구호 ―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것’(Not On Our Watch) ― 가 적힌 팔찌를 착용하도록 권장했다.”

언뜻 보면, 이것은 꽤나 기묘한 일이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에서 거의 1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하고 4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든 전쟁 범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미국 시민들 ― 그들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좌파로 여겨진다 ― 은 자국 정부의 범죄보다는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정부의 범죄를 더 많이 우려하는 듯하다.

이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치환처럼 보인다. 미국 제국주의가 전 세계에서 저지르는 짓에 대한 우려가 특정 분쟁으로 이전돼 오히려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

투쟁

그래서 다르푸르 분쟁은 잔자위드 민병대로 조직된 ‘아랍’ 학살자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량 살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아랍인을 폭력적·반동적으로 묘사하는 이슬람 혐오에도 들어맞고 아프리카인들을 영원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언론의 역겨운 행태와도 잘 맞는다.

그러나 이런 묘사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다르푸르의 복잡하고 파괴적인 분쟁을 설명한 여러 글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명확한 글은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알렉스 드 발(Alex de Waal)이 〈런던 서평〉 등에 쓴 글이다.

그는 “‘아랍인들’과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말이 많지만, 다르푸르인들의 피부색을 근거로 그들을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모두 수백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고 모두 무슬림이다.”
다양한 갈등들이 얽히고설켜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 다르푸르 분쟁이다.

유목민과 농민 사이의 오랜 긴장이 가뭄으로 더 악화됐다.

다른 곳에서 시작된 정치적 갈등이 다르푸르로 확산됐다. 특히, 리비아의 카다피 대령은 1980년대에 차드와의 전쟁 당시 다르푸르를 자신의 ‘이슬람 군단’의 근거지로 이용하려 했다.

또, 수단 북부의 무슬림과 남부의 가톨릭 사이의 훨씬 더 오래된 내전도 있었다.

2003년에 다르푸르 분쟁이 시작됐을 때, 그것은 반정부 군대 ― 세속적 세력도 있었고 이슬람주의 세력도 있었다 ― 와 잔자위드 민병대 ― 하르툼(수단의 수도)의 중앙 정부가 후원하는 ― 간의 싸움이었다.

양쪽 모두 지지자를 동원하기 위해 인종적 차이를 이용했다. 드 발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다르푸르의 복잡한 정체성이 갑자기 충격적으로 단순화되면서 ‘아랍’ 대 ‘아프리카’라는 이분법이 형성됐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는 엉터리지만 당혹스럽게 강력하다.”

이 전투는 이합집산하는 반란군 연합과 친정부 세력의 이전투구 양상으로 파편화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평화 회담이 실패하면서 더 심해졌다.

드 발은 원래 유엔군 개입에 찬성했지만 이제는 다음과 같이 인정한다. “군사 개입은 살육을 막을 수 없다. 다르푸르 위기는 정치적 문제이다. 그것은 내전이며, 다른 내전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드 발만이 아니다.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벌이는 NGO들도 ‘다르푸르 살리기 연합’의 군사 개입 요구를 비판한다.

지난 5월에 ‘기아 반대 행동’(Action Against Hunger)은 수단 정부의 반발을 무릅쓴 유엔의 군사 개입이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힘들게 하고 폭력을 더한층 악화시키는 재앙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 개입이 다르푸르의 고통을 쉽사리 종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그것은 악이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같은 것이므로 수도꼭지를 잠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다.

복합적

그러나 전쟁, 특히 내전은 흔히 복잡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런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 자체도 대안적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정치 연합을 구성하려는 끈질긴 노력 등을 포함하는 복잡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연합은 서방 제국주의를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서방이 수단에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리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수단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전선으로 여기는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유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해 11월 “미국과 수단의 여전히 긴밀한 정보 공유 관계”에 대해 논평했다.

이라크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정책의 파산을 보여 줬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이 정책이 다른 곳에서는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에 실린 글(http://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12693)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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