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기후 변화, 진정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아열대성 집중호우가 두 주 동안 이어지더니 이번엔 때늦은 폭염이 찾아왔다. 곳곳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노인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해 죽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식중독 사고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남한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은 집중호우로 입은 홍수피해 때문에 2차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10월로 늦춰야 했고, 중국에서는 7월 이후에만 가뭄·집중호우 등 기상이변 신기록이 8개나 쏟아졌다. 일본에서는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한 폭염으로 수십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일사병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방글라데시 중북부 지역에 10일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로 전체 64개 주 가운데 38개 주가 침수돼 1백60명이 죽고 1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만 1천 명이 넘는 설사 환자가 발생했고 도로·댐·다리 등 사회기반시설이 유실돼 방글라데시 정부가 국가위기사태를 선포했다.

인도에서는 한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한쪽에서는 폭염으로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눈이 녹아내려 홍수가 일어났다. 동북부에서만 1천여 명이 사망했고 1천4백만 명의 이재민들이 구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달 동안 모든 대륙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뉴욕에는 토네이도 폭풍이 찾아왔고, 홍수로 지하철이 침수되고, 폭염 때문에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아프리카 수단에 폭우가 쏟아져 나일강이 범람하는가 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폭설이 내렸다. 영국에서는 홍수로 9명이 죽었고 남동 유럽에서도 최고 기온 경신 소식이 이어졌다.

선진국 정부들의 무능

몇 년 전과 달리 이제 세계의 모든 언론과 정부 기관들이 입을 모아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라고 말한다. 화석연료(석유·석탄·가스 등)를 태울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지구의 기온을 점점 높이고 있고, 그 결과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폭우와 대형 태풍 같은 기상 이변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변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와 바로 다음 세대가 죽기 전에 인류의 멸종, 혹은 최소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지난 16일에는 일본 국영 연구기관들이 북극해의 빙하가 1978년 위성 관찰이 시작된 이래 가장 작은 크기인 5백31만 제곱킬로미터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9월 중순에는 4백50만 제곱킬로미터로 줄어들 전망인데, 이것은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50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던 수치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태도는 기후 변화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이제 이들은 진심으로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멈추고 싶어한다. 1백50년 전 유럽 대도시에 번진 티푸스나 콜레라가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에 차질을 주고 자본가들의 생명도 위협하자 전염병 퇴치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기후 변화가 제기할 위협은 그 이상이다. 목숨만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를 멈추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인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주요 대기업들의 이윤이 대폭 줄어들 뿐 아니라 이들 사이의 경쟁적 자본 축적 경향을 둔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체제의 위기를 낳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난 G8 정상회담에서 보여 준 관심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 정부들과 대기업주들은 기후 변화를 멈춘다는 목표를 스스로 성취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IPCC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5백90ppm을 넘으면 앞으로 기온이 2도 이상 오를 확률이 90퍼센트나 된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기후 변화 대책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영국 정부의 목표치조차 이를 훨씬 초과하는 6백66ppm이다. 과학자들은 기온이 2도 이상 오르면 지구의 기후가 인류가 살아온 지난 수백만 년의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로 전환할 것이라고 한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협약(교토협약)은 배출권 거래제나 탄소 기금 같은 시장 대안의 도입 때문에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는 부실 협약이 돼 버렸다. 한국과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 국가들이지만 둘 다 교토협약의 의무 감축 대상국에서 제외돼 있다. 무엇보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은 아예 이 협약에서 탈퇴했다.

개인적 해결책의 한계

이런 무책임한 선진국 정부들에 대한 불신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단기간에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 때문에 일부 환경주의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긴다. 우리 모두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기초한 ‘개인적 해결책’들은 실제로는 작동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대중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며 움직이는 몇 톤 짜리 쇳덩이를 끌고 출근해야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짝이 없지만, 이용할 수 있는 마땅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주택이 설계돼 있지만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집이 없고 새로 살 능력도 없다.

결국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개인에게 에너지 사용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뭄에서 벗어나려면 땅에 침을 뱉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제는 조지 몽비오 같은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들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지 않고서도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들 ― 대중교통 체계 개편과 강화, 재생가능에너지 ― 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보다 선진국 정부에 훨씬 큰 책임이 있고, 태풍이나 홍수로 피해를 입는 수억 명의 빈민들이 아니라 화석연료 경제에서 이익을 독차지한 소수의 대기업주들에게 책임이 있다.

기후 변화의 효과로 일어나는 투쟁들

사실 환경파괴는 사람들의 의식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는 생산력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다.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 예컨대 미국처럼, 이러한 토지의 파괴 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하다” 하고 지적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훨씬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했고 그 결과 단지 토지뿐 아니라 대기를 포함한 지구 생태계 전체에 파괴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기후 변화를 멈추려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어떤 투쟁도 처음부터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듯이 기후 변화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도 재해나 생활수준 하락에 항의하는 투쟁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생생한 사례를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참사 때 정부의 재해대책과 인종차별에 항의한 흑인들의 시위에서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세계 식량 값 폭등(바이오 연료 생산 증가와 기상 이변 때문에 발생한)에 항의한 멕시코 민중들의 시위도 이런 경우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확실한 것만큼이나 앞으로 이런 투쟁이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도 확실하다. ‘아끼고 절약하자’는 구호는 이런 투쟁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되레 투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기후 변화나 그 효과 때문에 더욱 격렬해진 수많은 투쟁들에 직접 참가해 이 모든 투쟁들이 기후 변화와 환경파괴를 낳은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