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벌사회에 살고 있다. 학벌사회가 아니었다면 학력위조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학벌 간판으로 보는 풍조가 결국 이런 사태를 불렀다. 학벌 간판이 가치를 가지는 한 그것을 둘러싼 사건·사고는 계속된다. 명문대 사칭 사기 사건, 유학 박사 사칭 사기 사건은 이번에 처음 터진 것이 아니다.

한국의 학벌사회는 전형적인 승자독식 구조다. 극소수가 일류 간판을 독식하고 나머지 국민은 모두 간판 무산자(無産者) 신세가 된다. 이런 구조에서 학벌 간판의 가치는 무한대로 증폭되고, 그 어떤 규제로도 학벌 간판 사기 사건을 막을 수 없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학벌 간판을 향한 국민의 열망을 근절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며 “검증시스템을 확립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장벽을 더 높게 쳐 학벌 간판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이 땅에 다시는 귀족 행세하는 노비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방지책일 수 있는가? 학벌기득권 주위에 장벽이 더 높게 쳐지면 위조를 통한 편법 진입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학벌 취득 경쟁, 즉 입시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일류 학벌 간판이 귀족 행세하는 학벌사회를 부수는 것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지책이다. 도대체 왜 한국 최고의 전문인들이 뒤늦게 대학원에 가서 학벌 간판을 따기 위해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인가?

장벽

학력위조 사건을 한사코 개인의 윤리 문제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을 사칭한 노비·평민이 있었고, 일제시대 때도 일본인을 사칭한 ‘조센징’이 있었다. 개인적 윤리 문제로 이런 역사를 보는 시각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거짓말을 무조건 덮고 가자는 말이 아니다. 허위 경력으로 공직에 오른 사람이 공직을 유지할 순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학벌사회 문제는 제쳐둔 채 개인의 윤리성 문제를 이 사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학벌 없이도 성공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일제시대 때 성공한 ‘조센징’의 사례를 나열하는 것은 조선총독부나 할 일이다. 차별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서 차별을 문제 삼지 않는 일체의 논의는 결과적으로 차별구조를 방조하는 셈이 된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윤리적 명제가 사회 모순을 뒤집을 힘을 먹어치우고 있다. 냉정해야 한다. 거짓말한 유명인이 얄밉다고 해도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 학벌사회를 없애기 위해 대학 평준화 등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지금 논의가 거짓말 척결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