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이명박은 “유연한 대북정책”을 표방한다. 중도 성향의 지지를 얻으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그가 벌써 수십 번 들락거린 냉탕의 온도는 부시 탕보다 더 차갑다.

“핵을 포기시켜야 하는데 핵이 있는 상태에서 회담을 하면 핵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한 이 얘기는 핵을 가진 북한과 양자회담을 할 수 없다던 2·13 합의 이전의 부시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명박은 또, “핵만 폐기하면 도와준다는 것은 햇볕정책과 다를 바 없다”며 “‘자발적 개방’을 해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악행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2·13 합의 이전의 부시 입장이다.

여기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 해체)만 있으면 네오콘의 대북 강경 정책 3요소가 갖춰지는 셈이다. 이명박의 외교·안보 공약인 ‘MB 독트린’은 이 점을 무난히 충족시킨다. ‘MB 독트린’은 선(先) 핵폐기를 내세운다. 그는 ‘포괄적 패키지 지원’ 방안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핵폐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명박은 ‘유연성’을 강조하다가도 냉전 대결주의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처음에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지만, 곧 입장을 180도 바꿔 인도적 지원 같은 보잘것없는 변화에도 거부반응을 나타냈다.

“한반도 평화 비전은 정형근 의원이 자신의 이미지 극복을 위한 측면에서 제기[한 것이고] 한나라당이 채택할 수 없는 안[이다.]”

남북 정상회담 지지와 반대를 비롯해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 이명박의 오락가락 행태를 보면 김영삼이 떠오른다.

김영삼은 취임 당시에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어느 동맹국보다 북한에 적대적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대북 협상(제네바합의 등)을 훼방놓아, 미국 정부조차 “한반도의 골칫거리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2·13 합의에 대해서도 일부 보수 우파는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2·13 합의로 한국은 핵 앞에 알몸으로 선 꼴 … 미국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조선일보〉 김대중) 한나라당의 새 주인은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리며 이런 정서에도 부응할 ‘유연성’을 기르는 것 같다.

대북 정책도 잡탕인 범여권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대북 포용정책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인상을 줘, 남북 정상회담의 수혜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대북정책에서도 잡탕을 벗어나지 못한다. 손학규는 지난 해 북핵 실험 직후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제재해야” 한다며 강력한 대북 제재를 주창했던 자이다. 올해 초까지 열우당 내 일부 의원들을 “친북 좌파”라고 비난한 뒤 탈당했던 강봉균도 잡탕에 합류했다.

정동영과 친노계는 노무현식 상호주의와 동북아 구상, 이라크 참전 등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을 함께 추진했던 자들이다. 유시민은 최근 “약소국 외교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평화를 이끌어”가겠다며 전쟁 개입 의지를 재확인했다.

범여권 후보 문국현은 독자 노선을 택하고 있지만, “남북간 긴장이 고조될 때가 상당히 많았는데 (참여정부가) 그 부분도 잘 처리해나갔다”며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칭찬했다. 대북정책에서는 독자성보다는 계승에 방점이 있는 듯하다.

민주당의 위선은 김대중 자신이 꼬집고 나섰다. “민주당 일부에서 지난해 10월 북핵 실험 때는 대북 응징을 얘기하며 햇볕정책을 비난하는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는 2차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1년여 만에 북한을 “악의 축”으로 찍은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던 김대중 자신이 모순의 씨앗을 뿌렸고, 그 열매를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나누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