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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비정규직 점거 파업의 쓰라린 퇴각:
9일간의 영웅적인 점거 파업이 남긴 것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의 9일간의 영웅적 점거 파업이 성과 없이 안타깝게 끝났다. 8월 31일 점거 해제를 선언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온갖 탄압과 고립 속에 힘겹게 농성을 해 왔던 노동자들은 가슴이 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 퇴각에 좌절하지 말고 교훈을 배우며 다음 투쟁을 준비해야만 한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는 2005년 화성공장을 멈추는 파업을 통해 비정규직 투쟁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돼 왔다. 1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국 최대의 자동차 공장 중 하나를 마비시키는 힘을 보여 준 것이다. 지난해에도 비정규직지회는 단호한 투쟁으로 원청에게 직접 고용보장을 약속받았다. ‘원청사용자성인정’이라는 비정규직 투쟁의 주요 과제 쟁취를 한 걸음 앞당긴 것이다.

이런 투쟁의 고비고비마다 정규직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제대로 연대하지 않았다. 지난해 식당 여성 비정규직 파업을 비난하기도 했다. 노동자 연대의 대의를 외면한 이런 배신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했다. 반면 정규직 현장조직들의 공동투쟁기구인 ‘현장공동투쟁’ 소속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는 큰 힘이 됐다. 특히 전투적 현장조직인 ‘금속노동자의 힘’ 동지들이 비정규직 연대 투쟁에 앞장서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호한 투쟁과 정규직 활동가의 헌신적 연대가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을 성공으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당연히 기아 사측은 이것을 깨기 위해 눈이 벌개져 있었다. 그러나 2005년에 용역깡패를 투입해 비정규직 파업을 분쇄하려던 시도는 역효과만 낳았다. 올해 초 비정규직 핵심 활동가들을 해고하려던 시도도 실패했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사측은 칼을 갈며 주도면밀하게 비정규직지회 파괴 공작을 준비했다. 파괴 공작의 핵심은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과 각개격파였다.

1사1조직

금속 산별노조의 출범과 함께 추진된 ‘1사1조직’(한 사업장의 정규직·비정규직을 단일 노조로 통합한다는 원칙)이 역설적으로 사측에게 분열 공작의 기회가 됐다.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위해서는 조직의 분리보다 통합이 더 낫다. 그 점에서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통합을 꺼린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물론 통합으로 정규직 지도부의 관료적 통제가 더 커질 거라는 의심은 정당했다. 그러나 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 형식의 분리가 아니라 현장의 독립적 운동이었다. 따라서 조직 통합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강력한 단결 투쟁을 건설하는 게 필요했다.(〈맞불〉 36호의 관련기사 참조)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일방적으로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정규직 노조로 직가입시켰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천3백여 명 중 5백여 명이 기아차지부로 옮겨갔다. 이런 관료적 시도는 단결보다 분열을 낳았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사이의 불신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은 약화됐다.

그러자 올해 기아 원·하청 사측은 무려 12차례나 교섭 요구를 거부하며 노골적으로 비정규직지회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23일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장2부 점거 파업이 시작됐다. 점거 파업은 곧바로 화성공장 전체를 마비시켰고 소하리·광주 공장까지 타격을 가했다. 대부분 50~60대인 8백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대로 점거 파업에 참가하며 투혼을 불살랐다. 노동자들은 소음·진동·탁한 공기로 가득한 40평밖에 안 되는 공간에 3백여 명이 박스를 깔고 쪼그려 누워서 초인적인 투쟁을 벌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힘과 투지를 과시한 이 투쟁은 뉴코아·이랜드 투쟁이 불러일으킨 투쟁 물결의 일부였다. 동시에 그것을 더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사측은 초강경으로 나왔다. 비정규직 노동자 무려 62명을 고소·고발했고, 심지어 구사대의 폭력 난동에 분노해 분신을 기도했던 정규직 활동가도 방화 미수 혐의로 고발했다. 곧 김수억 비정규직지회장을 포함해 7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특전사 출신인 공장장 이삼웅은 ‘특전사 동지회’와 용역깡패, 조·반장, 사무처 직원들로 구성된 3백여 명의 구사대를 사주해 파업 농성장을 침탈했다. 구사대들은 “비정규직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해머와 쇠파이프로 유리창을 박살내는 등 폭력적 난동을 벌였다.

사측은 교활한 악선동과 이간질을 시작했다. 사측과 구사대는 도장2부의 위험성을 과장하며 파업 노동자들이 “우리의 소중한 일터를 잿더미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연봉 3천만 원이나 받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원한다’, ‘일부 정치 좌파가 순진한 아줌마·아저씨들 꼬드겨서 화성공장을 망치고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 한다’ 는 등의 악선동이 퍼져갔다.

이간질

그래도 기아차지부 지도부가 이런 악선동을 반박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방어했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 지도부의 대응은 재앙적이었다.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소중한 일터를 침해하는 행위는 동의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파업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구사대의 난동을 못 본 척했다. 아마 이런 대응을 통한 압력으로 비정규직지회가 투쟁을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며 조직 통합을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기대한 듯하다.

‘기노회’, ‘전노회’ 등 기아차의 민주파 현장조직들도 침묵하거나 양비론적 태도를 취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갈등 속에 정규직 지도부의 눈치를 본 금속노조 지도부와 지역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실질적 연대에 나서지 않았다.

좌파의 이런 대응은 사측과 구사대, 우파의 자신감을 더욱 높여 주는 결과만을 낳았다. 구사대와 우파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금속노동자의 힘’을 주축으로 한 ‘현장공동투쟁’이 헌신적으로 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3년 연속 적자인 상황과 IMF 때의 끔찍한 구조조정 기억이 맞물리면서 우파의 악선동이 일부 후진적 조합원들 속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좌파의 분열과 무기력 속에서 일부 조합원들에게 우파가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동적 절망의 해결책이었다. 구사대의 광란적 폭력 난동은 8월 31일에 절정에 달했다. 공장을 휘젓고 다니며 폭력을 휘두르는 3백여 명의 구사대에게 좌파 활동가들이 쫓겨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구사대는 비정규직지회와 ‘금속노동자의 힘’ 천막을 불질러버렸다.

앞장선 ‘특전사 동지회’는 군화를 신고 대검도 휴대했다고 한다. 여성 노동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길질을 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구사대는 기아차지부 간부도 떠밀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기아차지부와의 대화 채널도 끊어버렸다. ‘현장공동투쟁’의 “작금의 현실을 방치한다면 사측의 폭력 만행은 정규직을 향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사측과 구사대, 우파의 공격이 비정규직을 넘어 정규직 노조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기아차지부 지도부는 뒤늦게 ‘구사대 폭력 중단’을 요구했지만 이미 주도권은 우파에게 넘어간 후였다.

구사대는 8월 31일 연대를 위해 화성공장 앞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모인 2백여 명의 참가자도 폭력적으로 쫓아내 버렸다. 연대 온 동지들을 보려고 농성장에서 나오던 비정규직지회 이동우 부지회장과 여성 노동자들도 구사대의 폭력에 옷이 벗겨지며 참혹하게 짓밟혔다. 이동우 부지회장이 자기 방어를 위해 옆에 있던 소방용 도끼를 든 것이 더 큰 폭력을 부르기도 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을 이간질시켜 각개격파하려고 이 모든 폭력과 광란을 사주하고 조종한 사측은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사측은 도장2부 옆에 가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점거 파업으로 끊어진 생산라인을 이어서 모든 공정을 정상화하고 점거의 효과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교훈

결국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와 ‘금속노동자의 힘’까지도 더는 점거 파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8월 31일 저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의 눈물 속에 비정규직지회는 점거 파업 중단과 전술적 퇴각을 선언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새로운 각오였습니다. 사측 구사대가 판치는 현장을 다시 세우겠다는. 원·하청 연대 투쟁의 깃발을 다시 세우겠다는.”(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지회 게시판에 올린 글)

독일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우리들이 그로부터 역사적 경험과 지식과 힘과 이상주의를 얻어내는 그러한 ‘패배’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 투쟁도 승리하진 못했다. 그러나 이런 투쟁들이 올해 뉴코아·이랜드 투쟁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더구나 비정규직지회는 ‘전술적 퇴각’을 선언한 것일 뿐 이후 정규직 노조와 통합해 공동 교섭·투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점거 종료를 선언하는 집회에 참여한 기아차지부 화성지회장도 ‘일방적으로 추진한 직가입과 연대 부족’을 사과하며 강력한 연대를 약속했다.

영웅적인 점거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투사 8백여 명은 “결코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지를 꺾지 않고 있다. 9월 3일 점거 종료 후 첫 집회에 참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규모와 분위기는 결코 노동자들이 패배감에 젖어 있지 않음을 보여 줬다.

이번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에서 정규직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줬다. 구사대에 맞서 정규직 활동가 최대 3백여 명이 대응했던 이번 경험은 그 가능성도 보여 줬다.

그러나 기아차지부 지도부와 일부 현장조직들의 대응은 한심스러웠다. 그들은 단호하게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았고 오락가락했다. 그 사이에 우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어딜가든 세 부류의 노동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관된 좌파와 일관된 우파, 그리고 동요하는 중간층이 있다’는 것이다. 좌파가 단결해서 단호히 투쟁하며 올바른 전략·전술과 대안을 제시한다면 동요하는 중간층은 좌파에게 견인될 것이다. 반면 좌파가 분열해 있고 오락가락하고 대안을 보여 주지 못하면 중간층은 우파에게 이끌릴 것이다. 이번 투쟁은 후자의 사례다.

기아차뿐 아니라 대공장에서 지배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는 분열 지배 전략을 추구해 왔다. 저들은 비정규직 노조를 먼저 제거하고 정규직 노조도 약화시킨 후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 한다.

기아차의 정규직·비정규직 투사들은 다가오는 사측과 정부의 보복에 맞서며 다시 현장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연대’ 투쟁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노조 상층 지도부가 이런 투쟁을 배신할 때는 독립적으로 싸울 수 있는 운동과 조직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사측과 우파의 악랄한 공세 속에서도 용기있게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한 정규직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기아차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다함께’의 연대

‘다함께’는 이번 기아차 비정규직 파업에 신속하게 개입해 앞장서서 적극적인 연대를 건설했다.

먼저 신속히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고, 지난 주말 ‘다함께’ 산업팀은 점거 파업 현장을 방문해 지지를 표하고 연대 건설 방안을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논의했다.

8월 27일 화성공장 앞에서 열린 파업 지지 기자회견 때도 회원 4명이 참여했고, 민주노동당 경기도당이 기자회견 공동주최에 포함되도록 제안하고 주선하기도 했다.

현대차지부 대의원인 ‘다함께’ 회원은 주변 활동가들 11명의 연서명을 받아 파업 지지 입장을 발표했고,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지도부 등이 파업 지지 입장을 발표하도록 기여했다.

‘다함께’ 소속의 민주노동당 활동가들도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 지역위원회 등에 파업 지지 입장과 성명 발표를 적극 제안해서 많은 성과를 끌어냈다.

‘다함께’ 회원 50여 명은 8월 31일 화성공장 앞에서 열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참석해 파업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기아차 소속 ‘다함께’ 노동자 회원들의 연대였다. 이 자랑스러운 동지들은 ‘현장공동투쟁’과 ‘금속노동자의 힘’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했다.

뒤늦게나마 기아차지부 지도부가 구사대의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데는 ‘다함께’ 회원들이 건설한 이런 연대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고립감에 시달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힘이 됐을 것이다.

비록 노동자들이 잠시 전술적으로 퇴각했지만 ‘다함께’가 건설한 이런 연대는 기아차의 정규직·비정규직 투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고 이후 투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