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대연합은 (그 근거가 옳든 옳지 않든 간에) ‘민주노동당만으로는 2퍼센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보진영의 광범한 단결이라는 장(場)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노무현과 범여권의 개혁 실패가 빚어낸 정치적 공백을 메우는 한편, 그런 개혁 실패 ─ 특히 한미FTA와 파병 강행 추진 같은 ─ 에 도전하는 운동들에 정치적 표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진보대연합의 핵심 취지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3월과 6월에 잇달아 진보대연합을 민주노동당의 주요 대선 전술의 하나로 채택했다.

그 뒤 민주노동당 진보대연합 특위는 두 차례 연속 토론회를 열었고, 대중 단체들과도 꾸준하게 접촉했다.

최근에 사회당이 진보대연합 제안에 긍정적 호응을 해 왔다. 8월 22일 ‘진보대연합 추진을 위한 민주노동당·사회당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두 당은 진보대연합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구축 노력이 부분적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1990년대 중엽 이래 각자 다른 정치적 경로를 밟아 온 두 당이 단결한다면 그것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상징 효과를 낼 수 있다.

완결편

그런데 진보대연합을 이룰 다른 축, 즉 노무현에 환멸을 느끼고 있지만 아직 민주노동당으로 오지 않고 있는 진보적 유권자 층을 대변하는 세력(과 개인)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임종인·이수호·지금종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한 새진보연대가 진보대연합의 한쪽 날개가 되려는가 싶더니 임종인 의원이 탈퇴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진보대연합에 호의적이었던 일부 ─ 가령, 정범구 전 의원 ─  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쪽으로 돌아섰다.

진보대연합 논의가 탄력이 붙었던 시기는 3∼4월이었다. 이 때 한미FTA 반대 운동과 여론이 분출하면서 범여권 내에서도 심각한 균열이 생겨났다. 천정배와 김근태가 한미FTA 졸속 추진을 비판하며 단식까지 했다.

그러자 범여권이 분열해 그 일부(예컨대 천정배)가 진보진영 쪽으로 건너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났지만, 그는 자본가적 정치 기반을 버리고 진보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천정배나 NGO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한 ‘미래구상’이 (필패할 것이 자명한) 범여권의 재구성에 가담한 것은 운동의 발전 수준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하다.

한편, ‘미래구상’이나 일부 부르주아 개혁 정치인들을 염두에 두고 진보대연합에 관심을 보였던 민주노동당 내 일부 자민통 세력은 금세 흥미를 잃어 버렸다.

그 중 일부는 민중참여경선제로 돌아섰다. 진보대연합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럴 바에는 민주노동당을 강화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민통 계열의 일부가 민주노동당 중심성 강화론을 주창하는 반면, 일부 PD 계열이 진보대연합에 더 열의를 보이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진보대연합 제안과 보폭을 맞추지 않고 일찌감치 불붙은 당내 경선도 진보대연합 추진에 어려움을 줬다. 당 밖 진보 정치 세력의 상당수가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제안의 진정성을 가뜩이나 의심하고 있던 터에(그들은 민주노동당이 대의원대회에서 진보대연합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를 무척 궁금해 했다), 민주노동당이 자체 후보 선출에 몰두하자 선뜻 논의 테이블에 다가서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임종인·정범구 등이 7월 초에 보였던 관심은 얼마 못 가 사라졌다. 물론 그 이면에는 진보대연합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당선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문국현 현상’

그러나 사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대선 정국을 휘감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은 좌충우돌과 우왕좌왕을 거듭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박근혜로 대변되는 “집토끼”)과 새로운 기반(“산토끼”)을 모두 잡으려는 이명박의 구상이 현실에서 모순을 빚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명박은 당 쇄신과 화합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홉 난쟁이들이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신당도 ‘도로 열린우리당’일 뿐이다. 한 예로, 열우당의 ‘마지막’ 정책위의장이었던 김진표가 민주신당의 ‘초대’ 정책위의장에 임명됐다.

그러므로 진보대연합의 애초 취지, 노무현의 개혁 실패가 낳은 정치적 공백을 메우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문국현의 등장이 이런 계획에 차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문국현의 등장으로 민주노동당은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지 기반이 상당히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진보대연합이 제안된 것도 이런 사태의 도래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진보대연합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썩 내키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다.

문국현의 등장을 놓고 두 가지 편향이 존재하는 듯하다 ─ 마냥 추수하거나 차별성을 긋기 위해 폭로와 비판만 하는 것. 민주노동당 내에는 후자가 좀더 지배적인 듯하다. 5년 전 노무현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범여권의 개혁 실패에 진저리를 치는 개혁 염원 대중은 지금 문국현에게 개혁 희망을 걸고 있다. 문국현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과 함께 비정규직·환경 등에 대해 그가 개혁적 언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국현에게 개혁 희망을 걸고 있는 그 지지자들이 사실 민주노동당이 진보대연합을 통해 붙잡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경쟁 심리가 발동해 치열한 논쟁이 양 진영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국현이 아직 그 지지자들에게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비판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을 통한 입증 과정이 필요하다. 문국현의 말과 실천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대중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시험대

그러기 위해서는 문국현에게 행동을 제안해 실천의 시험대에 올려 놓을 필요가 있다. 문국현이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했다면 뉴코아·이랜드 투쟁을 지지할 것을, 한미FTA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면 한미FTA 반대 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해야 한다.

문국현이 그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문국현의 의제는 민주노동당의 그것과 일부 겹치지만, 그는 아직 운동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을 않고 있다. 하지만 문국현이 범여권의 일부로 남아 있어서는 그의 의제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구축 시도의 성공 여부는 ‘문국현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