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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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백인들 - 마이클 무어, 나무와 숲
정건
이 책은 원래 작년 10월 2일 서점에 나오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9·11 이후 하퍼 콜린즈 출판사
마침내 이 캠페인이 성공해 《멍청한 백인들》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올해 2월 19일 서점에 나왔다.
인디 서점들에선 금새 동났지만 일반 서점들은 “논쟁적인” 책이라고 진열을 거부했다. 그러나 《멍청한 백인들》은 한 달 만에 초대박이 터졌다. 11개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 자리들을 독차지했다. 한마디로 미국 출판계를 평정했다.
마이클 무어는 전국을 돌며 《멍청한 백인들》의 사인회를 열었다. 샌 디애고에서는 2천 명의 독자들이 줄지어 서기도 했다. 경찰은 종료 시간을 어겼다고 사납게 굴면서 모두 체포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폭발적인 호응 덕분에 샌 디애고 지방의회는 이 날을 “마이클 무어즈 데이”로 제정해야 했다.
마이클 무어는 1986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무어의 첫번째 책 《다운사이즈 디스》는 대량해고가 유행하던 1990년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마이클 무어는 항상 부자와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격문을 내걸었고, 미국 노동계급에게 한없이 잔인하기만 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글을 썼다. 《멍청한 백인들》은 대통령 자리를 절도한 조지 W 부시와 환경·국방·세금·복지 등에 관한 공화당의 온갖 악행들, 민주당의 무능력 등을 폭로한다.
이 책은 2000년 플로리다 대선 투표에서 보여준 공화당 책략가들의 인종차별과 더러운 술책들을 까발리며 시작한다.
조지 W 부시의 동생인 플로리다 주지사는 유권자 명단에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빼 버렸다. 그래서 31퍼센트의 흑인 남성들이 명단에서 빠졌다. 전과자와 이름, 생일, 사회보장번호가 비슷한 사람들도 모두 빠졌다. 17만 3천 명이 투표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밀수 전력이 있는 주지사의 처는 투표권을 행사했다. 2만 명의 항의자들이 부시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시를 도둑이라고 비난했다. 부시는 전통적인 취임식 절차들을 건너뛰고 계란과 토마토 세례를 피해 꽁무니를 빼야 했다. 무어는 부시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에서 부시를 맹렬하게 공격한다.
물론 민주당도 “멍청한 백인들”이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공화당다운 대통령들 중의 한 명”이다. 이제 “대통령 자리에는 뺀질이 대신 또라이” 가 앉았을 뿐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합당하라. 분리돼 있지만 같은 일
무어는 노동자들에게 민주당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민주당을 정신 차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헛된 망상도 가졌다.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에 대한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무어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인과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을 잘 폭로했다. 그러나 원인을 모든 백인과 모든 남성에게 돌리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을 공격할 때 빛나는 특유의 재치도 이런 대목에선 좀 경박스럽다. 마이클 무어는 통쾌한 어법으로 선명한 통계를 제시하고 기막힌 예들을 뽑아냈다. 이런 아이디어와 감각은 이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프로파간다와 여론 - 노엄 촘스키, 데이비드 바사미언, 아침이슬
강철구
조지 W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구실을 댔다. 1980년대 미국 전 대통령 레이건이 리비아를 폭격했을 때는 어떤 구실을 댔을까? 당시 미국 국무부는 리비아 폭격이 “미래의 공격에 대한 자기 방어”라고 정당화했다.
미국은 국제노동기구
촘스키는 대중 운동의 승리를 감격해 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중은 거대한 강적, 즉 세계에서 가장 응집력이 높은 국가,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강대국들, 초국적 기업들, 국제 금융기관들 그리고 완벽한 언론 통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대중의 행동은 다자간투자협정
촘스키는 “백악관에 압력을 가하면 동티모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촘스키는 체계적으로 고문을 사용하는 나라에 대한 원조를 금지하는 미국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그런 나라들을 후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조는 다른 문제다. 미국이 이라크나 터키, 콜롬비아 등에 원조를 거부하는 게 누구에게 이로울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 랠프 네이더를 분명하게 지지하지 않은 점이나, 동아시아 모델에 대해 무비판적인 점 등도 눈에 거슬린다. 몇몇 약점에도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형준
1990년 구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하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마르크스주의’는 한물갔다고 주장했다. 좌파도 마르크스주의는 붕괴한 사상이자 유행에 뒤떨어진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1990년 이래 제국주의 전쟁이 세 차례나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왜곡되고 조작된다.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투쟁’과 ‘실천적 주장’을 잘라낸다. 조합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이데올로기’를 무시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정수를 외면한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마르크스주의가 아직도 유용한가? 21세기에는 마르크스의 전망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변혁은 어떻게 가능할까? 《새천년의 마르크스주의》는 이 모든 물음이 명쾌하게 답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유용하고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동시에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하고 왜곡하는 다양한 사상을 비판한다.
저자인 토니 클리프는 2000년에 사망할 때까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클리프는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과 과제를 이끌어 낸다. 클리프는 1918∼1923년 독일, 1930년대 프랑스, 1936년 스페인, 1950년대 인도네시아, 1968년 프랑스, 1974∼1975년 포르투갈, 1979년 이란 등에서 벌어진 투쟁 경험에서 공통된 교훈을 끌어낸다.
또 붕괴한 구소련을 ‘시체부검’해 소련과 동유럽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음을 밝힌다. 구체적 경험을 통해 각 국의 ‘공산당’과 스탈린주의자들의 배신 행위를 고발한다. 이를 통해 좌파는 구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혼란에 빠질게 아니라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클리프는 1990년대가 느리게 돌아가는 1930년대의 필름이라고 말한다. 또 좌파는 더 많이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스탈린주의가 붕괴해서 기회는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실제로 반자본주의 운동의 확대, 정치 양극화, 부침을 반복하면서 가라앉고 있는 세계 경제를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이 책은 파시즘, 러시아 혁명, 세계 혁명 같은 굵직한 주제들을 역사적 근거를 들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독자들은 뭔가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토니 클리프는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또 아래로부터의 자주적 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변혁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새천년의 마르크스주의》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을 훌륭하게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변혁이냐 야만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스탈린주의가 몰락하고, 반자본주의 운동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기회를 잡을 것인가 놓칠 것인가? 좌파는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한은솔
중국은 몇 년 동안 심각하게 내수가 침체했는데도 선진국들의 평균 경제 성장율을 훨씬 웃도는 수치의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그런데 《중국의 몰락》에서 저자가 머지않아 중국이 몰락할 거라니 저절로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고든 G. 창은 ‘사회주의’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중국 정치 체제의 경직성이 중국을 몰락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은 이러한 정치 체제를 ‘마오시스템’이라 부른다. 과거 마오쩌둥이 지배한 시대처럼 경제를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창은 “덩과 장은 1978년 이후로 수많은 변화를 주도했지만, 공산당과 중앙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중국 정부는 아직도 마오가 개발한 소련식 모델의 엄청난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든 G. 창은 ‘마오시스템’이 적자 덩어리인 국유기업 개혁과 IT산업 육성, 외자 유치에 어떤 장애물인지 잘 보여 준다. 시장주의자인 창이 보기에, 중국이 살아남으려면 산업의 전 부문을 더욱 더 철저히 시장에 개방해야 한다. 국가가 경제에서 당장 손을 떼고 국유기업을 완전 사유화해 경제를 시장의 자율 정돈에 맡겨야 한다. 공산당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기술 혁신이라는 구호 역시 현재의 경제 체질 자체를 고치지 않는 한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창은 “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에서 사업은 수익 창출과 주주 가치에 의해 평가되며 기술은 스프의 한 가지 재료에 불과함을 알아야만 한다”고 충고한다. 현재의 ‘마오시스템’에서 더 진전된 시장 개혁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당 관료들이 낡은 이념의 노예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중국 정부의 시장 개혁은 ‘일시적인 전술’이라고 주장한다. “베이징의 지도자들이 과감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란다. 과연 중국 정부의 시장 개혁이 중국을 사회주의 중급 단계, 고급 단계로 도약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일까? 중국 정부가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순전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개혁 전이나 개혁 후 모든 시기를 통털어서 말이다. 개혁을 시작한 이래 공산당 관료들은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시장 개혁을 추진해 왔고 앞으로 더욱 확대하려 한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꾸준히 늘려 왔다. 과거에 비해 국유기업 비중을 계속 줄이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총괄하는 국유기업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려 한다.
‘정통파’ 장쩌민은 중국이 제3세계 자격으로라도 WTO에 가입한 것을 매우 기뻐했다. 저자가 비판하는 ‘마오시스템’안의 ‘경직된’ 공산당 관료들은 이제 사적 자본가들의 공산당 입당도 환영한다. 이것은 덩샤오핑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말한 이래 가장 노골적인 태도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여전히 ‘사회주의’라는 수사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시장개혁은 일당지배체제를 의도치 않은 방향에서 공격받게 할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항쟁은 급진 개혁파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시위자들을 ‘전적으로 서구에 종속된 부르주아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전복을 꾀한 사회의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유혈 진압됨으로써 지배자들은 정치적 위기를 한고비 넘겼다. 경제 부문을 자유화하는 것은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 체제에서 정치 부문의 자유화 요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수사를 동원해 사회를 계속 통제하는 것이다. 또 저항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체계적 억압에 의존한다.
고든 G. 창의 주장대로 당 관료들은 대형 국유기업을 사유화하는 데에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중국 정부는 시장 개혁 과정에서 중·소형 국유기업을 매각하거나 사유화했지만 1천여 개의 대형 국유기업 사유화는 유보하고 있다. 농업 부문이나 대외 개방에서 급진적 개혁이 이뤄진 반면 소유제 개혁은 아직 굼뜨고 점진적이다. 이것은 고든 G. 창이 주장하듯 단순히 이데올로기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급격한 사유화는 권력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대형 국유기업이 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연쇄로 무너져 내릴 경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은행도 함께 무너져 금융 위기의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대형 국유기업에서 실업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 사회 체제가 더한층 불안정해질 수 있다. 대형 국유기업과 연계돼 있는 당 관료들의 이해관계도 사유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개혁 과정에 수반될 ‘권력과 이익의 재조정’은 일부 관료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이 추진하는 시장 개혁과, 그로 인한 정치 체제의 위기, 그 둘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민해 볼 수 있게 한다. 개혁을 시작한 이래 중국 정부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사회주의 초급 단계’,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애매한 체제 규정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모순된 처지를 드러내 왔다.
시장 개혁이 지배 체제의 위기를 낳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것이 당장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거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엔 수많은 변수가 끼어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