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 TV 화면을 하루종일 장식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방법은 극적 효과를 고려해 채택된 것인 만큼, 오래된 분단 장벽을 온몸으로 넘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이 평화의 전도사처럼 구는 태도에 반감을 느끼면서도 적잖은 사람들이 분단의 세월, 꽁꽁 얼어붙었던 냉전을 돌아봤을 것이다.

62년 전, 한반도는 민중의 의사와 관계 없이 분단됐다. 일본 패망과 함께 한반도를 나눠 점령한 미국과 소련 양대 초강대국은 남과 북에 각각 친미, 친소 정권을 세웠다.

냉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친미 진영과 친소 진영의 적대는 엄청났지만, 전쟁을 겪은 남북한 사이의 적대에는 비할 수 없었다. 상호 적대와 반감은 보통 사람들에게 이별과 고통만을 주었지만, 남북한 정권에게는 권력의 버팀목이었다.

서슬 퍼런 반공주의 아래 이남의 수많은 반정부 인사들이 희생돼 왔듯이,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이북의 수많은 반정부 인사들이 희생돼 왔다.

교련 수업을 빼먹은 대학생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강제 징집되는 사회가 1970년대 남한이었다면, 대학 수업 시간의 65퍼센트가 주체의 원리와 위대한 수령 사상 학습으로 채워진 사회가 1970년대 북한이었다.

전쟁 위협 분위기는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데도 도움이 됐다. 1980년대 남한에서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용공” 행위로 낙인찍혔고, 북한에서는 생산력 향상 운동 등의 이름에 군사 용어가 사용됐다 ― “70일 전투”에서 “고난의 행군”에 이르기까지.

서슬 퍼런 반공주의

이처럼 냉전은 보통 사람들에게 전쟁 위협과 억압과 개인 삶의 파괴를 안겨줬으므로 냉전이 해소되는 것을 반기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무엇인가?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했을 때 세계적 충돌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세계를 휩쓸었다. 냉전이 해체됐으니 평화가 오리라는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 간의 군축 회담 등이 그런 기대를 부추길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전 세계의 빈부격차는 더욱 늘었다. 미국은 발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분쟁에 개입하거나 전쟁을 일으켰다. 강대국 간 군비 경쟁이 끝나기는커녕 미국은 더욱 군사적 우위에 의존하고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냉전 해체가 평화를 뜻하리라는 기대가 다시 한번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사실, 오늘의 한반도야말로 세계적 차원의 냉전 해체가 낳은 불안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이런 기대는 시대착오적이다. 1990년대 초에 미국이 북한을 “깡패국가”로 규정한 것은 냉전 해체 이후 세계, 특히 중국이 부상한 동북아시아에 대처하는 한 방법이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냉전 시절에 동북아시아에 배치해 놓은 미군을 유지할 명분도, 냉전 시절에 형성된 동맹을 유지할 명분도 사라졌다. 미국이 북한을 위협적 “깡패”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동북아시아에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기도, 미일 동맹을 재편하기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물론 미국이 부추긴 북한 위협론이 한반도 분단 질서를 유지하는 효과를 냈으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이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라는 의견이 광범하게 자리잡고 있다. 냉전이 해체된다면 미국의 영향력을 비롯한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남북의 화해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강대국 간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지 평화 전망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의견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남북의 두 정상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게 아니라 막차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은 냉전적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보다 지역 안정이나 역외 역할을 내세움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남한은 이 새로운 동맹 재편에 이미 합의했고, 북한 정부도 지역 안정자로서의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함으로써 이 질서를 인정할 태세가 돼 있다.

남북한 노동자들의 연대

진보진영은 이런 모순적 상황이 제기하는 과제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한반도 냉전 질서의 붕괴를 지지함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이미 시작된 냉전 해체 이후의 제국주의 질서에도 반대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 안정이나 역외 역할을 내세우는 한미동맹에도 반대해야 하는데, 그 대표적 사례는 이라크 파병이다. 군비 증강도 같은 맥락에 있다.

또, 진보진영은 남북의 화해 협력 과정에서 이미 실종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을 대변해야 한다. 남한 정권과 자본은 북한을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자 새로운 투자처로 여기며 단지 자본의 이익을 잘 충족시키는 데만 관심을 쏟지,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진보진영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같은 요구는 물론이고 자유왕래 요구와 탈북자 환영의 입장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북한 민중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대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지지해야 한다. “상호 체제 인정”이라는 말이 남과 북의 노동자·민중  투쟁과 그들의 연대를 가로막는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은 남북한 정권이 수십년 동안 상호 적대 관계를 이용해 강화해 온 모든 억압과 착취에 도전하고 이 과정에서 남북한 기층 노동자·민중의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