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개싸움 같던 한나라당 경선에 이어서 통합민주신당의 박스떼기, 폰떼기, 노무현 명의 도용 등 ‘개싸움 2탄’은 사람들에게 환멸만 자아내고 있다. 그러고도 평균 20퍼센트를 밑도는 경선 참여율과 경선 중단 사태는 도로열우당의 정치적 파산을 보여 준다.

반면, 진보적 의제를 내걸고 정정당당히 선출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은 이런 기성 정치권 위기의 공백 속에서 꽤나 늘었다. 가상 삼자대결에선 최고 17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는 여론 조사도 있다.

한미FTA 반대 투쟁, 뉴코아·이랜드 파업 연대 투쟁, 아프가니스탄 파병 한국군 철군 투쟁 등 한국 사회를 흔든 중요한 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한 적극적 구실도 지지율 상승에 한 몫했을 것이다.

이처럼 ‘투쟁하는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답게 권영길 후보는 “미디어 선거뿐 아니라 대중 동원과 시위도 중요하다”며 11월 11일 민중총궐기를 적극 주창하고 있다.

또, 권 후보는 “기업의 나라, 기업의 시대를 마감하자”(9월 30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임시대의원대회)며 “투쟁을 통해 노동자 세상 만들고,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언론노조 불법 정치자금’을 핑계로 권영길 후보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찬물을 뿌린 것도 기성정치의 위기를 파고들 민주노동당의 잠재력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투쟁

그런데 최근 당 안팎에서 권 후보에 대해 온건화 압력을 넣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한겨레〉가 “지난 두 번의 도전과 달리 … 현실성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라]”며 타협을 종용하는가 하면 김영삼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는 권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에서 “당랑거철(螳螂拒轍)” 식으로 헛수고하지 말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남재희는 강대국에 저항하겠다는 것도, 신자유주의라는 시류를 타지 않겠다는 것도 모두 무모한 짓이라고 말하는가하면 민중총궐기도 “그만한 동원이 쉽겠냐”고 초를 쳤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반미’ 정서와 최소 3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는 한미FTA 반대 여론이야말로 진정한 ‘시류’다.

뜻밖에도, 민주노동당 ‘왼쪽’을 자처하는 사회당 대통령 후보 공보비서 임세환 씨도 남재희를 거들고 나섰다.

“‘혁명’도 ‘전민항쟁’도, ‘1백만 민중총궐기’도 감흥이 없다. 그런 것들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집권을 도모한다면 목표에 어울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임세환, 〈레디앙〉)

그러나 “현실 정치”에 순응하고 대중 동원을 포기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2002년 여중생 압사 사건에 항의해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직후에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크게 올랐던 것이나, 수십만 명이 보수 세력의 노무현 탄핵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직후인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사상 최고에 올랐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2006년 지방 선거 이후 당 지도부가 전보다 한층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 제시와 의회 내 정치에 몰두해 사회연대전략같은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당 지지율은 좀체 오르지 않고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대중 행동 건설이 빠진 ‘실현 가능한’ 정책이란 십중팔구 정규직 양보론 같은 후퇴를 의미할 뿐이고 이런 정책으로는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권 후보가 우경화 압력의 눈치를 보며 두 길 보기를 하고 있는 듯해 매우 안타깝다.

시류

권 후보는 당선 직후인 9월16일 오전, 5·18 묘역 참배 직후에 현충원을 참배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와 간담회를 한 사흘 뒤인 20일에는 중소기업중앙회 임원들을 만나 “동지적 관계를 맺자”고 하기도 했다. 10월 1일에는 군복을 직접 입고 해병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분배를 강조하다가 성장도 필요하다고 하는 등 “좌를 보다 갑자기 우를 보[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런 두 길 보기는 당의 성장뿐 아니라 선거 자체에도 도움이 안 된다. 기업주들이나 우파들이 ‘운동권 정당’, ‘노동자 정당’(종종 ‘민주노총 당’이라고 하지만)이라며 민주노동당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것은 근거 없는 ‘오해’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계급적 성격과 본질 때문이다.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뉴코아·이랜드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는 당이 어떻게 ‘친기업’ 정당이 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런 두 길 보기는 저들의 불신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는 반면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신뢰에는 금이 가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불과 며칠 만에 경선 직후 오르던 지지율이 다시 정체하고 있고 “권영길, 왜 이러나”(〈프레시안〉)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 후보가 말했듯이 미디어 선거만 할 것이 아니라면 최전선에서 선거운동을 할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물론 ‘산토끼’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주들이 아니라 노무현의 개혁 배신에 환멸을 느껴 그로부터 이반했지만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한 개혁 염원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끔찍하지만 범여권의 ‘개혁사기꾼’들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개혁 염원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선명하고 급진적인 진보·개혁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는 한미FTA 저지에 앞장선다면, 국민의 70퍼센트가 지지하는 뉴코아·이랜드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하는 자이툰 철군 투쟁에 앞장서 성과를 거둔다면 그 어떤 “현실적인 정책”보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민주노동당 대선 승리로 가는 열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