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제6차 2단계 회의는 잠정적 합의만을 마련한 채 휴회됐다. 합의문은 본국 승인을 받은 뒤에야 공개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합의에서 북한이 많이 양보한 듯하다.

이번 회의를 통해 잠정 합의된 ‘9.19공동성명 이행 2단계 조치’는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 시한을 연말까지로 명시한 반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시한은 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천영우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이 취할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시한이 없는 것도 북한이 수용을 했다.”

이번 회의는 미국 쪽에서 흘러나오는 엇박자 속에서 진행됐다. 한편으로 북한-시리아 핵 거래설이 미국 내에서 떠들썩하게 흘러나왔다. 미사일 기술 이전 혐의로 북한 기업들이 또 다시 제재도 받았다. 제재받은 기업 가운데 하나인 조선부강회사는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북한 기업이다. 회의 시작 이틀 전에는 부시가 북한을 “야만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한편, 부시는 6자회담 제6차 2단계 회의가 진행중인 지난 9월 28일 다른 사인도 보냈다. 미국 법 조항의 적용을 유보한 채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13합의대로 중유를 제공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이런 엇박자 가운데 어떤 것을 강화시키느냐는 북한 손에 달렸다는 압박이 회의 내내 북한에 가해졌을 것이다. 흡족하지 않더라도 합의가 이뤄진다면 협상 동력이 계속되겠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미국 내 강경파가 다시 세를 얻을 것이라는 논리로 말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도 이런 논리를 강화했을 것이다.

결국 논란의 핵심이 돼 온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는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채 북한이 미국의 구두 약속을 믿어 주는 식으로 됐다.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하고도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해 온 미국이 공개하기를 꺼리며 속삭이는 귓속말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여기에 ‘9.19공동성명 이행 2단계 조치’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행동 대 행동이라는 대전제가 무색한 지경이고, 아직 불확실성의 존재만이 확실할 뿐이다.

귓속말

물론 미국은 협상 판을 깨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약속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북한도 협상이 깨지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사용할 수단을 모두 내줄 수는 없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된 북한 핵시설 불능화 수준은 이런 상황을 어정쩡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초 미국은 핵폐기에 가까운 수준의 불능화를 원했다. 핵시설들의 핵심 부품을 제거해 아예 제3국으로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02년과 달리 북한은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핵시설을  다시 가동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시한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은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안이었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는 제거된 핵심 부품을 북한 내에 두고 제3자가 특별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원상 복구에는 약 12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제네바합의(핵 동결)보다는 1년을 벌었다고 할 수 있지만, 북한도 여전히 핵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비록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핵무기 보유가 이런 약점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9.19공동성명 이행 2단계 조치’는 3단계에 가까운 2단계가 아니라 1단계에 가까운 2단계에 머물렀다. 게다가 신고된 핵 프로그램 검증이라는 절차와 핵무기 신고라는 진정으로 뜨거운 쟁점도 남아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소위 6자회담의 동력이 근근히 이어졌다 해도 미국이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전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미국은 더는 상황이 북한의 핵 폐기 의지에 달렸다고만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 이것은 전에도 진실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 점이 더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