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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마비시킨 1천만 명의 파업

6월 20일 유럽연합(EU) 정상회담 전날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는 마비됐다.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총파업은 주요 산업‍·‍교통 중심지를 마비시켰다. 상점, 술집, 식당도 대부분 이날 하루 문을 닫았다.

스페인 전역에서 대략 1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9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날의 파업과 시위는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스페인 보수 우파 정부와 유럽연합 정상회담을 모두 겨냥한 저항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런 공격은 유럽 전역의 노동자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이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등 우파 총리들과 동맹을 맺고 전 유럽에 강요한 노동시장 유연화 공격의 일부다. 스페인의 보수 우파 총리 아스나르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일환으로 실업자들의 복지를 공격해 그들이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직업이더라도 군말없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스페인 정부 각료들은 언론에 나와 총파업이 실패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이 끼친 충격은 모든 곳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전력 사용량은 여느 일요일 평균치 이하로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와 교통 시설들이 멈췄다.

세비야에서는 모든 가정이 시위 행진에 참여했다. 시위에 참가한 소니아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려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지만, 실업수당이나 노동조합 권리조차 없습니다.” 소니아의 어머니 카르멘은 유럽의 정치인들과 정상회담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나 인권이 아닌 자본의 권리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위대는 붉은 깃발을 흔들거나 손수 만든 작업장 배너를 들고 나왔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그 분위기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시위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노동조합들은 바르셀로나에서 60만 명이 행진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을 무시하고 싶은 스페인 정부는 단지 1만 5천 명만이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지역 경찰조차 행진 규모가 대략 50만 명이었다고 시인했는데도 말이다! 노동조합들은 세비야에서 10만 명이 행진했다고 발표했지만, 거짓말쟁이 정부는 시위대가 고작 9천 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는 노동자 투쟁을 무시하려 들지만 파업 대열과 행진에서 드러난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분노는 아스나르를 꺾을 수 있는 힘과 기세를 보여 주었다.

유연 노동

이번 총파업의 핵심 현안이었던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난민에 대한 공격과 함께 정상회담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 총파업을 촉발한 것은 아스나르 정부의 법령이었다. 그 법령은 거주지에서 20마일 이내에 일자리가 있을 경우 실업자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그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업수당을 박탈한다. 또, 일년에 3개월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부 지역 농업 노동자 수십만 명의 수당도 폐지됐다. 이 때문에 농업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백 마일 떨어진 북부 지역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스페인 노조 지도자들이 특별히 전투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사회적 협력” 따위의 얘기를 일삼았다. 스페인의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노동자위원회(CCOO)는 몇 년간 “온건”파가 이끌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요 노총인 노동자총연맹(UGT)은 훨씬 더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스나르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공격하면서 “싫으면 관둬” 식의 태도를 취하자 노조 지도자들도 뭔가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스페인의 공식 노동조합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파업에는 80에서 85퍼센트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아스나르의 강경 노선 때문에 노조 지도자들은 매우 전투적인 발언을 해야 했다. CCOO 지도자는 시위대에게 오늘은 “노동계급에게 역사적인 날”이며, 노동조합이 없으면 스페인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아스나르는 이제 노조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아스나르에게 굴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파업 과정에서 모든 종류의 노동자들 ― 공기업 노동자와 사기업 노동자, 생산직과 화이트칼라, 여성과 남성 ― 사이에 거대한 연대 의식이 생겨났다. 27년 전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 정권을 끝장낸 투쟁을 기억하는 50대 사람들이 10대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

자본주의 반대, 반대, 반대!

6월 22일 세비야에서는 대규모 반자본주의 시위가 벌어졌다. 대부분 스페인 남부에서 모여든 10만이 훨씬 넘는 시위대가 세비야를 가득 메웠다. 경찰은 행진을 방해하기 위해 기차역을 봉쇄하고 버스를 멈추고 포르투갈 인근 국경을 폐쇄했다.

그러나 시위대들은 경찰과 섭씨 38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를 벌였다. 분위기는 매우 전투적이었다. 이틀 전의 총파업과 노동조합 시위 때의 분위기가 반복됐다. 행진은 안달루시아 사회 포럼이 조직한 것이었다. 이 포럼은 두 개의 공식 배너를 들고 나왔다. 하나는 “자본과 전쟁의 유럽에 반대한다”였고 다른 하나는 “불법 인간 따위는 없다”였다. 시위대가 제기한 쟁점들은 환경 파괴, 팔레스타인 연대, 여성의 권리, 사유화 반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연대 등 아주 다양했다. 대열을 따라 굴러다닌 지구 모양의 큰 풍선에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이 씌어 있었다.

모든 시위대는 아스나르의 정책들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도 반대했다. “자본주의 반대, 반대, 반대”라는 구호가 반복됐다. 어떤 배너에는 “제국주의는 진정한 고통의 아버지”라고 씌어 있었고 어떤 것은 “자본주의 테러리즘 반대”라고 씌어 있었다. “부시와 샤론은 살인자들! 팔레스타인 만세!”도 유명한 구호였다. 발코니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시위대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고 물통을 던져주거나 호스로 물을 뿌려 시위대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 작년 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와 12월 아르헨티나 봉기에서 나타난 것과 똑같은 반자본주의 정신을 이번 스페인 총파업과 시위에서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