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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그룹 안에는 “개입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개입 과다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6월 29일 롯데호텔 경찰력 투입 이후 우리가 개입을 강화한 뒤 몇 차례 고개를 든 주장이다. 금융파업, 아셈, 노동자대회 등 굵직한 투쟁 또는 캠페인이 끝나면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잡지의 다른 글에서 김어진 동지가 우리를 둘러싼 객관적 정세에 대해 썼다. 그가 지적하듯이, 위기가 자동으로 투쟁을 낳는 것은 아니다. 경제 불황은 더 큰 승리를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패배를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대량 실업 상태에서 패배하게 되면 그만큼 더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이 어떤 수준에 있을 때 불황을 맞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여름 투쟁을 통해서 (사회보험 같은 몇몇 노조들은 패배를 경험했지만) 노동자 계급은 임금 인상 등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결과 자신감을 얻었다. 롯데 호텔, 한국항공우주산업노조, 동명기술공단 노조, 의정부 환경미화원 노조, 고속철도 노조, 대우금속 노조, 한국게이츠 노조,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등.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나라 노동자 운동은 계속 성장해 왔다.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가 늘고 강화됐다. 이럴 때 경제 공황이 닥치면 크게 싸울 가능성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자체 노동자 대회에 4만 명씩이나 모인 것은 1996년 이래로 처음이다. 지금 우리는 계급 투쟁의 고양기에 있다.

어떤 동지들은 객관적 정세가 그렇다는 건 이해하지만 개입을 하기에 우리의 주관적 조건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이것은 조직의 규모와 질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정세가 투쟁 고양기라면, 규모와 관계 없이 개입해야 한다. 고양기에 현실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지 않고는 어떤 조직이든 결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성장할 수도 없다. 우리가 대여섯 명짜리 조직일지라도 집회 나가고 대자보 붙이기 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침체기 때는 지배계급 사상이 판을 친다. 예컨대 1992-95년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득세했다. 이럴 때는 기만적 사상들과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 규모에 관계 없이 말이다. 서유럽은 1980년대 장기적인 계급 투쟁 침체기를 겪었는데, 4-5천 명 규모의 조직도 이럴 때는 주로 선전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고양기 때는 개입주의적이어야 한다.

물론 조직 규모와 질은 개입의 수준에 제약을 가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울산에서 벌어지는 일에 개입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물론 국민적 초점이 되는 투쟁이 울산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거기까지도 갈 수 있어야겠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한계점까지는 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는 반자본주의 정서가 터져 나오는 곳, 노동자 대중 투쟁이 벌어지는 곳, 바로 거기에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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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롯데호텔 경찰력 투입 이후 개입을 강화한 뒤 우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쁘기만 했지 우리가 거둔 성과가 뭐가 있냐’는 식으로 깎아 내린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대열에서 함께 행진했던 사람들, 개입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우리 대열에 함께하지 않는다. 아셈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동안 가입한 인하대의 한 동지는 가입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이]실천적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또, 아셈 직후에 고려대에서는 신입 당원이 6명이나 들어왔다. 그들이 우리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도 “단지 말만 하지 않고 실천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노동시간단축 때 100-120명 정도이던 우리 대열은 8·15 때 250명, 아셈 때 365명으로 늘어났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이고 보배이다.

우리가 거둔 두번째 성과로 운동 참여자들의 의식 발전을 꼽을 수 있다. 나는 몇 달 동안 여러 동지들의 변화를 지켜봤는데, 이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과정이었다. 세미나 때는 경찰의 역할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던 한 동지가 롯데와 사회보험 경찰력 투입 항의 시위에 참가한 뒤 생각을 바꿨다. 또, 금융파업 정리 집회 때 “노동계급 중심성이 맞는 것 같다”는 주장을 여러 명이 했다.

우리가 얻은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성과다. 우리는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격려를 들었다.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만큼 노동자 투쟁 지지에 참으로 열성적인 단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많은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알고 있다. 우리가 연대했던 노동자들은 학생 당원들을 아주 인상 깊게 생각하며 신뢰한다. 롯데 한 노동자는 얼마 전 롯데 노동조합 주점에 간 한 학생 당원에게 인하대 두 동지의 안부를 물었다. 그 노동자는 두 동지의 구속 소식을 듣고는 구치소로 면회를 가겠다고 했다. 이런 연대 의식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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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와 함께 우리가 여러 어려움을 겪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개입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많은 동지들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여러 어려움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개입 경험이 [머리 속에서] 정리가 잘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우리는 앞으로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노력을 더한층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세미나와 토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개입이 정치의 등한시를 뜻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제로썸 게임처럼, 개입이 강화되면 정치가 약화되고 정치를 강화하려면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그저 책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르크스주의를 투쟁과 분리시켜 연구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그 중추에서 분리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쓸모없는 공부벌레를 만들게 된다. 이론은 실천 속에서만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응용 정치”이다. 즉,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상반기에 했던 것은 “기초 정치학”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 운동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있으나마나 한 종파가 될 것이다. 계급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모여 앉아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부하면 뭐 하는가. 변증법적 유물론은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늘 그것에 비춰 생각하는 철학인데, 실제로는 경험을 무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뭔가 알아야 실천할 게 아니냐”며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토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만약 현실/경험/실천과 무관한 학습을 한다면, 더욱더 학습에 목마를 뿐이다. 갈증을 풀기 위해 소금물을 들이키는 사람처럼 말이다. 헤겔은 “수영할 수 있기 전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스콜라 철학자들을 비웃었다.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디서 수영을 배우겠는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운동 속에 들어가 배워야 한다.(이것이 공장 ‘위장 취업’이나 공단 지역으로의 인위적인 거주 이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뭔가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실천을 하다가 의문나는 것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노동자대회가 끝난 후 정리집회 때 경희대 학생 한 명이 지하철을 패스 없이 뛰어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그것이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어떤 사람의 답변이 있었다. 과연 이런 종류의 개인적 저항이 효과적인 것일까? 우리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토론할 수 있다. 외관상 전투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장,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치곤 하는 주장을 의구심을 갖고 들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은 서로서로에 대해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려 노력해야 한다.

100개를 경험하고도 단 10개에 대해서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치자. 그것도 좋은 성과다. 우리는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딘가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11월 21일에는 농민 10만 명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고, 물리치료사 공부를 하는 전문대생들 3천 명이 종묘에서 명동성당까지 행진했다. 우리가 채 알지도 못하는 투쟁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늘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일 때 또는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나머지 90개를 반추해 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1987년과 1997년의 대중파업을 돌이켜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듯이 말이다.

둘째, 개입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토론이 각 대학 지부에만 맡겨져 있다는 지적이다. 행동은 다함께 했는데 평가는 제각각이 한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이것은 중앙 지도력의 불충분함이 자아낸 어려움이다.

만약 각 대학 지부에서 좋은 평가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부 자체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면 중앙과 그 밖의 다른 지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의 발간물을 활용해야 한다. 〈내부회보 ― 경험에서 배우기1: 아셈 반대 운동 참가 평가〉를 통해 우리 모두는 인하대 지부의 소중한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다. 여러 동지들이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대 경험으로부터도 배웠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으려면 이런 상이한 경험을 서로 연결해 줄 수 있도록 공동 발간물이 강화돼야 한다. 이것이 소위 ‘중앙 강화’의 주된 의미이다.

중앙이 평가를 빠르게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험 있는 간부층이 두터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간부층이 전혀 두텁지 못하다. 굉장히 얇다. 간부의 시초 축적을 해야 한다. 학생 당원들은 자신을 미래의 간부로 생각하고 누군가를 지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배우는 과정에 있다. 새로운 간부들은 우리의 공동 활동으로부터 배우려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올 것이다.

셋째, 개입을 많이 하면 일상이 파괴된다는 우려 때문에 머뭇거리는 동지들이 있다. 하지만 개입이 많을 땐 일상도 개입에 맞춰 조정돼야 하는 것이지, 개입과 대립시켜 일상을 운영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부는 운동(캠페인)하는 지부가 돼야 한다. 운동하는 지부의 상을 인하대 동지들이 잘 보여 주었다. 특히 인하대 지부 지도자들은 매우 꼼꼼히 활동을 조직했다. 그리고 엄청난 열정이 이 모든 활동의 밑바탕이 됐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개입이 정치를 경시해도 된다는 뜻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부에서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추상적 토론이 아니라 당면 현실의 쟁점과 우리 경험에서 출발하는 정치 토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실천은 실천대로 하고 토론은 이와 동떨어진 순수 이론 학습식이어서는 안 된다. 가령 ‘경제 위기가 노동자들 탓인가?’, ‘구조조정 하면 경제가 살아나는가?’, ‘공동전선이란 무엇인가?’ 등으로 토론하는 게 좋을 것이다.

개입이 많다고 해서 조직이 허술해져서는 절대 안 된다. 모든 종류의 발간물들이 당원과 주변 지지자에게 빠르게 전달되고 있는가, 연락이 빠짐 없이 되고 있는가, 서명과 모금 등의 일에 효과적으로 동참시키고 있는가 등이 점검돼야 한다. 이런 일들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모든 사람이 작은 일 하나라도 나눠 갖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늘 움직이는 사람만 움직여서 힘겹다는 얘기도 있다. 이것도 개입 자체가 낳는 어려움은 아니다. 얼마든지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두 가지 문제 때문일 텐데 하나는 정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문제다. 방금 책임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얘기했으니 여기서는 정치적 설득 문제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행동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득이 필요하다. 즉 선전과 선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설득하기 전에 행동부터 돌입하는 식이어서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킬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캠페인과 캠페인을 하나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환이 매우 빠를 때 성과 없이 다른 캠페인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한 쟁점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이것으로 끝이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이끌고 다른 쟁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민영화 반대 투쟁, 아셈 반대 투쟁, 노동자 대회, 대우차 투쟁,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홍석천 씨에 대한 옹호에 관심 있었던 사람에게 노동 계급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노동자 대회로 이끌고 올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아셈 반대 투쟁과 노동자 대회를 연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인하대의 실천은 매우 모범적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지만 이것이 개입을 그만 두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입을 하면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위와 같은 우리의 미숙함을 개입 축소를 통한 다른 방법(단지 토론하기/책 읽고 세미나 하기)으로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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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써클적 수공업성을 극복해야 한다. 경희대 지부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경희대 지부만 그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해야 하는가? 성공회대 지부 문제는 성공회대 지부가, 서울대 지부 문제는 서울대 지부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당원들이 경희대 대표 구속 문제에 열의를 갖고 운동을 펼치고 있듯이, 모든 당원은 어느 대학 지부에서 벌어지는 일일지라도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주장을 펴고 개입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경희대 학생 당원이 서울대 지부에 대해 언급하려면 중앙 간행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말에만 의존한다면 늘 얼굴 보는 사람들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십여 명 짜리 써클이 아니다. 3백여 명을 모을 수 있는 그룹이다. 주장이 대공업적으로 널리 퍼지게 하려면 글로 나타내야 한다.

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둘째 것은, 우리가 모두 같다는 생각을 언제나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끼리는 모두 같고, 남들과는 전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파주의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비판과 논쟁이 되지 않는다. 똑같다고 전제하고 ‘다 맞으려니’ 하는데 어떻게 토론과 논쟁이 활발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금세 정치적으로 둔감해진다. 사소해 보일지라도 의문점이나 차이에 대해 얘기해야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 “단체로 지하철을 뛰어 넘읍시다”고 주장했다면, 그게 과연 맞는 말인지 파고 들어가 보는 살아 움직이는 정치적 촉수가 필요하다. 노동자대회가 끝난 뒤 정리집회 때 경희대 비당원이 보여 준 활발한 문제제기와 주장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한다. 활발한 정치적 토론과 논쟁은 저널의 독자편지와 기고를 통해 이뤄지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의 강화는 저널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저널의 강화는 민주주의의 강화인 동시에 집중의 강화이다. 저널은 토론과 논쟁의 광장이다. 동시에, 저널을 통해 주장과 의견을 집중하고, 그를 통해 서로의 경험에서 배우며, 그것을 대공업적으로 널리 배포할 수 있다. 중앙을 강화하자는 것은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권위주의적인 얘기가 아니라 바로 저널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저널 강화를 위해서는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저널 강화와 함께 보고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 당원들은 자기가 아는 여러 정보를 모든 동료에게, 지부 대표에게, 중앙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운동의 정보와 정서를 아는 척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보고서는 저널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인 동시에 중앙 강화이다. 민주주의와 중앙 강화는 이처럼 분리된 게 아니라 통일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제한된 자원으로 고통받고 있다. 각 지부가 힘을 분산해서 사용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힘을 한곳으로 집중하고 전념하고 몰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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