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한반도 위기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한반도 위기

김인식

〈다함께〉는 지난호에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평화는 전쟁의 막간극이 돼 버렸다.” 하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우울한 경고가 한반도에서도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6월 29일 남북 해군이 서해에서 전투를 벌였다. 가슴아프게도 그 과정에서 남북의 젊은 병사들 수십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북한이 선제 공격을 했다는 점(정황상 그렇게 보인다)과 남한 해군이 교전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점이 남한 지배자들의 전쟁 광기를 자극했다. 남한 지배 계급 전체는 북한과의 국경 분쟁에서 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자 치욕이라고 여긴다. ‘국토 수호’를 내세운 강경 대응에 관한 한 지배 계급 내에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햇볕 정책’을 말하는 김대중 정부나 ‘상호주의’를 말하는 한나라당이나 이 점에서는 한목소리다.

서해교전과 뒤이은 일련의 대응들은 철저하게 이런 논리에 따랐다. 이것은 남북한 사이의 분쟁(예컨대 북방한계선을 둘러싼)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김대중은 서해교전 사태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모든 책임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측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대중의 주장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못하는 억지다. NLL은 정전협정 합의 규정에 포함돼 있지 않다. NLL은 유엔군 사령관(한국군 작전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던[있는])이 내부에서 운용하는 해군 작전 규정이다. NLL은 1952년 9월 28일에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미 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가 중국과 북한의 해안을 봉쇄하기 위해 유엔에 요청한 “클라크 라인”을 따른 것이었다. “클라크 라인”은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맺어짐에 따라 그 해 8월 27일에 소멸했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에 반대한 이승만 정부가 남측 단독으로 북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규정한 내부 한계선이었다. 즉, 남쪽 군사력이 행동할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다.(그 반대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NLL이 합법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북한도 NLL을 “묵시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냉전 우파들은 ‘식량과 비료를 줬더니 그 보답이 포탄이냐’고 북한을 비난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이것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강창성은 “이번 사태를 막으려면 확전을 각오해야 한다. 전쟁 한번 해요. 한 번만 똑바로 하면 안 들어 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도 “원칙을 세우고, 어긋나면 응징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간단하고 유일한 길이다.”라며,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 하고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은 남쪽 군대가 북한의 “도발”에 “소극 대응”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남쪽 해군이 북한 경비정을 격침하지 못한 것과 공군이 교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소극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쪽 군대가 강경 대응을 했더라면 교전이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실제 국방부는 교전 당시 북한이 함대함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레이더 가동은 미사일 발사의 전 단계다. 한나라당과 우파들이 군의 “소극 대응”을 비판한 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우파들의 광기 어린 강경 몰이 주장에 온몸이 오싹해진다. 한나라당의 김용갑은 “친북 좌파[김대중]에 국군 통수권을 맡길 수 없다.”며 김대중의 ‘햇볕 정책’을 공격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우파의 비난을 의식해 “햇볕 정책은 공산당에 대한 유화책이나 패배주의적 정책이 아니다.” 하고 강조했다. “북한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려 한다면 북한도 아주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은 군사적 충돌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김대중은 한쪽에서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군비 증강과 한-미-일 대북 압박 공조를 추구하고 있다.

김대중은 국민의 관심이 온통 월드컵에 쏠리는 틈을 타 F-15K 전투기 도입(4조 3천억 원 규모)을 결정했다. 김대중이 F-15K를 도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였다. 지난 3월에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 규모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했다. 교전이 나기 얼마 전에도 남한의 해군 2함대와 미 해군 구축함이 서해상에서 기동 훈련을 실시했다. 한편, 서해교전이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냐 아니면 “우발적 사건”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은 이번 사건을 “북한 군사력의 고의적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압박할 절호의 구실을 찾은 셈이다. 남한의 냉전 우파들도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대중 정부는 처음에는 “우발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가 우파들의 맹공에 밀려 말을 바꿨다. 사태의 진상이 어찌 되었건 간에, 이런 기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더한층 고조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교전 발생 이틀 만에 합동참모본부는 작전 지침을 변경했다. 합참의 작전 지침 변경은 남북 간의 교전 가능성이 더한층 커지게 됐음을 뜻한다. “완충적 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사격한다는 것은 우발적 충돌이 확대돼 전면전에 버금가는 위기로 치달을 개연성이 크다.”(〈한겨레〉 7월 3일치.) 미국은 서해교전 직후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을 철회했다. 남한 정부는 대북 지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턱없이 부족했던 정부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을 중단했다.

미국의 패권 전쟁과 한반도 위기

언론은 서해교전 발발 직후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왜 북한이 선제 공격을 감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판을 깬 이유를 모르겠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서해교전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평화가 무르익어 가던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돼 온 한반도의 긴장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특히, 조지 W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래 한반도에서는 긴장이 고조돼 왔다. 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미국의 세계 패권 장악을 위한 전쟁 몰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돌이켜 보면, 1953년 정전협정 발효 이후 발생한 남한(그리고 미국)과 북한 간 주요 군사 충돌은 대부분 미국의 패권 전쟁 시기와 일치했다. 모두 일곱 번의 주요한 군사 충돌이 있었다. 1967∼1969년 사이에 다섯 번의 충돌이 발생했다. 이 때는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또, 남한 군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시기와 일치했다.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 내에서 발생한 소위 ‘미루나무 살인’ 사건은 베트남 전쟁에서 비롯한 한반도 긴장 고조의 후유증이었다. 1999년 6월 서해교전은 나토(NATO)가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를 공습한 직후에 터졌다. 지난 1월에 조지 W 부시는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었다. 뒤이어 7개 나라들(러시아·중국·이라크·이란·북한·시리아·리비아)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이른바 ‘핵 태세 검토’). 최근 〈뉴욕 타임스〉에 실린 미군의 기밀 문서를 보면, 미국은 25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이라크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은 북한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1991년 2차 걸프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91년 3월에도 주한 미군 사령관 로버트 라스카시는 이라크 전쟁은 북한 전쟁의 예행 연습임을 강력하게 내비쳤다.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첫 단계로 북한에 핵 시설 사찰과 해체를 요구했다. 1991년부터 북미 핵 협상이 시작됐다. 1994년에 이른바 북한 핵 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북한에 핵 폭탄 투하를 고려했다.

미국의 위선적 대북 압박

미국은 서해교전을 이유로 7월 1일에 특사 파견 제안을 취소했다. 미국은 북한이 대화할 의지가 없다고 국제적 여론 몰이를 벌일 명분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작 대화를 거부한 쪽은 미국이었다. 셀리그 해리슨 미 국제정책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부시 정부는 내부적으로 북한 관련 미국의 정책 목표 설정을 둘러싼 논쟁만 거듭했다”고 지적했다.(〈한겨레〉 7월 6일치.) 여기에다 지난 6월에 미국은 8월로 예정된 북한 경수로 콘크리트 타설 공사 전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수용을 약속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지난 4월 초에 방북한 임동원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북한에 종용했다. 핵 사찰 수용, 미사일 개발과 수출 금지, 재래식 무기 감축 등이 서해교전 발발 하루 전인 6월 28일에 미국이 북한 특사 파견을 통해 다룰 의제였다. 이것은 북한으로서는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왜냐하면 미국의 요구는 약소국 북한의 주권을 짓밟는 오만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시의 강압적 대북 요구는 과거에 미국과 북한이 맺은 합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1994년 북한 핵 위기는 북한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미국은 그 대가로 약간의 물질적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여러 차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은 1999년 5월에 금창리 지하 시설을 현장 방문했지만 “핵 시설 의혹 없음!”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압박을 완화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북한의 미사일이었다. 북한이 1998년 8월 31일에 광명성(인공위성을 탑재한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은 즉각 이를 문제 삼았다. 1999년 9월에 북한은 또다시 미사일 발사 보류를 미국에 약속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식량 원조, 각종 경제 제재 조치 해제, 교역 및 금융 문제의 일부 제한 완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를 문제 삼았다. 이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핵 전력(중국의 3백배)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의 군사력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비를 합친 것보다 3배가 많다. 또, 북한의 군사력보다 거의 1백배나 많다. 2000년 미국 전체 예산 5천5백50억 달러 가운데 2천8백10억 달러(51퍼센트)가 군사비에 지출됐다. 올해 미국 정부의 군비 지출은 3천9백억 달러다. 이런 나라가 군사 예산이 22∼3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말하는 것은 억지다.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과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극동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해 의견이 갈려 있다. 미국의 중국 정책은 경제적 협력과 군사적 경쟁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부시 정부 내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여기는 세력들(이른바 “강경파”)이 점점 득세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군을 남한에 주둔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다.

이라크 다음 차례

북한이 선제 공격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이 서해교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건의 경위가 어떠 하든 우리 측의 병사 다수가 사상을 입게 된 과정에서 북측이 선제 공격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점에 관한 책임은 북측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하고 논평했다.(7월 5일 ‘서해교전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 중에서.) 그러나 북한이 서해에서 선제 공격을 했다손 치더라도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한-미 대북 압박이다. 예를 들어 보자. 깡패가 한 시민에게 다가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시민이 깡패의 요구를 거부했다. 깡패는 위협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 시민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깡패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깡패는 아예 시민을 죽이려 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시민이 먼저 깡패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멀쩡한 시민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한 깡패가 문제인가. 이것이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미국이라는 깡패가 북한을 상대로 ‘너네 땅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니까 사찰을 받아라’고 협박하고 있다. 한판 싸움이 벌어질 객관적 분위기는 미국이 조성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남한)의 대북 압박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북한의 선제 공격을 이유로 북한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한반도의 긴장을 해결할 수 없다. 전국학생협의회(전학협)는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전학협은 남한과 북한 모두를 양비론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전학협은 미국이 한반도 위기의 핵심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남한과 북한이 대립하는 듯하지만, 남한의 뒤에는 초강대국 미국이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을 양비론적으로 반대하면 위기의 진정한 근원과 맞서 싸우기(반미 반제국주의 투쟁)가 어렵다. 양비론적 평화주의는 종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 동안 미국은 “4강이 교차하는 이 지역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면 러시아·중국·일본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미국의 능력이 높아진다.”(미 의회 조사국)고 보고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재천명할 수단인 동아시아판 이라크로 북한을 지목해 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거쳐 한반도로 몰고 올 전쟁의 광기를 꺾어 버려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강력한 반전 운동을 실질적으로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