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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
파병 연장 - 비상식의 정치

노무현 정권이 또 이라크 파병 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보고 그야말로 믿을까 말까 했다.

지난 5년 동안 9백여 명의 투쟁하는 노동자를 구속시키고 민중의 생활을 영원히 망가뜨릴 FTA를 체결하려는, 이미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정권이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권치고도 조금 심한 것 같다.

적어도 60만 명의 이라크인들을 직간접으로 죽인 침략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양심을 포기한 것은 이미 놀라운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양쪽에서 미 제국의 시중을 드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더럽혀질 양심적 “이미지”도 남아 있지 않다. 이미 중동에서 “미 제국의 용병”으로 찍힌 상태다.

그런데 갈수록 패색이 짙어지는, 더구나 금년 말 내지 내년 봄·여름부터 더 큰 재앙으로 비화할 수 있는 침략에 계속 참여하겠다니 ‘마음’이 아닌 ‘머리’까지도 의심해봐야 겠다. 이 사람들이 지금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 것인가?

이라크에서 미국이 사실상 패배했다는 것을 미국의 학계와 언론은 이미 다 인정했다. 문제는 남부의 시아파 거주 지역을 사실상 이란의 영향권으로 남겨두지 않은 채, 그리고 수니파 지역을 수니파 독립군의 통치 영역으로 남기지 않은 채 이라크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미군이] 빠져나간 뒤에 쿠르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이라크 영토가 사드르의 마흐디군과 수니파 독립군 연합의 차지가 된다면, 미국의 석유 재벌들이 약탈한 이권이 다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도박

미국의 차후 이라크 정책은 사실 오리무중이다. 일부 전문가는, 시아파 영역이 이란의 통제 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핵 등을 핑계삼아 내년 봄 내지 여름쯤에 이란을 무자비하게 폭격해 이란 정예군의 전투 능력을 감퇴시키는 작전을 감행할 확률이 약 70퍼센트라고 보기도 한다.

즉, 패배한 이라크 침략의 과실(?)을 이란이 차지하지 못하게 이란까지도 침략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전개할 능력이 없는 이란군은 아마도 “비대칭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발적인 미사일 공격, 자동차를 이용한 자살 공격 등 온갖 “비대칭” 무기를 쓸 것이다. 이라크 전역이 화염에 싸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미국의 “혈맹”인데다 이라크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이툰 부대가 정말 무사할 줄 아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파병 연장은 한국 사병들의 생명을 놓고 벌이는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내년에 터질지도 모를 이란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이라도, 만약 터키가 쿠르드 지역을 금년 말에 침범한다면 과연 자이툰 부대의 입장이 어떻게 될까? 아니, 이것을 다 알면서도 대한민국의 시민들을 이 사지로 보내는 것인가?

물론 이북 등의 문제로 미국과 “거래”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힘이 더 센 파트너인 미국의 “요청”을 쉽게 무시 못하는 것은 다들 아는 사정이다. 하도 “비대칭적 관계”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일부 성립이 가능하다.

그런데 “힘이 센 파트너와의 관계 관리” 차원에서 자국민의 생명을 이처럼 쉽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면 이것은 결코 “원활하고 양쪽에 만족스러운 관계 만들기”에 도움이 안 된다. 다음에는 미국이 더 많은 희생을 더 쉽게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대한민국에게 큰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외교법이다.

이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당장 넘어가는, 가볍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절망감을 느낀다. 아니, 진보성까지는 없어도 된다. 그래도 상식 정도는 구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박노자의 만감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9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