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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규제법 발의는 위험하다

최근 임종인 의원은 ‘국군 및 경찰의 해외파견 규제에 관한 법률안’(이하 ‘파병규제법’)을 발의했다. ‘묻지마 파병’을 최소한이라도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인 듯하다. 이런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 법안은 그동안 정부가 누락시켜 온 절차들을 잘 명시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유엔이 국군·경찰의 해외파견을 요청했을 시 3일 이내에 즉각 그 사실을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통보해야 한다. 또한, 정부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민간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현지 조사를 의무화하고 정부 입장이 일방으로 관철되지 않도록 복수 보고서를 채택하고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파병규제법’은 의도와는 달리 파병에 되레 정당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

첫째, 법안에 따르면 “침략전쟁에 대한 피침국의 원조 요청과 유엔의 요청 그리고 국회의 동의라는 세 가지 조건”에 따라 파병할 수 있다.
우선, 유엔은 알다시피 제국주의 강대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 유엔군의 레바논 파병 결정이 그 사례다.

한국 국회로 말하자면, 국회의원의 절반이 한나라당이고 범여권 국회의원들 대다수도 노무현의 파병 정책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쿠웨이트

피침국의 요청이 가장 그럴 듯한 조건인데, 이것도 상황은 간단치 않다. 예컨대, 1991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문제삼아 이라크를 공격했는데, 쿠웨이트라는 피침국의 원조 요청만 있다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법안대로 하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레바논 파병은 인정하게 되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 반전·파병반대 단체인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레바논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말이다.

둘째, ‘파병규제법’은 어찌됐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 5조 1항에서 후퇴하는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헌법 5조 1항만을 근거로 해도 파병 불가의 논리는 충분하다.

셋째, 처리 과정에서 법안이 누더기가 될 수 있다. 세 가지 조건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하자는 주장 등 온갖 압력들이 제기될 것이다.

넷째, 이 법안이 반전평화 운동의 분열을 낳을 위험도 있다. 이미 참여연대 내에서 파병절차법을 둘러싼 논의가 있었지만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민주노동당 파병반대대책위 내에서도 ‘파병엄격제한법’을 두고 토론이 있었지만 제출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론을 짓자면, ‘파병규제법’은 애초의 좋은 의도와 달리 상당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법안 통과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법안 제출로 파병 정책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자이툰 파병 연장 방침은 이미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의 주요 의제이며 여론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파병 반대 여론을 계속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지속적인 대중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