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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철폐돼야

민주당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기존의 연수취업제1)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연수제 폐지를 요구해 온 국내외의 인권·노동 단체 등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그 동안 연수취업제 하에 이주 노동자들이 받아 온 고통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다. 연수생은 말이 기술 연수생이지 어떠한 교육과 훈련도 없이 생산라인에 바로 투입된다. 연수생은 장시간 일하고도 형편없는 월급을 받는다. 중기협을 통해 들어온 연수생은 약 30∼40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해외투자기업 연수생들은 더 심해 하루 10∼12시간 일하고도 8∼16만 원 정도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게다가 연수생들은 부당한 보증금과 인력관리비(매달 2만 4천 원)를 월급에서 원천징수당한다. 월급마저 직접 만져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재 역시 빈번하다.

그 동안 연수취업제가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은 모두 연수취업제 폐지는 일단 환영하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연수제보다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고용허가제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주 노동자의 취업을 허가하는 것으로, 고용허가 규모는 매년 국내 취업 노동자의 1% 안팎에서 결정된다. 국내 취업 노동자가 2천만 명 가량이니 연간 약 20만 명이 고용될 것이다. 선발된 이주 노동자는 최대 3년간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이렇게 되면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연월차 수당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들의 완전한 취업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민주당의 초안은 이주 노동력을 통제하기 위한 독소 조항들로 가득하다.

우선, 취업 기간이 제한돼 있다. 계약은 1년마다 갱신되고 2회 연장해 최대 3년까지만 취업할 수 있다. 이주 노동자가 계약 내용을 위반하면 14일 이내에 출국해야 한다.

또, 현재 고용돼 있는 불법 체류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없다. 정부는 불법체류자들을 일정 유예 기간을 둔 뒤 출국시키는 방침을 세웠다.

완전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둬 계약 연장이나 고용 계약 해지 철회를 요구하는 집단 행동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많은 노동·인권 단체와 이주 노동자들은 이런 독소 조항을 뺀 "올바른 고용허가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되레 후퇴하고 있다. 민주당은 중기협과 당내 반발로 법안조차 확정하지 못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고용허가제는 상정조차 못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악선동

중기협은 1993년말부터 연수생의 모집·알선·연수·사후관리를 담당해 온 이래 막대한 이득을 챙겨 왔다. 중기협은 연수생 제공 대가로 연수업체로부터 1인당 28만 6천 원씩 받고 송출업체로부터 공탁금으로 1인당 3백 달러를 받는다. 연수생이 달아나면 공탁금은 모두 중기협 돈이 되고, 개인 사정으로 조기 귀국해도 150달러를 챙긴다.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많은 산업연수생이 이탈하므로(1994년∼1999년 동안 평균 이탈율이 37.5%), 중기협은 가만히 앉아서 몇십억 원을 챙겨 왔다. 또, 연수생 1인당 관리비로 매월 2만 4천 원을 징수하는 등 연수생 관리는 엄청난 돈벌이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상 어떤 조항도 적용하지 않고 극도의 저임금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연수제가 폐지된다면, 이들은 이윤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주 노동자 1인당 월 30∼40만 원 가량 추가 부담이 생기고 20만 명이 고용될 경우 2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중기협은 고용허가제에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신문 광고를 내고 관제 시위를 벌인데 이어 11월 29일에 또다시 관제 시위를 열어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다.

중기협과 경제5단체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실업이 늘 것이라는 악선동도 서슴지 않는다. 노동조건이 좋아지면 이주 노동자들이 물밀듯 들어올 테니 무분별한 이주 노동자 도입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류재원은 "우리 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53% 중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35%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외국인 근로자가 이러한 국내 근로자보다 근로조건이 더 좋아질 것이다."며 이주 노동자들과 국내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을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 유입은 실업의 원인이 결코 아니다. 남한에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된 1989∼1990년 당시 실업률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일하기를 꺼리는 3D 업종에 취업해 있다. 실업 증가는 경제 불황 때문이지 이주 노동자 탓이 아니다.

고용허가제가 실업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경제 위기 때 노동자들의 불만을 엉뚱한 데로 돌리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을 희생양삼는 비열한 악선동이다.

출입국 규제 철폐

이주 노동자는 결코 한국 노동자들의 적이 아니다. 중기협의 악선동에 맞서 선진 노동자와 학생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현재 68개 인권·시민·노동 단체들이 '외국인 노동자 차별 철폐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외노 공대위)를 결성해 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허가제는 민주당이 제시한 고용허가제상 여러 제약 조건을 빼고 노동 3권 적용을 요구하는 등 더 개선된 제도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요구를 지지해야 한다. 아울러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규제 철폐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출입국 규제가 철폐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이주 노동력에 대한 통제가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출입국 규제가 철폐돼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과 노동 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노동자들간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노동조건도 향상될 수 있다.

이주 노동자 투쟁에 민주노총이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사장 들이 이주 노동자를 희생양삼아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 실업을 막고 임금과 노동조건 방어를 위해 한국인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와 단결해 싸워야 한다.

1) 연수취업제는 1998년 4월 1일 이후 입국한 연수생을 대상으로, 2년간 연수한 연수생에 한해 기존 연수업체에 1년간 취업토록 하는 제도로 2000년 4월부터 시행돼 왔다. 1994년부터 실시돼 온 산업기술연수생제도(연수 기간을 1년 이내로 하되 1년 연장 가능)가 연수취업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