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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추악한 과거는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이하 진실규명위)가 3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국정원의 전신인 옛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추악한 본질을 힐끗 보여 준다.

정보기관들은 독재 정권 유지에 핵심적 구실을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김대중과 같은 정적을 납치하거나 김형욱 같은 ‘배신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언론 사주를 매수해 언론을 통제했고 온갖 고문과 협박으로 각종 조작 간첩을 만들어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고, 희생자들의 가족은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숨죽이고 살아 왔다.

진실규명위 위원인 한홍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사람 가족 중에] 4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동네 형들이 그 아이를 끌고 다니며 목매달아 ‘총살놀이’를 했다더라. 간첩 새끼라고.”

매우 불충분하긴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국정원이 과거에 아래로부터 저항을 억압하는 데 혈안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1983년 12월 안기부는 대학에서 6백84개의 ‘망조직’을 운영했다. 학교 주변의 자취집, 서점, 음식점, 인쇄소도 사찰 대상이었다. 안기부 요원들은 “태산이 높다 하되 대머리[전두환을 가리킴]의 밑이로다” 하는 어느 음식점 화장실의 낙서까지 수집했다.

사찰

또, 안기부는 우파 학생 단체들을 육성하기도 했다. 1987년 안기부는 자금 지원, 취업 알선 등 온갖 수단을 써가며 20개 대학에서 92개의 “건전 서클”을 키웠다. 심지어 〈일부 학생 문제권의 좌경화 움직임에 대한 대책의견〉(1986년)을 보면 “일본에서처럼 유사시 극우파가 극좌파를 공격(테러 등)하거나 ‘충격적 방법’으로 사회적 경각심을 촉구”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정보기관의 노동운동 사찰과 탄압은 훨씬 가혹했다. 급속한 자본 축적을 위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철저히 억눌렀다.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도시산업선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 활동가들은 “빨갱이”로 몰렸다.

1961년 박정희의 중앙정보부는 아예 대한노총을 해산하고 한국노총을 직접 만들었다. 한국노총 위원장은 물론 각 산별위원장, 대기업 노조 위원장들은 사실상 중앙정보부가 임명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노총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과하고 나서야 그나마 국가기구 성격에서 탈피해 상대적 우파 노조로 변할 수 있었다.

안기부도 “분단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안 된다”며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는 활동가들을 모질게 고문했다. 안기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을 주도하면서 사실상 노동운동 탄압을 치밀하게 진두지휘했다. 그들이 써먹은 탄압 매뉴얼은 요즘에도 낯설지 않다.

“노사분규 주동 및 배후세력에 대항하는 구사 건전 대항세력을 육성하고 필요시 공작원으로 활용한다. 분규사업장 주변 주민대책협의회를 조직하여 노사분규 사업장에 대해 생업 지장, 사회 불편 등의 호소를 유도하여 비판, 규탄 여론을 조성하고 확산한다.”

안기부의 사찰과 탄압은 노동조합에 그치지 않았다. 진실규명위 보고서는 안기부의 사찰 대상에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노동자 대학 등 공개 노동단체와 인노련, 서노련, 국제사회주의자들, 〈노동해방의 불꽃〉 편집국 등 비합법 노조 지원단체와 정치적 노동운동 단체들이 모두 포함됐다”고 전한다. 노동운동이 정치화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입증하듯이 정보기관의 사찰과 탄압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진실규명위 보고서를 보더라도 1980년대 안기부가 대학에서 벌인 억압과 사찰 행위는 학생 대중의 급진화를 차단하지 못했다.

1987년 6월항쟁이 폭발하기 직전 안기부가 작성한 〈서울대 총학 선거 관련 동향 및 대책〉을 보면, 선거 유세에서 “처음 등단한 ‘건전 학생’ 유세시 호응자 별무, 일부 학생 야유·조소 등으로 분위기 산만”이라고 보고했다. 반면 자민투 계열 학생은 가장 커다란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이 보고서의 ‘김대중 납치 사건’ 평가 부분을 본 김대중이 ‘우유부단한 평가’라고 했듯이, 진실규명위의 보고서는 어정쩡하다. 국정원이 자신에게 치명적일 핵심 정보를 민간위원에게 제공했을 리도 없다.

또, 진실규명위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도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단정지었지만, 핵심 인물인 김현희 등도 조사하지 못해 의혹을 잠재우지 못했다.

빙산의 일각

결국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홍구 교수도 “밝혀낸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사실, 1980년대 학원 사찰에 앞장선 김만복이 처벌받기는커녕 현 국정원장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는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를 이번 보고서로 불식시키고 ‘테러방지법’ 도입 같은 ‘미래’를 도모하고자 한다.

김만복은 이번 보고서 발간사에서 “다시는 국민들이 공권력으로 아픔을 겪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 정부’에서도 억압기구들의 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에서 국정원의 ‘국내 파트’ 예산은 오히려 증액됐고, ‘일심회’ 사건에서 봤듯이 진보진영에 대한 사찰도 중단되지 않았다. 온갖 야만적 박해를 낳았던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정보통신망법·통신비밀보호법 등을 통해 오히려 사찰·탄압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보기관들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대테러 전쟁을 구실삼은 시민권 억압,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 억압, 치열해진 시장 경쟁에서 기업 기밀을 둘러싼 ‘산업 전쟁’ 등이 정보기구 기능 강화의 토양이다. 한국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보기관의 활동이야말로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적 기능이 억압이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 자유주의 정부에 만족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