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는 원칙과 실천적 필요 모두에서 러시아 혁명의 핵심이었다. 볼셰비키는 혁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산돼야만 한다고 믿었다.

노동자들은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학살극에 치를 떨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경제적 혼란이 발생했다. [러시아] 혁명은 수많은 사람들이 급진적 변화를 위해 싸우도록 고무했다.

1917년 이후 2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격변이 일어났다. 1918년에 독일 제국은 붕괴했고 “인민위원들”이 새 정부를 구성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919∼20년 동안 ‘붉은 2년’이라고 알려진 투쟁 물결이 있었다.

[독일] 바이에른과 헝가리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잠시 동안 소비에트가 수립됐다. 1918년에 스페인 발렌시아의 파업노동자들은 거리 이름을 “레닌”과 “10월 혁명”으로 바꿨다. 영국에서는 1919년에 소요와 파업 들이 분출했다. 프랑스와 영국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지배계급은 공포에 떨었다. 1919년 3월에 작성한 비밀 전언에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는 프랑스 총리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유럽 전체가 혁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1917년에 전 세계의 3분의 2가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혁명은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다.

볼셰비키는 가장 먼저 민족해방 투쟁의 중요성을 깨닫고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국제 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여긴 세력 중 하나였다.

새로운 혁명 국가는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을 획득하기 전에 이미 새 아일랜드 공화국을 인정한 첫 국가였다.

볼셰비키는 “러시아 인민의 평등과 주권”뿐 아니라 과거에 [러시아] 제국에 예속됐던 국가들이 독립할 권리도 선포했다.

이러한 조처들로 혁명 이후 몇 년 동안 러시아에서 독립한 5개의 국가와 약 17개의 [소비에트] 연방 내 자치 지역들이 생겨났다.

혁명의 여파로 민족해방운동 내에 급진적 경향이 등장하는 한편 전 세계에서 새로운 공산당들이 형성됐다. 1920∼21년에 터키·이집트·인도·인도네시아·중국에서 새로운 공산당이 창립했다.

중국 노동자들 수만 명과 [소비에트] 연방 내 무슬림 국가 출신 노동자들 25만 명 가량이 혁명 수호를 도우려고 적군에 가담했다.

볼셰비키의 국제주의는 국제적 운동을 건설하고 [그 운동 참가자와] 토론하는 것을 뜻했고 그 결과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건설됐다.

내전이 한창이던 1920년 볼셰비키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극동인민대회를 열었고 여기에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중동 전역의 국가들에서 온, 2천 명이 넘는 대표단이 참가했다.

영국은 이란 대표단을 태운 선박을 공격했다. 그러나 영국 전함들은 터키 대표단이 총회에 도착하는 것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소비에트의 초기는 틀림없이 오늘날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선 국제적 운동에 영감으로 남을 것이다.


출처 : 이 글은 〈Socialist Worker〉 2075호에 실린 글 'The global impact'를 번역한 것이다.(http://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13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