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은 성별, 장애, 병력, 가족형태·가족상황, 성적지향 등 20여 개 영역을 차별 금지 대상에 포함시킨, 평등을 위해 진일보한 법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안을 작성하고 인권운동 단체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권고한 장치들 ― 징벌적 손해배상제, 이행강제금 등 ― 이 삭제됐다. 이때만 해도 차별금지법은 반쪽짜리 정도는 됐다.

그런데 더 나아가 각계 의견서를 받는 과정에서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일부 기독교단체들의 동성애 혐오와 재계의 경제제일주의에 놀아나 차별금지대상에서 ‘성적지향’을 비롯해 ‘학력, 가족형태·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보호처분 전력’ 등 7개 영역을 도려낸 채 정부안을 확정하려 한다.

일부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찬성법’인 양 호도하며 성적지향 항목을 삭제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들은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동성애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해, “동성애가 확산돼 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말이 안 된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재계 역시 뒤로는 수십억 원의 떡값과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기업이 망하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며 협박해 왔다.

차별 금지 대상에서 7개 영역이 삭제된 순간, 이제 차별금지법(안)은 실질적 구제조처도, 차별에 대한 인식 전환도 기대할 수 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렸다. 이 차별금지법으로는 차별을 금지하지도, 예방하지도 못한다.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이 기업주들의 편견에 의해 해고당해도 전혀 보호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 내 폭언과 폭행·고의적 임금체불 등 상습적인 인권유린을 당해도 최소한의 보호조처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처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병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가 해고 당해도 전혀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인권선진국

노무현 정부는 서민 경제를 파탄 내는 것도 모자라 차별받는 약자들의 요구를 무참히 짓밟았다.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위선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지난 10월 31일,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 저지 대응책 마련을 위해 긴급 모임을 가졌다. 11월 5일에는 1백50여 명이 모여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차별, 혐오 저지를 위한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을 발족했다.

그 뒤 21개 단체가 7개 차별영역 삭제에 항의해 긴급연대성명을 발표했다. 86개 단체와 1천2백58명의 개인 서명도 이어졌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단체들의 연대도 모이고 있다.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날에는 긴급행동 주최로 사전집회도 열렸다. 커밍아웃에 대한 부담이 큰데도 외부에서 열린 첫 집회에 80명이 넘는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참가했다. 범국민대회에도 참가해 명동과 종로 한복판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면서, 차별금지법이 억압받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임을 알렸다.

동성애 혐오증과 노무현 정부의 차별금지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성소수자들의 투쟁은 이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성소수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가 중요한 시점이다.

11월 22일 오후 6시에 보수기독교단체 대표체 격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앞에서, 긴급행동과 진보적 기독교단체인 한기연(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이 공동 주최하는 항의 예배가 열릴 예정이다. 이 항의 예배에 많은 지지와 연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