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낡은 주장들이 새로운 형식으로 부활하곤 한다. 대선을 앞두고 부쩍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이 그렇다.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비서실장을 지냈던 정대화 교수는 “정동영, 권영길, 문국현... 연합정부로 가라”(〈오마이뉴스〉 10월 26일치)고 주장했다.

이수호 새진보연대 대표,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상임대표,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 정해구 교수 등으로 구성된 ‘나라의 희망과 미래를 준비하는 시민사회단체협의회’도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촉구했다.

10월 31일에는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가 “반한나라당 3자 연대로 연립정부 구성하자!” 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삼성 비자금 폭로와 이회창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11월 6일에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가 ‘긴급진단 이회창 출마,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글에서 반부패·반보수대연합을 주장했다.

물론 냉전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준 것은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이다. 범여권은 민주 개혁 요구를 배신하고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정책을 폈다. “개혁세력의 집권을 옹호할 어떤 미약한 흐름도 존재하지 않는 침묵의 대선국면”(정대화)을 조성한 것은 다름아닌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자신이었다.

사실, 정동영과 문국현, 권영길 사이에 모종의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최근에 정동영이 ‘왼쪽 깜빡이등’을 켜고 있지만, 이것은 얄팍한 술책일 뿐이다. 지금 정동영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지난 5년 동안 그래 왔듯이 말이다.

문국현도 국민들의 건강보다 ‘미국 쇠고기업자[에 대한] 차별’을 더 못마땅해 하고 “전투병만 아니라면” 파병을 지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고 민주노동당한테 “기업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비판했다.

인민전선

무엇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은 계급 기반이 완전히 다른 당들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기업주들의 자금·자원으로 운영되는 정당이다. 그래서 대통합민주신당(과 정동영)은 근본에서 사장들의 이익을 거스를 수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목표와 우선순위는 노동자들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이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는 법안을 만들고 파병을 추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도 노동자 정당이 아니다. 문국현은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학자, 기업인들을 대거 진출시켜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창조한국당이 중소자본가와 중간계급 지식인의 당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또, 문국현의 ‘가치’와 민주노동당의 ‘가치’도 다르다. 문국현에게 노동자와 피억압자는 은전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는 노동자와 피억압자의 운동에 대해 아무 말 않는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피억압자의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한편, 정대화 교수는 연합정부를 “새로운 상상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보진영과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해 수구보수에 대항하자는 연합정부론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인민전선의 재판일 뿐이다.

애초 ‘인민전선’은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정치 세력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국민 연합(계급 연합) 구축을 뜻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좌파와 노동자 들이 수구보수 세력인 한나라당에 맞서 중도우파 정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인민전선’은 모두 재앙으로 끝났다. ‘인민전선’을 구성하는 세력들 간에 근본적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예컨대, 스페인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일관되게 토지·재산·교회·군대를 옹호했다. 그들은 파시스트 프랑코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이 제도들을 옹호했다. 결국 ‘인민전선’ 정부는 농민의 투쟁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토지 소유에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대부르주아지가 반파시스트 연립 정부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까딸루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도, ‘인민전선’ 정부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사유재산 침범을 비난했다.

흔히 ‘인민전선’ 옹호론자들은 좌파가 부르주아지를 견인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술이 아니라 자기 기만일 뿐이다. ‘인민전선’의 결정적 오류는 좌파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자본주의 정당의 통제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동행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운동을 건설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반격

반한나라당 ‘인민전선’론을 펴는 사람들의 기저에는 수구보수의 정권 탈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명박과 이회창이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상반되는 그림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 중 하나인 비정규직 확산은 커다란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한미FTA도 대중적 반대 여론에 직면해 주류 정당의 후보들은 한미FTA를 쟁점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전 여론도 여전하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위기는 사회 상층부의 ‘수구화’ 경향 재촉과 아래로부터의 혼란스러운 급진화를 낳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 양극화가 첨예하게 진행될 때에는 정치적 휘발성도 강해진다. 그러므로 이명박의 승리를 아직까지 확정적으로 볼 수 없다.

혹여 보수 세력이 집권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노동운동의 대규모 패배로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권한 우파가 대중의 생활 조건을 공격한다면 아래로부터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파 정권이 채택할 게 뻔한 (행여 정동영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인) 신자유주의 공격과 전쟁 동참은 이미 노무현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밀어붙이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계획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이미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정부에 도전해 승리한 경험이 있다. 1996년 말과 1997년 초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을 벌여 신한국당의 김영삼 정부를 굴복시킨 바 있다. 이 파업의 여파로 신한국당은 집권 연장에 실패했다.

프랑스 노동운동은 우파 정부의 집권이 곧 노동운동의 침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지금 프랑스 노동자 운동은 공공부문을 필두로 사르코지 신임 정부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 국면에서 반한나라당 후보들의 단일화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노동당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권영길 후보는 정동영이 ‘삼성 비자금 특검법 발의’를 혹시라도 ‘범여권 단일화’와 연계시킬 가능성을 철저히 경계·차단해야 한다.

더구나 ‘삼성장학생’으로 의심받는 정동영이 삼성 비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지도 의심스럽다.

권영길 후보는 범여권과 분명히 선을 긋고 독자적인 진보진영 대표로서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획득한 표는 주류 정당들에 대한 좌파적 반대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시위하는 효과를 낼 것이고, 다음에 운동을 건설할 때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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