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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게만 편안한 소파

미군에게만 편안한 소파

김정숙

6월 13일 한국 축구가 16강으로 달려가는 동안, 미군 장갑차는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의 몸 위로 질주했다. 우리는 소녀들의 참혹한 죽음과 미군의 오만한 자세 앞에서 소파(한미주둔군 지위협정)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소파는 한국 전쟁 뒤 이승만이 한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1953년에 미국과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나왔다. 이 조약으로 미군은 철수할 때까지 남한의 시설과 구역을 맘대로 쓸 수 있고, 미군이나 미군 가족에 대해서는 미국 당국만이 재판권을 갖게 되었다. 1967년 소파가 발효되자 살인, 강간, 강도 같은 중범죄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가 형식적으로나마 재판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 법원이 실제로 재판한 것은 고작 0.7퍼센트에 불과했다. 소파는 1991년과 2001년 두 번 개정되었다. 그러나 소파 개정 직후인 1992년 미군 범죄의 결정판인 윤금이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 5월 경기도 매향리의 오폭 사건, 이태원 여종업원을 살해한 메카시 상병의 도주 사건으로 2001년 소파는 다시 개정됐다. 개정된 소파는 살인·강간·강도 같은 강력 범죄 발생시 피의자 신병 인도 시기를 형 확정 시점에서 기소시로 바꿨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더한층 개악됐다. 한국 정부는 징역 3년 이하의 경범죄에 대해서는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강력범이라 해도 “미군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그 범죄자를 보호할 수 있다. 게다가 형이 확정돼야 기소를 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었다. 한국 사법부는 기소를 한다고 해도 조사 한 번 못한다. 미군 범죄자가 무죄로 풀려나도 상소할 수 없다.

소파 31개 조항 중 가장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22조 형사재판권은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누가 재판하느냐는 문제를 다룬다. 범죄가 공무중에 벌어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처리 절차가 달라진다. 전자라면 우리 나라에겐 재판권이 없다. 그런데 공무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판단하는 쪽은 미국이다. 이번 여중생 압사 사건은 공무 집행중에 일어난 사고라는 게 미국측 주장이다미군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 10만 건 이상의 미군 범죄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 국정감사 결과, 1997년에서 2000년 6월까지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 1천여 건 중에서 형사 처벌을 받은 것은 단 4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군 범죄자의 신병 구속이나 수사 처벌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이유로 사건의 진상 규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