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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한상원

7월 1일 새벽 2시, 미군 AC-130 공격기와 B-52 폭격기가 아프가니스탄 중부 우루즈간주 카카라크 마을의 한 결혼식장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폭격은 2시간이나 계속됐다.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혼식 옷을 차려 입은 아이들의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겨졌다.

폭격이 끝나자 폐허로 변한 이 곳에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진입했다. 그들은 봉쇄선을 친 뒤 주민들의 손발을 묶고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미군 헬기에 사격한 사람을 찾는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어떤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군은 폭격으로 알몸이 드러난 여성들에게 사진기와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내는 만행도 저질렀다.

미군은 아침 8시까지 부상자들이 병원에 가는 것도 막았다.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들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치료도 못받고 숨졌다. 미군이 물러간 뒤에야 부상자들은 서울과 대전 간 거리만큼 떨어진 칸다하르로 이송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은 사망자가 48명이라고 공식 집계했다. 그러나 현지 목격자들에 따르면 미군이 같은 시간에 폭격한 샤토가이, 마자르 등 인근 마을까지 합쳐 사망자는 2백50명에 달했다. 미국 국방부는 처음에 “폭격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발뺌하다가 7월 8일이 돼서야 민간인 오폭을 시인했다. 그러고는 피해 보상이랍시고 텐트와 담요 몇 개를 던져줬을 뿐이다. 미국은 탈레반이 투항한 뒤에도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도 미군은 임시정부가 새로 수립된 것을 축하하러 가던 차량 행렬에 폭격을 퍼부었다. 자그마치 60여 명이 죽었다. 또 5월에는 불 킬 마을의 결혼식장을 산산조각냈다.

불안정이미 미국은 군벌들 간의 권력 다툼을 자극해 아프가니스탄을 불안정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미국은 과도정부 수반 카르자이를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도록 강력하게 후원했다. 카르자이는 미국 석유업체 유노캘의 컨설턴트로서, 1996년 유노캘이 추진한 가스관 건설 사업에서 중책을 맡은 바 있다. 이것이 미국이 카르자이를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권의 수반으로 임명한 이유다. 미국은 6월에 열린 종족회의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조작했다. 카르자이 역시 미국의 입맛에 맞는 ‘국민 정부’를 세우려 안간힘썼다. 그러나 일부 군벌들은 4월에 귀국한 자히르 전 국왕에게 충성을 보내고 있다. 팍티아 주지사 파드샤 칸은 “자히르가 수반이 되지 못하면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종족회의가 늦춰지는 틈을 타 자히르를 협박해 선거 후보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도록 했다. 과도정부의 국방장관(모하메드 카심 파힘)은 다른 후보들을 협박하려고 군대까지 동원한 ‘덕분’에 임시정부 국방장관 자리를 손에 쥐었다.

군벌들은 미국이 온갖 협박과 뇌물을 통해 제 입맛대로 세운 새 임시정부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파슈툰계 군벌들은 임시정부 내각을 대부분 타지크계가 휩쓸었다는 점에 반발하고 있다. 타지크계는 탈레반을 몰아내는 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 자신들이 임시정부 수반을 차지하지 못한 것을 못마땅해 한다. 또 북부 지역 군벌들은 임시정부가 자신들의 아편 밀매를 단속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7월 6일 임시정부 부통령인 하지 압둘 카디르 암살 사건은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카디르의 암살은 긴장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파슈툰 족은 임시정부 수반인 카르자이가 이번 암살의 배후를 가려내지 못하면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파슈툰 족 출신인 카디르의 암살을 계기로 파슈툰 족은 내부 결속력을 다지려 한다. 이번에는 이것이 타지크계를 자극할 것이다.

한편, 미국은 카디르의 암살을 병력 증파의 구실로 삼으려 한다. 사건 다음 날 미국 상원 의원들은 TV 대담 프로에 출연해 군사 개입을 확대하자고 떠들었다. 이런 분위기 이용해 미국은 가스관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7월 9일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고위 관리들이 모여 가스관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한편에서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스관 건설을 서두르는 미국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과 미국의 꼭두각시 카르자이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7월 4일 카불에서 벌어진 반미 시위가 이를 증명한다. 이 시위는 탈레반이 붕괴한 뒤 최초로 벌어진 반미 시위였다. 반전·반미 운동을 건설하는 것만이 미국이 자행하는 참상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