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러시아 혁명 90주년인 해이자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1891-1937) 사망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해가 저물어 가는 오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기억하는 어떤 특별한 학술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옛 소련과 동유럽 블록 붕괴 이후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대거 ‘전향’ 사태를 고려하면, 러시아 혁명 90주년이 이렇다 할 축하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람시 사망 70주년까지 그냥 넘어가는 것은 뜻밖이다. 그 많던 그람시 연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나라당 의원 박형준의 행적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에서 자칭 그람시주의자들은 그들을 한동안 이단으로 몰았던 스탈린주의자들과 함께 지난 세기말 이후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거쳐 노골적인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로 변신했다. 그람시는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전향’의 필수적 징검다리이거나 각종 포스트주의적 왜곡과 학술주의적 소비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창조적 확장으로서 그람시 사상의 정수는 외면되거나 거의 인식되지 못했다.

게다가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외 대안부재론이 석권하자 아무래도 미심쩍은 그람시는 아예 용도 폐기돼 버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람시를 기리는 일조차도 ‘다함께’와 같은 급진좌파 진영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맞불〉 41호(2007.4.28) 참조).

헤게모니와 진지전

반면, 해외에서 그람시 연구는 지난 세기말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헤게모니/대항헤게모니’, ‘시민사회’, ‘기동전/진지전’, ‘수동 혁명’, ‘역사적 블록’, ‘유기적 지식인’ 등 그람시가 옥중에서 보석처럼 다듬은 개념들은 이미 전후부터 마르크스주의 정치학, 철학, 문화, 역사학 분야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이 개념들은 지난 세기말 이후에는 신(新)그람시 학파(Neo-Gramscian) 국제정치경제학(IPE), 국제관계론(IR), 지리학, 언어학, 교육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주요 패러다임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신그람시 학파 국제정치경제학에서 보듯이 세계화 시대 국제적 국가관계,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성립과 해체를 분석하는 유용한 분석 도구로 적용되고 있다. ‘수동 혁명’, ‘헤게모니’, ‘역사적 블록’과 같은 그람시의 개념들은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연구 방법으로도 적용되고 있다. 지난 세기말 이후 우리나라 진보 학계에서 그람시가 마르크스주의 일반과 함께 거의 소멸됐다면, 해외 진보 학계의 그람시 연구는 최대의 호황 업종이 돼 있다.

21세기 들어 그람시의 사상은 해외 진보 학계에서뿐 아니라 진보 운동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 1970∼80년대에 각종 포스트주의, 개량주의, 시민운동의 태두로 왜곡되어 숭상됐던 그람시는 21세기 들어서는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의 주요 이념의 하나로 재인식되고 있다.

그람시의 사상은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전 지구적 규모에서 고조되고 있는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이른바 ‘초국적 시민사회’에서의 ‘대항헤게모니’(counter- hegemony) 이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제3∼4차 코민테른(1921∼22년) 시기 레닌과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사상의 계승·발전으로서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 개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반전·반자본주의 공동전선 구축에 유용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혁명은 왜 실패했는가?’, ‘자본주의는 왜 쉽사리 붕괴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그람시의 “암석에서 피를 뽑아내는” 것과 같은 극한적 사고는 ‘자본주의 외 대안부재’론이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 혁명적 전략의 구상과 실천에 귀중한 영감을 준다.

21세기 혁명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붐을 이루고 있는 그람시 영역에 적극 개입해 그람시를 화두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헤게모니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각종 포스트주의자들과 신그람시 학파의 전유물이 돼 온 그람시를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 속으로 재탈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람시가 상부구조와 ‘시민사회’의 이론가라는 포스트주의자들의 왜곡이 논박돼야 한다. 포스트주의적 그람시 왜곡의 선구자들인 라클라우(E. Laclau)와 무프(C. Mouffe)조차도 그람시가 너무나 경제주의적이며 본질주의적이라고 불평하지 않았던가? 포스트주의자들은 그람시에 빗대어 시민사회의 절대적 자율성을 옹호하지만, 그람시 자신은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라는 《옥중수고》의 유명한 정식화에서 보듯이, 자본주의에서 시민사회는 정치사회를 위협하기는커녕 자본주의 국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론적 자원

그람시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라는 점을 강조한 나머지,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국가와 이데올로기·문화 등의 영역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새롭게 발전시킨 공헌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포스트주의자들이 《옥중수고》 시기의 그람시를 절대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옥중수고》 이전 토리노 공장평의회 투쟁 및 당 건설 시기의 그람시를 특권화하는 것으로 치환돼서는 곤란하다. 《옥중수고》 이전 시기 그람시의 사상이 단지 《옥중수고》의 전사(前史)가 아닌 것처럼, 《옥중수고》는 《옥중수고》 이전 시기에 대한 “방대한 후주(後註)”나 단순한 회고도 아니다.

물론 《옥중수고》의 중요한 공백에도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옥중수고》에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범주들인 상품물신성, 가치형태, 잉여가치 등의 범주가 누락돼 있다. 그람시는 유명한 옥중 후원자이자 신리카도 학파(Neo-Ricardian) 경제학의 정초자인 스라파(P. Sraffa)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리카도를 비롯한 고전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 간의 단절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또, 그람시는 경제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옥중수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포드주의와 아메리카주의라는 개념들에는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에 고질적인 단계론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그람시의 포드주의와 아메리카주의 개념들은 뒤에 조절이론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주의적 혹은 스탈린주의적 단계론으로 쉽게 변형·동화될 수 있었다. 비록 그람시 자신은 이들 개념을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추상 수준에서 정식화했지만 말이다.

나아가 트로츠키와 연속혁명론에 대한 그람시의 비판과는 대조되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침묵 역시 비록 옥중이라는 조건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돼야 한다.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그람시의 사상은 시장근본주의와 경제지상주의가 지배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양극화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현실을 분석하고 전복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적 자원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신자유주의 ‘수동 혁명’ 세력에 원조 수구 세력까지 끼어들어 더욱 보수화하고 있는 대선 정국에서 진보진영의 ‘대항헤게모니’를 구축·확장하는 데서 그람시의 〈옥중수고〉의 개념들은 유용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저자이고,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등의 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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