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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미국의 또 다른 이라크 :
재건지원? 파병은 '파괴 지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야기하게 앞서 최근 파키스탄 상황에 대해서부터 말해야할 것 같다. 1999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지난 3일 국가비상사태라는 또 한번의 '쿠데타'를 감행한 파키스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미국의 충직한 동맹자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무샤라프를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부시는 10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무샤라프는 알카에다에 맞서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고, 파키스탄 군부에 대한 지지는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저명한 반전 운동가이자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자이며 〈근본주의의 충돌〉 등을 쓴 타리크 알리는 "파키스탄의 〈지오〉 TV의 기자 중 한 명인 하미드 미르는(…) 미국 대사관이 이번 쿠데타를 사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며 "미국이 (무샤라프에 의해 축출된)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을 '탈레반에 동조하는' 성가신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처럼 철저한 이중잣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자유'를 위한 것도 아니다. 부시는 8년 동안이나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무샤라프를 굳건히 지원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에서는 민중 다수가 민주적으로 선출한 하마스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제봉쇄와 더러운 분열·지배 책략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위기'는 미국의 이중잣대를 밝히 보여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파키스탄이 이란·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하고 있으면서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점령, 그리고 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이란 공격의 전략적 요충지인 파키스탄에서 혼란이 벌어지는 것은 미국에게는 매우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중요성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에게 최근 들어 더욱 중요한 전쟁터가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파키스탄 위기, 이란 공격 계획,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라는 세 가지 측면 때문이다.

먼저 파키스탄의 위기.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에게 또 다른 이라크다. 9·11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미군은 2001년 말 쉽사리 승리를 얻은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까지 미군 465명을 포함해 점령군 730명이 목숨을 잃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http://www.icasualties.org/oef/)

올 여름 한국인 피랍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탈레반을 비롯한 저항군은 특정 지역을 통제하며 사실상의 정부 구실을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성 심화는 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의 동맹 세력인 무샤라프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파키스탄 내에서 아프가니스탄 저항의 영향으로 반정부 무장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접경지대인 파키스탄 북서부에서는 일부 지역을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 7월 무샤라프가 랄 마스지드 사원(붉은사원)을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 것도 이런 저항을 억눌러 이같은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에게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의 또 다른 전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란과의 전쟁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뒤 건설한 미군기지들은 두 개의 주요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전선은 아프가니스탄 서쪽 이란을 겨냥한 것이다. 그 미군기지들은 아래 그림과 같이 아프가니스탄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과 남쪽의 파키스탄에 있는 미군기지들과 함께 이란 국경선을 따라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 미군기지들이 가운데 파란색으로 칠해진 이란을 향해 동쪽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 걸쳐 일직선으로 위치해 있고, 서쪽에서는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걸쳐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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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미국의 이란 공격 가능성은 점점 더 현실화하고 있다. 지상군을 투입한 전면전의 형태가 아니라 공중 폭격 위주의 제한적 공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징후들이 여럿 드러나고 있다. 미군에게 아프가니스탄의 군사적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미국에게 아프가니스탄이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침략과 점령이 '테러세력 소탕'과 사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의 전쟁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주요 참전국들도 아프가니스탄을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전선이라고 규정하며 참전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병력을 철수하고 있는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도 지난 7월 "테러 대응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최전선"이라고 말하며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옹호했다.

호주는 11월 24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테러와의 전쟁' 참전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호주 노동당 당수 캐빈 러드는 "이라크에서 미국이나 호주는 참전 명분을 잃었다"며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러드 역시도 "아프가니스탄 참전은 9.11 테러범으로 지목되는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그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전쟁의 명분이 살아 있다"라며 "노동당이 집권하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호주군의 숫자를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APEC 정상회의)

실제로 영국은 이라크에서 군대를 줄이면서도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규모는 늘리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3600명 규모의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켰으나 올해 말까지 그 수를 두 배 이상 늘려 7700명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독일과 프랑스도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은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미국은 대테러전을 정당화할 명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수렁에 빠져 여력이 없기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깃발 아래 몰려든 유럽 군대의 도움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을 통제하려 애쓰고 있다.

재건과 지원을 위한 파병?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정치적·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연장을 집요하게 요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매우 신속하게 '대테러 동맹'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단행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12월 18일 첫 파병 부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출병한 것이다.

과연 이 파병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지원을 위한 것이었나?

그러나 한국 정부가 국회에서 통과시켰던 다산·동의 부대 파병 연장 동의안의 제목은 한국군 파병의 목적이 재건과 지원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동의안의 이름은 바로 "국군 부대의 대테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쟁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점령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 때문에 올 해 우리는 윤장호 하사와 배형규·심성민 씨가 바로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이런 죽음의 근본 원인이 한국 정부의 '대테러전쟁 지원 부대' 파병 때문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지난해 정부는 2007년 말까지 다산·동의 부대를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의 철군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파병 연장을 추진하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대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 지역재건팀(PRT) 파견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미국의 요청이기도 했다.

다산·동의 부대를 불러들이니 철군 약속을 지킨 게 아니냐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 〈국방신문〉 2004년 1월 6일자 기사의 한 구절을 보면 지역재건팀의 파견은 또 다른 이름의 '파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연합군은 나토에 쿤두즈(Konduz) 지역재건팀 권한을 이양했다. 연합군은 여섯 군데 지역재건팀을 운영하고 있고, 몇 달 안에 다섯 군대가 더 생길 예정이다. 미국은 칸다하르, 가르데즈(Gardez), 헤라트(Herat)에서 지역재건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재건팀은 외세 점령군이 주도하고 있다. 그 점령군은 아프가니스탄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멀쩡한 마을을 파괴하는 그런 군대다. 파괴를 하면서 지역 '재건'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의 극치다.

이라크에서 자이툰 부대가 철수해야 하고 이라크 점령이 종식돼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테러와의 전쟁'의 또 하나의 주요 무대인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한국의 점령 지원도 당장 끝나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11월 13일 '프레시안(www.pressian.com)에 기고한 글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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