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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2007 대선:
민주노동당은 더는 노동계급 정당이 아닌가?
최장집 교수와 일부 당 간부들에 대한 반박

필자는 최근 〈프레시안〉 기고 글에서 〈한겨레〉〈경향〉 등이 민주노동당을 아예 무시해 거의 보도하지 않거나, 간혹 보도할 때는 그 존재의 미미함을 강조하고 정파 갈등의 폐해를 부각시킨다고 지적했다(〈프레시안〉, ‘민주노동당은 내분이나 일삼는 쓸모없는 정치 세력인가?’). 특히 “코리아연방공화국” 슬로건을 둘러싼 그런 언론들의 보도는 민주노동당이 NL(민족자주)계열의 정당으로 내분이나 일삼는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측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며칠 뒤 〈경향〉은 민주노동당을 1면에 부각시키고 의미 있는 공약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런 류의 보도는 사실 민주노동당 내 일부 우파들과 최장집 교수 등 일부 당 밖 인사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해 민주노동당이 더는 “노동자 정당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 논거는 대체로 민주노동당 지도부 내 NL계열의 확대된 영향력이다. 이것이 바로 〈한겨레〉〈경향〉의 문제 기사들에서 취재원 구실을 한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과 김형탁 전 대변인의 공통된 개탄이다. 지난해 북핵 사태와 얼마 전 “코리아연방공화국” 논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서 이런 생각이 강화된 듯하다.

블레어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의) 30퍼센트가 정파(소속)이고 그 중에서 20 정도가 자주파” 라고 말했다. “그럼 (자주파가 그렇게 많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뭐냐?”는 질문에 조승수 소장은 “민주노동당은 근원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다고 답했다.

(당을) 깨자”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일부에서 (깨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대선) 득표율에 따라” “민주노동당으로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대단히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노동당으로 안 되며 새 당이 필요하다고 이미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공저자 박상훈 씨는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민주주의인가》 공저자 세 명(최장집, 박찬표, 박상훈)의 생각은 새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밝혔다.

최장집 교수 등의 문제의식은 “주체파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이라면 임금생활자의 생활 문제 같은 것에서 현실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추상 수준이 높은 민족통일 문제 같은 데만 신경을 쓴다.”

이런 비판은 얼핏 좌파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분명하게 의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요구한다.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을 가진 정당이 출현하여 사회경제적 이슈를 가지고 기존 정당체제와 정당들에게 충격을 주기 바란다. … 민주노동당이 그런 정당[‘유력 정당’]이 되기 위해서 의회주의를 고민해 봐야 한다.”(박상훈)

그래서 민주노동당 내에서 최장집 교수의 주장을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당내 우파들이다. 최병천 씨(사민넷 기획담당)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최장집의 이러한 주장을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접목한다면,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대체하는 ‘의회주의’ 노선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장집 교수 등의 제안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신자유주의화한 사회민주주의(서유럽에서 잘 쓰이는 용어로 사회적 자유주의)이다. 지난 11월 23일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대화모임에서 최장집 교수는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노동 중심의 정당은 블레어의 실험과 비슷한 것”이라며 제3의 길을 제시했다. “반시장주의나 반신자유주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러나 당의 강령과 당원의 사회적 구성 그리고 당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이 더는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 지난 몇 년간 민주노동당 강령의 내용이 후퇴한 것도, 당원의 사회적 구성이 자본가나 중간계급 성원들로 바뀐 것도 아니다. 당의 실천에서도 당은 대체로 노동쟁의를 지지한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와 저소득 소외계층을 대표하기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말로 상징되듯 중산층적인 관심사인 민족통일 문제, 즉 NL적 이슈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리아연방공화국” 슬로건에 대한 비판을 당의 계급적 성격 변화로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비약일 뿐 아니라, 마치 “코리아연방공화국” 슬로건과 함께 노동자와 저소득 소외계층의 요구들이 사라진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왜곡이다.

박상훈 씨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당이 아니라 “교육받은 중산층 엘리트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학생운동 출신들이 민주노동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결의를 통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건설돼 여전히 민주노총이라는 기반에, 그 인적·물적 자원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다수가 더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최근 민주노총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정면 반박했다. 이번 대선 후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가 85.7퍼센트를 차지했다. 당에 대한 선호도는 더 높았다. 좋든 싫든 민주노총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여전히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중산층을 대변”하고 새 정당이 노동계급을 대변할 것이라는 말은 전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조승수 소장은 낮은 조직률을 근거로 “민주노총이 노동자 대표성을 상실”했고 따라서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도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게 됐다는 회의론을 편다. 물론 명백한 계급 투표이려면 단지 민주노총을 넘어 노동계급의 다수가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제공해야겠지만, 그렇게 되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는 데서도 가장 투쟁적이고 잘 조직돼 있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구실이 중요할 것이다.

최장집 교수 등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중요한 사실은 PD가 1980년대 말의 PD와 다르듯이 NL도 1980년대 말의 NL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옛 소련 붕괴와 김일성 사후 대기근 등 북한의 위기(이른바 “고난의 행군”)를 겪고부터 NL도 의회주의를 대폭 수용했다. 선거를 통한 집권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NL 노선은 전민항쟁”이라고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물론 의회주의와 함께 대중투쟁도 얘기하는 것이 최장집 교수 등에게는 께름칙하고, “옛날에 (민주화) 운동하듯이 혁명적 전투적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늘어놓게 만들고 있지만 말이다.

설사 1980년대식 노선을 고수하는 NL 분파가 있다 해도 스탈린주의 사상과 의회주의는 접목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제3세계 공산당들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1단계에서(는) … 투쟁을 합법적으로 의회 민주주의 틀 안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 그래서, 예컨대 1980년대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단순한 좌파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유러코뮤니스트들은 ANC 안에서 아무런 무리 없이 한데 섞여 공동의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었다.”(최일붕, 《개량인가 변혁인가?》, 다함께 펴냄)

발판

민주노동당이 더는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번 대선에서 내는 효과는 명백하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그럴 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보통 사람들의 고통 문제, 고용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후보도 이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 다른 당들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인데, 실천에서 이것은 오른쪽으로 가는 길을 터주고 있다. 가령 전태일의 누나 전순옥 씨는 “민주노동당이 무슨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냐”고 분을 토한 뒤 모순되게도 문국현 지지를 표명했다. 전순옥 씨는 “그게(민주노동당) 무슨 진보정당이냐. 당파들 모여서 싸움하는 곳이지”라며 최근 언론 보도들을 장식해 온 상투적인 민주노동당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문국현을 포함한 자본가 정당 후보들과는 엄연히 다른 공약들을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서 내놓고 있다. 모든 후보가 성장을 앞세우는 반면 권영길 후보는 성장보다 서민 소득 증대와 소득 불평등 감소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백대 기업의 이익부담금 등을 통한 연간 3조 원의 정규직 전환기금 마련 등 “유일하게 비정규직에 대한 구체적 공약”(〈경향〉)도 내놨다.

‘민주노동당=민족주의’라는 최장집 교수의 프리즘은 이런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이런 프리즘을 공유해 온 사람들은 “권영길 씨와 민노당은 민족지상주의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를 대표하기도” 한다는 고종석 씨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또,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같은 민주노동당의 간판 공약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성 커플 가족 인정 등도 다른 후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보적 공약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공약과 정책에 대해 당내 좌파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투쟁 연대’가 아니라 ‘양보 연대’(연대임금제)를 제시한 것 등이 그렇다. 정규직 양보론에 근거한 보건의료노조의 단협 사례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하향 평준화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비판을 하더라도 지지하기를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대중정당이고, 반전·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모든 후보가 다 똑같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매도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설사 그것이 진정한 좌파적 동기에서 비롯한 것일지라도 결과는 기업주들의 정당들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힘을 결집하는 지렛대를 제공할 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으로 모이는 표는 다음 정권 하에서 투쟁의 포문을 여는 발판이 될 것이다.

대선 후보 TV 토론회 일정

1차 : 12월 6일(목) KBS, MBC 오후8시
2차 : 12월 11일(화) KBS, MBC 오후8시
3차 : 12월 16일(일) KBS, MBC 오후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