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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외국인력제도 개선 방안’을 비판한다

정부의 ‘외국인력제도 개선 방안’을 비판한다

정진우 외국인노동자 인권문화센터 실장

2002년 7월 15일,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이하 정부 방안)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와는 거리가 먼 미봉책일 뿐이다. 그 동안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은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허가제’의 도입, 연수제도 철폐와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사면과 합법화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30만 명에 이르는 이주 노동자들의 열망과 외노협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연수제도로 이익을 보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의 로비에 밀려 기만적인 정부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허가제가 아닌 연수 제도 확대·강화

정부 방안은 그 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켜 온 연수제도를 확대해 연수생을 8만 명에서 13만 명으로 늘리고, 업종도 기존 제조업에서 농축산업, 연근해어업, 건설업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또, 연수생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연수 제도로 들어오는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은 말 그대로 기술을 배우는 연수생이 아니라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연수생들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수차례 나왔다. 또한 중기협은 연수 제도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수많은 비리와 연결돼 있다. 1995년 1월에 중소기업연수협력단장이 해외 송출 기관한테서 1천5백만 원을 받았다. 또, 1996년 5월에는 중기협 연수협력단 운영부장과 운영과장은 베트남, 태국 등의 인력 송출 업체에게서 5백50여 만원을 뇌물로 받았다. 1997년 7월 통상산업부 중소기업진흥과장이 산업연수생 사후관리업체로부터 총 7천만 원어치의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 중기협 연수협력단 차장도 국내 인력브로커한테서 2천만 원과 태국인력 송출 회사한테서 13만 달러(1억 원)를 받았다. 2002년 3월에는 중기협 상근 부회장과 국제협력팀장이 2000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필리핀인 93명을 불법 입국시켜 주는 대가로 9천만 원을 송출업체한테서 받았다.

이처럼 연수 제도는 연수생들에게 기술 연수는 하지 않고 단순 노동을 시키면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제도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

정부가 연수 제도를 확대하려 하면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8월 1일부터 합동 단속반을 구성해 단속을 강력하게 펼치려 하고 있으며, 출국유예가 끝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등록한 이주 노동자 전부를 강제 출국시키려 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전부 내보내고 나서 그 빈자리를 연수생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 노동자 전원을 강제로 추방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자 이주 노동자는 물론,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조차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 동안 자행돼 온 정부의 강제 단속으로 수많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심지어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가해진 수많은 인권 침해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주 노동자의 불법 체류 문제는 그 동안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외국 인력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현실적으로 30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일시에 강제 출국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산업현장의 심각한 인력 왜곡을 초래할 것이다. 아울러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 단속과 추방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야기시킨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외국 인력 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연수 제도의 철폐와 노동허가제 실시, 그리고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사면이다. 이와 같은 대안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이번 정부 방안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한 ‘취업관리제’ 실시

정부는 외국 국적 동포(방문동거 사증(F1) 발급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서비스업의 취업을 허용하면서 2년 동안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관리제’를 도입하고, 친척 방문 연령을 현행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시행하려는 ‘취업관리제’로 들어 온 외국 국적 동포들은 노동자 신분이 아니라 방문동거 비자(F1)로 입국해 체류자격 이외의 활동으로 취업하게 된다. 취업관리제로 들어 온 외국 국적 동포의 체류 기간은 심지어 연수생보다 짧은 2년이다. 이와 함께 귀국보증금 예치, 사업장 이동 금지 등의 단서 조항을 달아 놓고 있다. 대법원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재외 동포들을 재외동포법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재외 국적 동포에 대한 제약을 담은 ‘취업관리제’를 들고 나왔다. 더욱이 ‘취업관리제’는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제도일 뿐 아니라 외국 국적 동포를 따로 분류해 다루고 있어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법에 위배된다.

이주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

이번 정부 대책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여론은 하나같이 정부 대책이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미봉책이며,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한 대가가 강제 추방이라는 현실에 이주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7월 28일 종묘공원에서 ‘산업연수제도 철폐· 강제추방 반대 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집회에 모인 2천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무책임한 정책의 희생양이 되기를 당당하게 거부하자는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더 이상 한국 정부 관료들과 중기협의 농간에 이주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이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그 동안 끊임없이 요구해 온 연수 제도 철폐·노동허가제 실시·미등록 노동자 사면의 절규가 처참하게 묵살되는 현실은, 분명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제 이주 노동자들도 한국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와 함께하는 한국인들은 강력한 투쟁으로 한국 정부의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정책을 반드시 철폐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