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부는 보험모집인이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조 설립 불가 판정을 내렸다. 노동부는 보험모집인이 회사와 종속 관계가 분명치 않아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다.

노동부는 출퇴근이 자유롭고 회사의 업무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근거로 보험모집인을 개인사업자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날조다. 보험모집인은 아침 일찍 출근해 그 날 업무를 상세히 지시받고 외근 일을 마치고는 다시 회사에 와서 그 날 업무를 보고해야 한다. 출퇴근 관리는 아주 엄격해 보험모집인들의 출근 카드에는 분·초 단위까지 찍힌다. 하루 결근하면 직급에 따라 최소 5천 원∼5만 원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게 노동자가 아닌 증거라는 주장 또한 터무니없다. 만약 수당제로 임금을 받는 사람이 모두 개인사업자라면, 우리 나라 노동자 절반 이상이 개인사업자가 될 것이다. 이런 임금 체계는 비정규 노동에서 아주 흔한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보험모집인이 근로소득세 대신 사업소득세를 내니까 개인사업자라는 주장이다.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누가 사업소득세 내고 싶어서 내는 줄 아느냐?"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험모집인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업소득세를 내야 한다.

특수고용직 같은 고용 형태가 고용주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사업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 퇴직금과 연월차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고 4대 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 4대 보험(국민연금, 고용·의료·산재 보험) 미가입에 따라 회사가 합법적으로 탈세하는 돈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이 때문에 경총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을 요구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 여성단체의 공통된 요구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반면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는 것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겐 엄청난 불이익이다. 연소득 2천5백만 원(4인 가족 기준)일 때, 노동자라면 50만 원의 세금을 내는 데 비해 개인사업자가 되면 무려 3백8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무척 낮다. 실적별 임금 형태는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겨 전체적으로 임금을 낮추는 압력을 가한다. 보험회사들은 누구나 노력만 하면 억대의 연봉을 받기라도 하는 양 선전하지만, 이런 액수의 연봉을 받는 보험모집인은 0.5%가 채 안 된다.

보험모집인 월 평균 임금은 1백55만 3천원(여성은 1백33만 2천 원)인데, 이것은 퇴직금과 연·월차 수당과 각종 사회보험이 제외되는 것을 고려할 때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게다가 업무수행비의 대부분이 자비로 나간다. 계약 유치 및 관리를 위해 선물을 산다든가 밀린 의료보험료를 대신 납부한다든가 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심지어 송금 수수료조차 보험모집인이 내는데 이것만 한 해에 180억 원에 이른다. 연봉의 1/3 가량이 이런 회사 업무비로 쓰인다고 한다.  

노동 시간도 길다. 대부분 외근을 하는 보험모집 업무 성격상 근무 시간은 아주 불규칙하다. 계약 성사를 위해서는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 하루에 20집을 다녀야 하고 연월차 휴가조차 없다.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소속 한 노동자는 적어도 주당 60시간은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빡빡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보험모집인들이 조직화되기 어렵게 만든다. 조직화를 가로막는 또다른 수단은 교묘한 수당 체계다. 보험 회사들은 계약 건수당 지급하는 수당을 일시불이 아니라 2∼3년에 걸쳐 나눠서 줘, 해고시 적립된 수당을 몰수한다. 퇴직금도 없는 노동자로서는 커다란 압박이 아닐 수 없다. 보험회사들은 '전직동의제'를 통해 타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직을 하면 수당을 몰수한다.

국내 보험사들이 쌓아올린 막대한 자산은 이처럼 가혹한 노동 착취를 통해 가능했다. 지난해 말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자산은 무려 100조 원이 넘었고 삼성생명 하나만도 45조 원에 이르렀다.

보험모집인이 개인사업자라는 주장은 보험회사의 이윤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고용 형태가 동일하고 노동 조건이 유사한 학습지 교사나 경기보조원은 노동자로 인정했으면서도 보험모집인을 제외한 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노동부는 즉각 보험모집인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보험모집인은 근로기준법상으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노동자 범위를 결정짓는 법률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법에서 규정하는 노동자 범위는 차이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14조는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한다.

노동자 개념이 두 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두 법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은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고,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은 노조 설립 허가 여부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부가 노동자라 인정해도 얼마든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판정을 못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법 적용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전형적이다. 1993년 대법원은 경기보조원(캐디)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노조법상 노동자라고 판정했다. 이것은 노조를 인정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위선적인 판결이다.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더라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조는 회사와의 단체협약 체결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 여성단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 과정에 대한 어떠한 통제권도 갖고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때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이 확대 적용돼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특수고용직 같은 고용 형태는 노조 전통이 없는 신규 업종에서 빠르게 성장해 왔고 대부분 여성들이 고용돼 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노동 유연화의 일환으로 특수고용 형태가 증대해 왔다. 이것은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 하락에 압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속 노조를 건설해 투쟁하고 있다. 진주 경상대 식당 조리사로 일하던 11명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1백25일간의 농성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쟁취했다.

상대적으로 처지가 나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해 함께 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 방어와 떨어진 게 아니다.

그 동안 민주노총이 2000년 3대 투쟁 슬로건 중 하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내걸고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에 힘써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올해 민주노총에 가입한 신규 조합원 1만 5천2백7명 가운데 다수가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캠페인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고취하는 데 기여해 왔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아직도 많은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배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무금융노련과 그 산하 보험회사 노조들이 보험설계사노조에 대한 노동부 판정에 어떠한 항의성명서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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