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비대위장님,

비대위장 수락 연설 때 눈물 흘리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보았지만, 얼마나 고뇌가 컸을까 감히 헤아려 보려 애썼습니다. 굳이 심 비대위장님의 처지에 놓여 봐야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국제 진보정당 역사에 대한 간접 경험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름 아니라 심 비대위장님의 “친북 정당”,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비판 보도를 보고 우려되는 바가 있어 몇 자 적고자 합니다. 대부분 민주노동당원도 아니고 심지어 그 중 다수는 당 대선후보에게 투표하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의 앞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 두는 것에 너무 민감하신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등은 조중동 따위에 비해서는 명백히 진보적인 언론입니다. 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소유와 통제 면에서 노동계급의 신문이 아닙니다. 이데올로기 면에서도, 급진적 양념을 곳곳에 가미하지만 그 기조 자체는 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한계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는 매체들입니다.

그들 앞에서 당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인정하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는 것은 당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소원케 하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당내 민주주의에 충실하십시오. 당원 다수는 자신의 당이 “종북주의적” 또는 “친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론

실제로, 당의 대선후보 자신이나 그 선본의 주요 스태프들, 후보의 대(對)유권자 메시지 모두에서 “친북성”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심 의원 자신이 그 선본의 일부였습니다.

“친북” 문제의 최대 쟁점인 북한 핵실험에 대해 외부에 가장 잘 알려진 당의 공식 입장은, 당 대표단 방북시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감 표명”이었습니다. 북한 사회민주당 관계자들은 당 대표 연설에 불쾌해 하며 “유감 표명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당 최고위원회의 다수는 자주파였습니다.

일심회 문제에서도, 당 지도부는 최기영 씨를 직책에서 해임하고 대국민 유감 표명을 했습니다. 그 때도 최고위원회의 다수파는 자주파였습니다.

요컨대 자주파 당 간부 개인들은 ‘주사파’처럼 말했지만 당 자체는 그렇지 않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당의 사회적 기반이 노동계 지도자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므로 당의 본질이 사회민주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심 의원을 새 지도자로 하는 새 지도부가 들어섬으로써 주요 당 간부 개개인의 언행이 당 자체의 성격에 조응하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현 시기 한국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성장은 진보입니다.

그리고 심 비대위장께서 당을 개방하겠다는 것은 대찬성입니다.

그러나 당을 개방한다는 것이 더는 “민주노총당”이지 않게 “혁신”하고, 더는 “운동권 정당”이지 않게 “쇄신”하려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 파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거의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현상입니다. 이 과정의 핵심적인 요소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와 정치의 분리”라고 부른 노동조합 고위 상근간부층과 개혁주의 정치인 사이의 엄격한 분업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의 연계 고리를 끊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영국 노동당을 미국 민주당처럼 만들려다 실패한 블레어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민주노총당” 부정으로 말하자면, 심 비대위장님 자신이 민주노총 지도자의 한 명으로 열의를 갖고 민주노동당 창립에 참여하셨는데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패러독스의 효과는 연막과도 같습니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한 무사안일주의적 특정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문제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투쟁적 단결이 아니라 ‘사회연대전략’ 따위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의 자제와 양보를 촉구하는 기회주의적 어젠다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광범한 비정규직 노동자든 중소기업인이든 기왕에 가장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이 발휘돼야만 견인될 수 있는 것이 사회 변화의 동역학입니다.

노동계급의 힘이 결정적입니다. 노동자 개개인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속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처한 객관적 위치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중간계급에 속한 개인들이나 심지어 자본가 개인들도 우리 대열에 가담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우리 노동운동의 원칙과 규율, 정체성을 그들이 존중하는 한에서 그래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매진해야지, 실용주의적으로 그들에게 타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오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와 포퓰리스트 자본가들 사이에는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으려 벼르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운동권 정당” 문제로 안내합니다. 우리는 “운동권”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대중운동이야말로 사회 변화의 가장 주된 동인입니다.

물론 정책 선전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있을 때라야 사람들은 당 후보들의 공약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정책 선전에 힘썼던 김종철 동지는 “친북” 인사이기는커녕 반주사파 인사였는데도 겨우 3퍼센트의 지지만을 얻었습니다. 정책이나 공약 선전이 공명을 얻으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권 정당

말을 맺겠습니다. 심 의원을 새 리더로 추대한 다수 중앙위원들은 심 의원을 일종의 한시적 위기 관리 지도부 리더로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총선 이후에도 심 비대위장님을 지속적인 지도자로 지지하느냐는 차츰 검증돼야 할 문제이지, “선험적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닙”(심 의원 자신이 비대위장 수락 연설에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니다.

그러므로 심 비대위장께서는 당 진로를 둘러싼 평당원 대다수가 참여하는 논쟁을 통해 당의 모습이 좀 더 분명한 꼴을 갖출 때까지 말을 아끼시기를 조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준비위원회”로 조직화하고 있는 분당파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시기를 촉구합니다. 예리한 관찰자라면 민주노동당의 현 위기에 대해 불만족스런 선거 결과의 책임 전가를 위한 속죄양 삼기 게임에서 다수파 경쟁자의 일시적 곤란을 소수파가 당 외부 세력을 개입시켜 승리한 모습이라고 냉소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당원이라면 누구나 자중해야 마땅한 상황으로 볼 것입니다.

심 비대위장님의 일부 언사에 고무된 기회주의자들이 이 기회에 당을 우경화하려 애쓴다면 우리 다함께는 심 비대위장님 자신도 그것에 책임 있다고 보고 날카로운 비판을 삼가지 않을 것임을 다짐합니다.

당 대선후보 경선 후 자체 조사 결과 회원의 거의 4분의 3이 심 의원에게 투표한 것으로 드러난 다함께의 고심에 찬 결의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2008년 1월 15일
다함께